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정 바뀌어도 고민인 ‘서비스타임’..완벽한 것은 없고 편법은 늘 존재한다[슬로우볼]
[뉴스엔 안형준 기자]
규정이 변해도 방법은 있고 고민도 여전하다.
메이저리그는 지난 2022시즌에 앞서 심각한 노사 갈등을 겪었다. 사상 초유의 '직장 폐쇄'까지 단행된 극한 갈등 끝에 노사 양측은 극적인 합의를 이뤘다. 그렇게 체결된 CBA(노사협약)에는 유망주의 서비스타임에 대한 내용도 포함됐다.
아마추어 신분으로 입단한 선수가 FA 자격을 얻기 위해 의무적으로 채워야 하는 등록일수인 서비스타임은 구단과 선수 모두에게 민감한 사안이다. '돈'과 직결된 문제기 때문이다.
FA 자격 취득 전까지 선수는 소속팀과 연봉 협상만 벌일 수 있다. 물론 성적에 따라 연봉은 오를 수 있지만 한계가 분명 존재한다. 대신 FA 자격을 얻을 경우 FA 시장에서 자유롭게 모든 구단과 계약 규모와 기간에 대한 협상을 벌일 수 있다. 소속팀과 거액의 장기계약을 맺을 것이 아니라면 모두가 꿈꾸는 천문학적인 금액의 계약을 맺기 위해서는 FA 자격을 취득해야 한다.
신체 능력을 활용하는 스포츠에서 나이는 아주 중요한 요소다. 나이가 들어도 좋은 성적을 내는 베테랑 선수들도 얼마든지 존재하기는 하지만 신체 능력이 특정 나이대에서 정점에 오른 뒤 결국 하락한다는 '에이징 커브' 이론은 이미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렇기에 '어린 선수', '젊은 선수'의 가치가 높은 것이다.
FA 시장에서의 대우도 다르다. 같은 성적이라면 한 살이라도 어린 선수가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래서 선수는 어떻게든 단 1년이라도 더 빠르게 FA 자격을 얻고 싶어한다.
반면 구단의 입장은 다르다. 팀에 소속된 스타플레이어를 1년이라도 더 보유하고 싶은 것이 구단의 희망이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연봉 지출을 줄이고 싶은 것이 '사측'의 입장인 것은 어디에서나 진리다. 선수가 FA 자격을 늦게 취득할수록 구단은 해당 선수를 더 저렴하게, 더 오래 보유할 수 있다.
메이저리그는 한 시즌 빅리그 26인 '액티브 로스터'에 172일 이상 이름을 올려야 서비스타임 1년이 인정된다. 그리고 서비스타임 6년을 채워야 FA 자격을 얻는다. 이를 악용한 구단들은 빅리그 데뷔 준비가 끝난 특급 유망주들을 개막에 맞춰 데뷔시키지 않고 4월 말에 빅리그로 콜업했다.
정규시즌 잔여 일수가 172일 미만이 됐을 때 메이저리그에 선수를 데뷔시키면 구단이 해당 선수를 시즌 종료 때까지 기용한다고 해도 선수는 그 해 서비스타임 1년을 인정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구단들은 이런 방식으로 선수들의 FA 자격 취득 시기를 1년 늦추는 편법을 즐겨 사용했다. 이런 구단의 편법에 대한 선수들의 불만은 하늘을 찔렀다.
결국 2년 전 CBA 협상에서 대책이 마련됐다. 서비스타임 자체를 수정할 수는 없다. 대신 구단이 편법 사용을 포기하게 하는 어드밴티지를 부여하고 선수의 능력에 따라 구단의 편법을 저지할 수도 있게끔 했다.
새 규정 하에서 리그 신인왕 투표 1,2위에 오른 신인 선수는 등록일수와 무관하게 서비스타임 1년을 인정받는다. 구단이 아무리 '꼼수'로 데뷔를 늦춘다고 해도 선수 본인의 능력에 따라 서비스타임을 쟁취할 수 있는 안전장치다.
구단을 향한 유인책으로는 '꼼수'를 쓰지 않고 데뷔시킨 신인의 활약에 따라 드래프트 지명권을 추가 지급하는 조항이 신설됐다. 'TOP 100' 명단에 포함된 특급 유망주가 개막 2주 이내에 데뷔해 신인왕을 수상하거나 MVP 투표 혹은 사이영상 투표에서 3위 이내에 이름을 올릴 경우 다음시즌 신인드래프트 1-2라운드 사이에 지명권 1장을 소속 구단에 지급한다. 드래프트 상위 지명권은 엄청난 가치를 갖는 것. 구단 입장에서도 특급 신인의 서비스타임 1년을 포기할만한 요인이 된다.
하지만 모든 규정에는 틈이 있기 마련이다. 더이상 서비스타임을 두고 구단과 선수가 고민이나 갈등을 할 필요가 없을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정규시즌 종료까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현재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 구단들이 있다.
5월 데뷔해 빅리그에서 단 11번의 선발등판을 가진 뒤 올스타전 선발투수로 선정된 괴물 신인 폴 스킨스를 보유한 피츠버그 파이어리츠가 잔여시즌 스킨스를 등판시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견이 8월부터 나오고 있다. 새 규정이 피츠버그 구단에 모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신인드래프트 전체 1순위 지명자였던 스킨스는 현재 엄청난 활약을 펼치고 있다. 올시즌 18경기에 선발등판해 109이닝을 투구하며 8승 2패, 평균자책점 2.23을 기록했다. 만약 개막에 맞춰 데뷔해 규정이닝을 소화했다면 사이영상 경쟁까지도 펼치고 있을 성적이다.
