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진 세입자 앞 독촉장, 사기범은 감형…미추홀 전세사기의 결말

이승욱 기자 2024. 9. 4.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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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프리즘]
지난달 29일 오전 인천 미추홀구 인천지방검찰청 앞에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회가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전세사기 ‘건축왕’의 형을 징역 7년으로 감형한 2심 선고에 대한 검찰의 상고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승욱 | 전국팀 기자

지난해 4월18일 인천 미추홀구 인하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의 풍경은 다른 빈소 취재 현장과 다르지 않았다. 빈소 앞은 유족에게서 한마디라도 더 듣기 위해 찾은 기자들로 붐볐고, 유족들은 질문 세례를 받았다. 기자들이 아직 많이 오기 전 고인의 아버지에게서 고인이 ‘육상 국가대표’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해당 내용을 급하게 기사화했던 기억이 있다. 다만 고인은 대형 재난·참사의 희생자도, 유명인도 아니었다. 전세사기를 당해 스스로 생을 끊는 선택을 한 개인이었다.

잊혔던 그날 빈소 취재의 기억이 다시 떠오른 것은 지난달 27일 오후였다. 이날은 인천지법 형사항소1-2부가 2021년 3월부터 2022년 7월까지 인천 미추홀구에서 대규모 전세사기를 벌인(사기, 공인중개사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건축업자 남아무개(63)씨 일당의 항소심 선고를 하는 날이었다. 1심에서 사기죄의 법정 최고형인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은 남씨는 항소심에서 징역 7년으로 절반 넘게 감형받았다. 같은 혐의로 기소된 공인중개사와 중개보조원 등 공범 9명에게도 징역 4∼13년의 실형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나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재판부의 논리는 전세계약 당시 남씨의 재력이 전세보증금을 충분히 돌려줄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이후 자금 사정이 악화해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더라도 사기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재판부는 남씨 소유의 부동산이 경매로 넘어가기 시작한 2022년 1월부터 남씨의 자금 사정이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할 정도로 악화했다고 판단했다. 2022년 1월부터 체결된 계약만 전세사기로 인정한 이유다. 하지만 이러한 판단은 판결문에서 재판부가 인정한 사실에 비추어 봤을 때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남씨가) 2018년부터 재산세 등의 미납으로 압류를 당하거나 임차인들과 임대차보증금 반환청구 분쟁을 겪기 시작했다. 이에 더하여 2020년 말 또는 2021년 초부터 이 사건 단체의 중개팀 직원들에게 급여나 성과수당을 지급하지 못했다”고 적었다. 이미 그 전부터 남씨의 자금 사정이 악화하고 있음을 재판부가 인정하고 있던 셈이다.

판결문을 다시 읽어보는 기자도 이해시키지 못하는 이 판결이 전세사기 피해자에게 와닿을 수 없다. 안상미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위원장은 항소심 선고 이틀 뒤 인천지방검찰청 앞에서 항소심 재판부의 판결을 지적하며 울분을 토했다. “전세계약을 하지 못할 만큼 부동산 질서를 무너뜨린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해주는 세상이 맞습니까. 여러분들 자식들에게 이 세상이 맞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고 배웠고, 법을 지키면서 살라고 배웠는데 도대체 난 뭘 배운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안 위원장의 표정과 목소리는 오열과 분노로 가득 찼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 대한민국은 ‘사기공화국’이었다.

미추홀구 전세사기가 공론화한 뒤 4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2명은 이미 앓고 있던 지병이 악화해 숨졌다. 전세사기로 목숨을 끊은 피해자들의 집을 찾을 때마다 문 앞에 붙은 “수도요금 체납입니다. 120번 확인 후 납부하세요. 미납 시 단수합니다”라는 쪽지를 볼 수 있었다. 세상을 등지기 전 피해자들에게 전한 국가의 마지막 메시지는 독촉장이었다.

이후 정부는 사유재산이라며 건물 관리 지원에서 손을 뗐고, 국회는 전세사기 특별법 시행 1년2개월이 지나서야 뒤늦게 전세사기 특별법을 개정했다. 그리고 가해자들을 엄벌에 처하고 사회 정의를 실현해야 할 사법부는 관용을 베풀었다. 이것이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기억하는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지난해 4월 원희룡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은 국회에서 “전세사기가 사회적 재난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사회적 재난·참사의 명백한 희생자다. 그리고 그들의 피해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seugwook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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