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선과 곡선의 조화… ‘화쟁의 사유’를 담아낸 미술관 [스페이스도슨트 방승환의 건축진담]
서울 서남부의 공공기여형 예술 인프라
베니스 비엔날레 대상 수상 조민석 설계
마곡지구 반듯한 건물들과 대응한 ‘직선’
공원과 연결되는 보행축을 따르는 ‘곡선’
서로를 돕고, 동시에 둘을 넘어 큰 하나로
스페이스K의 설계자는 건축가 조민석이다. 10년 전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 건축전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던 조민석은 국제적으로 가장 주목받고 있는 국내 건축가다. 올해는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참여한 영국 서펜타인 파빌리온의 설계를 맡기도 했다. 그는 스페이스K를 도시 맥락을 심도 있게 고민한 결과로 설명하며, ‘새로운 공공장소로서의 미술관’을 지향한다고 밝혔다.
그의 고민을 짐작할 수 있는 요소는 건축물의 조형을 이루는 곡선과 직선이다. 스페이스K의 평면도에서 시작된 두 요소 중 직선은 마곡 도시개발을 통해 만들어진 주변의 반듯한 건물과 땅에 대응한다. 그래서 건물의 북쪽과 동쪽 입면은 맞은편 건물들과 닮은 직벽이다. 반면 곡선은 앞서 언급한 ‘X’자 형태의 보행 동선과 공원 언덕 그리고 발산역과 마곡역을 연결하는 보행축에 대한 대응이다. 그래서 건물의 남쪽과 서쪽은 하나의 곡선 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 건축평론가는 조민석의 건축작업에 대해 “다른 두 종류가 서로 함께 있음으로써 서로를 돕는, 둘이면서 그와 동시에 둘을 넘어서는 더 큰 하나를 이룬다”고 평하며, ‘화쟁의 사유’를 언급했다(출처 ‘건축 없는 국가’, 이종건). 원효의 중심 사상인 ‘화쟁(和諍)’은 “서로 다른 이론을 인정하고 더 높은 차원에서 통합을 이루려는 이론”이다. 스페이스K에서 조민석이 보여주는 ‘화쟁의 사유’는 미술관이 자연과 인공, 공원과 도시, 곡선과 직선 사이의 균형을 넘어 유기체로서의 존재감으로 드러내면서 발현된다.
무기체인 건축이 유기체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건축가가 건물의 틈과 경계를 없애고 디테일을 최소화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노출콘크리트로 지어진 건물은 거푸집을 고정하기 위한 폼타이(form tie) 구멍이나 거푸집 사이의 틈이 일종의 시그니처처럼 남는다. 그런데 스페이스K에서는 이런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건물과 연결된 경사로나 계단에도 선명한 틈이 보이지 않고 경사로를 받치는 기둥도 없으며, 천창은 천장 구조 속에 숨겨져 있다. 외벽 마감재 패널이 반복돼 있는 주변 건물과 차별화되는 ‘무봉(無縫)’의 건물을 만들기 위해 조민석은 콘크리트를 한 번에 타설했다고 한다.
스페이스K에는 소장 작품이 없다. 그래서 모든 전시는 기획전으로 열린다. 주로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해외 작가나 아직 주목받지 못한 국내 작가의 작품을 다루는데 그러다 보니 추상적인 현대 회화가 주를 이룬다. 커다란 추상화와 솔기 없는 건물을 번갈아 바라보다 보면 내가 유기체 속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이런 느낌을 2022년에 열린 ‘그리고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전시 때 가장 강렬하게 느꼈다. 붉은색의 꿀렁꿀렁한 형태가 그려진 이근민 작가의 그림은 마치 생물체의 내부 장기 같았다.
스페이스K에서 가장 매력적인 장소는 2층에 전시실을 향해 뚫린 자그마한 창이다. 이 창을 통해 전시 작품과 폭 27m의 곡선 너머로 보이는 바깥 풍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장면은 기획전이 바뀔 때마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자연 풍경과 함께 늘 변한다. 그래서 스페이스K에 새로운 전시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리면 2층의 작은 창을 통해 이번에는 어떤 장면을 바라보게 될지 기대하게 된다.
방승환 도시건축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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