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고대와 중세의 분기점이 된 순간 [역사&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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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6년 9월 4일, 게르만족 용병 출신인 오도아케르가 서로마 제국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강제로 퇴위시켰다.
이로써 서로마 제국은 로마제국이 동서로 분할된 지 81년 만에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오도아케르는 서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후 왕을 자칭했지만, 동로마 제국은 그를 정식 황제로 인정하지 않았다.
로마 법, 로마 도로, 로마 건축 등 로마 문명의 유산은 서구 문명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데, 서로마 제국의 멸망은 이러한 문명의 쇠퇴를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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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476년 9월 4일, 게르만족 용병 출신인 오도아케르가 서로마 제국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강제로 퇴위시켰다. 이로써 서로마 제국은 로마제국이 동서로 분할된 지 81년 만에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서로마 제국의 멸망은 오랜 기간 축적된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한 결과다. 끊임없는 전쟁과 외침으로 인해 경제가 파탄 직전에 이르렀다. 특히, 로마제국을 먹여 살리던 농업 생산성이 급격히 감소했고, 화폐 가치가 폭락하며 인플레이션이 심화해 민심을 잃었다.
빈부 격차 심화, 노예제도 붕괴, 도시 빈민 증가 등으로 사회 불안도 깊어졌다. 이는 제국 내부의 분열을 야기하고, 중앙 정부의 통제력을 약화시켰다. 또한 잦은 전쟁과 외침으로 인해 군대의 질이 저하됐고, 용병 의존도가 높아졌다. 이는 국방력 약화로 이어져 외부 침입에 취약해졌다.
황제들의 무능과 독재, 귀족들의 권력 다툼 등은 정치 불안을 초래했다. 중앙 정부의 권위가 실추되면서 지방 세력들이 강성해지고, 제국은 분열 위기에 직면했다. 관료들의 부패와 뇌물 수수가 만연해 국가 재정이 낭비됐고, 백성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여기에 훈족 등 유목민들의 침입으로 인해 게르만족이 로마 영토로 대거 이동하면서 국경 지역이 불안정해지고 로마는 방어에 어려움을 겪었다.
오도아케르는 서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후 왕을 자칭했지만, 동로마 제국은 그를 정식 황제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후 동로마 제국은 오도아케르를 제압하기 위해 고트족의 테오도리쿠스 대왕에게 원정을 요청했다. 결국 오도아케르는 테오도리쿠스와의 전투에서 패하고 사망했다.
서로마 제국의 멸망은 고대 문명의 종말을 의미하며, 중세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로마 법, 로마 도로, 로마 건축 등 로마 문명의 유산은 서구 문명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데, 서로마 제국의 멸망은 이러한 문명의 쇠퇴를 의미했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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