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198] 양궁에서 왜 ‘그랜드슬램’이라 말할까

김학수 2024. 9. 4.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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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파리 올림픽 남자 양궁에서 김우진(청주시청)이 올림픽 개인전 금메달을 수확하며 양궁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 개인전 금메달에 올림픽 개인전 금메달 추가하면서 김우진은 '양궁 그랜드슬램'을 이뤘다.

한국 양궁에서 그랜드슬램이라는 말이 나온 것은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김수녕이 개인 및 단체전 2관왕에 오르면서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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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파리 올림픽 남자 양궁 개인전에서 우승, 한국 양궁 사상 두 번째로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김우진. [파리=연합뉴스]

2024 파리 올림픽 남자 양궁에서 김우진(청주시청)이 올림픽 개인전 금메달을 수확하며 양궁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 개인전 금메달에 올림픽 개인전 금메달 추가하면서 김우진은 ‘양궁 그랜드슬램’을 이뤘다. 양궁에서 그랜드슬램을 이룬 한국 선수는 이전까지 박성현 전북도청 감독이 유일했다. 김우진은 남자 단체전과 혼성 단체전에 이어 다시 금메달을 챙겨 사상 첫 올림픽 양궁 3관왕에 등극했다.
그랜드 슬램이라는 말은 이미 표준 국어사전에도 오른 외래어이다. 사전에는 ‘골프, 테니스에서 한 선수가 한 해에 4대 타이틀 경기에서 모두 우승하는 일 또는 야구에서 만루 홈런을 치는 일’로 설명한다. 그랜드 슬램은 ‘큰, 웅대한’이라는 뜻의 ‘Grand’와 ‘쾅 때린다’는 의미의 명사 ‘Slam’가 어울어진 영어이다. 직역하면 크게 친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주요 대회에서 모두 우승을 했다는 것을 강조하는 의미로 적합한 조어라고 여겨진다. 영어용어사전 등에 따르면 그랜드 슬램의 어원은 원래 카드놀이인 브리지게임에서 패 13장 전부를 따는 ‘압승’을 뜻하는 용어에서 나왔다고 1814년 찰스 존스의 게임 책인 ‘Hoyle's Games Improved’에서 설명했다. (본 코너 86회 ‘왜 골프에서 ‘그랜드 슬램(Grand Slam)’이라고 말할까‘, 904회 ’테니스에서 왜 ‘그랜드 슬램(Grand Slam)’이라고 말할까‘ 참조)
이후 그랜드 슬램은 특별하고 강력하다는 의미로 다른 종목에서 널리 쓰였다. 폴 딕슨의 야구사전에는 미국야구에선 1929년 그랜드 슬램을 만루홈런이나 한 번에 많은 득점을 올리는 뜻으로 사용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골프에선 1930년 미국의 바비 존스가 브리티시 오픈, US오픈, 브리티시 및 US 아마추어 등 4개 대회에서 모두 우승을 하면서 처음으로 그랜드 슬램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테니스에선 1938년 미국의 돈 버지(1915-2000)가 4대 메이저대회 윔블던, 프랑스, 호주, US오픈에서 모두 우승을 하면서 이 말을 쓰기 시작했다.

스포츠 뿐 아니라 군사나 문화 용어로도 그랜드 슬램이라는 말이 쓰인다. 2차 세계대전 때 영국 공군이 사용한 강력한 폭탄을 ‘그랜드 슬램’이라고 불렀으며 칵테일 용어로도 쓰였다.
우리나라 언론에선 1960년대부터 이 말이 등장한다. 조선일보 1962년 8월24일자 ‘아 십 니 까? 세계제일(世界第一)’ 기사는 ‘이제까지 사용된것중에 가장 컸던폭탄은 영국공군이 일구사(一九四)〇년「U=보트」상륙작전에 투하한「그랜드·슬램」으로이(二)천육(六)백육십(六十)관이었다.실험용으로는 일구사구(一九四九)년 미국 공군이「캘리포니아」의「뮤록」에서 시험한오(五)천칠십칠(七十七)관짜리였다’고 소개했다. 조선일보 1972년 6월22일자 ‘니클라우스 13승(勝)기록,4관왕(冠王) 도전’ 기사는 ‘잭 니클라우스는 US오픈우승으로올해 상금합계(賞金合計) 18만6천51달라를 올려 선두(先頭)를 계속 유지—그는 전번의마스타즈와 합해 세계(世界)2대(大)타이틀을 딴것이며 전영(全英),전미(全美)프로등을 노려 그랜드슬램(4관왕(冠王))에의위업(偉業)에정진케되었다. 그는 이제 빅 토너먼트 13승(勝)(마스타즈4,전영(全英)2,전미(全美)프로2,전미(全美)아마2)을 기록함으로써구성(球聖) 보비 존스의 그것과 타이기록(記録)을 세웠다’고 전했다.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은메달로 그랜드슬램을 아깝게 놓친 '신궁' 김수녕. [연합뉴스 자료 사진]

한국 양궁에서 그랜드슬램이라는 말이 나온 것은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김수녕이 개인 및 단체전 2관왕에 오르면서부터였다. 김수녕은 1988년 1월 제5회 캘커타 아시아양궁선수권대회를 시작으로 1988년 10월 서울올림픽, 1989년 7월 제35회 로잔 세계양궁선수권대회 등 3개 대회를 모두 2관왕으로 석권해 아시아 경기대회에서만 우승을 하면 한국 양궁 사상 첫 그랜드슬램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1990년 베이징 아시아게임에서 준우승에 그친 뒤 현역서 은퇴를 해 그랜드슬램의 기회를 아깝게 놓쳤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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