문제는 스킨스의 데뷔가 4월 초가 아닌 5월이었다는 점이다. 스킨스는 TOP 100 명단에 포함된 기대주였고 현재 신인왕 경쟁을 펼치고 있다. 만약 스킨스가 신인왕을 수상하거나 신인왕 2위에 오를 경우 스킨스는 약 130-140일의 등록일수로도 서비스타임 1년을 채우게 된다. 선수 입장에서는 아주 좋은 일이지만 '시즌 개막 2주 이내 빅리그 등록'이라는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기에 스킨스가 신인왕을 수상한다고 해도 피츠버그는 추가 드래프트 지명권을 받을 수 없다.
어차피 포스트시즌 진출이 사실상 좌절된 피츠버그 입장에서는 스킨스를 '셧다운'시켜 더이상 성적을 쌓지 못하도록 하고 그를 1년 더 보유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다. 물론 서비스타임 손해를 감수하면서 그를 출전시킨 뒤 좋은 관계를 쌓아 구단에 더 유리한 조건으로 장기계약을 맺는 '큰 그림'을 그릴 수도 있지만 피츠버그의 시장 규모를 감안하면 쉽지는 않다. 아직 피츠버그는 스킨스의 출전을 제한하지 않고 있지만 향후 생각이 달라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뉴욕 양키스는 외야수 특급 유망주인 제이슨 도밍게즈가 고민이다. 2003년생 도밍게즈는 지난해 9월 빅리그에 데뷔했고 8경기에서 .258/.303/.677 4홈런 7타점의 빼어난 성적을 썼다. 하지만 아쉽게 부상을 당해 짧은 빅리그 체험 후 장기 결장의 길에 들어섰다.
올해 부상에서 회복한 도밍게즈는 트리플A 38경기에서 .298/.354/.457 5홈런 18타점 14도루로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월드시리즈를 노리는 양키스는 애런 저지와 후안 소토가 맹활약 중이지만 알렉스 버두고의 부진이 고민이다. 지난해 짧고 굵은 활약을 보여준 도밍게즈인 만큼 부진한 버두고를 충분히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하지만 양키스도 도밍게즈의 서비스타임이 고민이다. 부자 구단인 양키스는 FA 자격 취득을 늦추려는 '꼼수'보다는 도밍게즈의 활약으로 얻을 수 있는 '보상'에 더 관심이 있다. 하지만 그 부분에서 현재 문제가 있다.
지난해 데뷔한 도밍게즈는 빅리그에서 35타수를 기록했다. 메이저리그 타자의 신인 요건은 빅리그에서 130타수 이하를 소화했을 때만 유지된다. 이미 35타수를 기록한 도밍게즈가 잔여 시즌을 빅리그에서 보낼 경우 95타수 이상을 기록해 내년 시즌 신인 자격을 잃게 될 가능성이 있다.
양키스는 신인왕 후보가 될 수 있는 도밍게즈가 팀에 추가적인 드래프트 지명권을 가져다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래서 올해 잔여시즌 신인 자격을 잃지 않도록 버두고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도밍게즈를 계속 콜업하지 않고 있다. 신인 선수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부여하도록 유도하는 요인이 오히려 유망주의 기회를 막고 있는 셈이다.
예전처럼 구단이 일방적으로 편법을 사용해 선수의 앞길을 막는 일은 줄어들었다. 하지만 완벽한 것은 없고 새로운 규정에서도 여전히 서비스타임을 둘러싼 고민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자료사진=위부터 폴 스킨스, 제이슨 도밍게즈)
뉴스엔 안형준 markaj@
사진=ⓒ GettyImagesKorea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newsen@newsen.com copyrightⓒ 뉴스엔.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뉴스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과감히 시장 ‘큰 손’으로 나선 캔자스시티, 가을 티켓 지켜낼 수 있을까[슬로우볼]
- ‘2할 승률’ 최하위팀서도 자리 못 잡은 센젤..계속 추락하는 왕년 특급 유망주[슬로우볼]
- 이정후 품으며 시즌 준비했지만 ‘비용 절감’ 수순..시즌 실패 인정한 샌프란시스코[슬로우볼]
- 최악 부진→강등에 ‘특급 경쟁자’까지 마주하게 된 배지환, 위기 이겨낼 수 있을까[슬로우볼]
- 스넬이 편은 들어줬지만..자존심 구긴 ‘악마’ 보라스, 명예회복 할 수 있을까[슬로우볼]
- 지난해 반등 후 급격한 추락..또 자리 잃은 로사리오, 다시 활약할 수 있을까[슬로우볼]
- 다저스와 결별하는 헤이워드..황혼기 접어든 ‘역대급 고평가’ 선수의 미래는?[슬로우볼]
- ‘Adios, 출루의 신’ 그라운드 떠난 또 한 명의 전설, 조이 보토[슬로우볼]
- 벌써 정복된 새 규정들? 700개 뚝 떨어졌다..단 1년만에 막 내린 ‘도루의 시대’[슬로우볼]
- 출전할수록 손해? PS서 멀어진 피츠버그, 스킨스 ‘셧다운’으로 실리 찾을까[슬로우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