[파리패럴림픽] "다시 만나는 날, 많은 얘기 나눠요" 사격대표 김정남, 그의 동메달은 하늘나라 아버지께 보내는 작별인사였다

이원만 2024. 9. 4.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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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밤(한국시각) 프랑스 샤토루 사격센터에서 열린 2024년 파리패럴림픽 사격 P1 혼성 25m 권총 SH1 결선에서 동메달을 따낸 김정남(맨 오른쪽)이 메달 경쟁을 펼쳤던 금, 은메달리스트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활짝 웃는 다른 선수들과 달리 김정남은 옅은 미소만 띄고 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파리=스포츠조선 이원만 기자] "아버지, 너무 늦어 죄송해요. 다시 만나면 많은 이야기 나눠요."

지난 2일(이하 한국시각) 2024년 파리패럴림픽에 참가한 대한민국 선수단에 또 하나의 메달 소식이 전해졌다. 사격 혼성 25m 권총 SH1 종목에 출전한 김정남(46·BDH파라스)이 결선에서 동메달을 적중한 것. 파리에서 새로운 르네상스를 맞이하며 '패럴림픽 효자종목'으로 부활한 사격에서 나온 다섯 번째 메달이었다.

앞서 치른 남자 10m 공기권총에서는 부진한 성적으로 결선에도 오르지 못했던 김정남이다. 10m에서도 메달 경쟁력이 충분하다는 평가를 들었기에 이런 부진은 다소 의외였다. 이상한 점은 또 있었다. 김정남은 동메달을 따낸 뒤 "기뻤으면 좋겠는데 마냥 기쁘지는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금메달을 놓친 데 대한 아쉬움 때문이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이런 김정남의 코멘트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이건 첫 종목 10m 공기권총에서의 결선행 실패를 설명해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타국에서 부친상 소식을 들어야만 했고, 장례식에조차 갈 수 없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아픔을 겪어야 했다.

그래서 부진했고, 마냥 기뻐할 수 없던 것이었다. 김정남은 동메달 획득의 여운이 가라앉은 뒤 자신이 가슴 깊숙한 곳에 넣어뒀던 애�㉯� 속사정을 들려줬다. "일주일 전에 아버지께서 갑자기 돌아가셨다. 파리에 있느라 장례도 지켜보지 못했다. 슬프고 힘들었다."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그 말을 들은 뒤에야 김정남의 뜻밖의 부진과 반등, 그리고 "마냥 기쁘지는 않다"는 수상 소감의 진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지난 2일 밤(한국시각) 프랑스 샤토루 사격센터에서 열린 2024년 파리패럴림픽 사격 P1 혼성 25m 권총 SH1 결선에서 동메달을 따낸 김정남(맨 오른쪽)이 동메달과 패럴림픽 마스코트 프리주 인형을 들며 옅은 미소를 짓고 있다. 김정남은 패럴림픽 개막을 며칠 앞두고 부친상을 당했다. 그러나 귀국할 수 없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파리패럴림픽에 참가한 사격대표팀은 경기력을 최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대회 개막 2주 전인 지난 8월 14일에 프랑스에 먼저 도착해 사전 캠프를 마련하고 훈련에 매진했다. 특히 경기가 치러지는 샤토루 지역은 파리에서 약 270㎞나 떨어진 시골이다. 대한장애인체육회는 이동 시간 등을 고려해 아예 이곳에 사격 선수단을 위한 별도의 선수촌을 마련했다.

여기서 훈련에 집중하던 김정남은 패럴림픽 개막을 며칠 앞두고 한국으로부터 비보를 듣고 말았다. 투병 중이던 아버지가 임종하셨다는 소식. 장남인 김정남이 마땅히 장례식의 상주(喪主) 역할을 해야 했지만, 도저히 한국에 갈 수가 없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김정남은 "갑자기 돌아가셨다. 프랑스에 있어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마음이 착잡하기만 했다. 그나마 동생이 있어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주위에서는 김정남을 위로하며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도움을 주려고 배려했다. 특히 선수단장이자 김정남의 소속팀인 BDH파라스를 만든 배동현 BDH재단 이사장이 실질적으로 큰 도움을 줬다. 소속 직원들을 모조리 전라남도 나주의 장례식장에 파견해 장례 일체를 책임져줬다. 정진완 대한체육회장도 직접 김정남을 위로하고,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줬다.

김정남은 "동생에게 장례를 맡길 수밖에 없는데, 도무지 마음이 정리되지 않았다. 때문에 10m 공기권총에서 사격을 시작한 후 가장 나쁜 성적이 나왔다. 힘들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정남은 가슴이 찢길 듯한 아픔을 애써 감추며 다시 패럴림픽 무대에 나섰다. 반드시 메달을 따내 하늘의 아버지에게 바치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 그를 위로하고 도와준 사람들에게 보답하는 의미에서라도 메달을 따고 말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렇게 만든 금메달에 견줘도 손색없는 동메달이었다. 김정남은 "벅찬 감정이 들었다. 배 단장님께도 조금은 보답한 것 같다"며 "이제는 메달을 걸고 아버지께 인사드리러 갈 수 있게 됐다. 정말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언젠가는 다시 또 만나게 될 테니까. 그때 자랑스러운 아들로서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며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파리(프랑스)=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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