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토끼의 슬픔[취재 후]

2024. 9. 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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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호우 선임기자



어릴 적 시골에는 주변에 집토끼가 많았다. 친구 집에 가면 집토끼를 쉽게 볼 수 있었다. 번식력이 강했기 때문에 집에서 토끼를 키우는 집이 많았다. 이에 반해 산토끼는 정작 구경하기 힘들었다.

그런 산토끼를 잠깐 볼 기회가 있긴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솔방울을 겨울철 난로에 사용하기 위해 아이들이 동원됐다. 모두 야산에 올라가 쌀 포대에 솔방울을 주워 담았다. 수많은 아이가 한꺼번에 야산을 찾는 바람에 놀란 산토끼들이 여기저기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산토끼들은 유유히 아이들의 틈을 빠져나갔다. 산토끼를 쉽게 잡을 수 없음을 그때 눈으로 직접 체험했다. 그 빠른 발놀림을 어떻게 따라갈 수 있으랴.

선거철에는 늘 집토끼·산토끼 논쟁이 벌어진다. 집토끼(각 정당 지지층)만 감싸고 돌던 각 정당은 선거를 앞두고 산토끼(무당층·중도층)에 구애한다. 그러다가 집토끼를 잃어버리는 경우도 발생한다. 집토끼는 잘 지켜야 하고, 산토끼는 잘 잡아야 이 딜레마를 극복할 수 있다. 지난 8월 18일 전당대회를 통해 집토끼의 안전을 다시 한번 확인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본격적으로 산토끼를 찾아 나서고 있다. 종부세·금투세·상속세 완화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사정은 다르다. 2026학년도 의대 증원 유예를 제안했다가 용산 대통령실의 반대에 부딪혔다. 산토끼를 잡으려다 집토끼까지 도망쳐 버린 격이다.

산토끼는 이제 알 만한 것은 다 알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한없이 무능하고, 여당은 무능한 정부를 옹호하기 바쁘다. 야당은 오로지 힘으로 여당을 밀어붙이기만 한다. 그러니 산토끼에게는 마음에 드는 정당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누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인가.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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