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번진 계엄 논란, 민주당은 이 시점에 왜? [뉴스 분석]

엄지원 기자 2024. 9. 4.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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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정치권이 때아닌 ‘계엄 시나리오’ 공방으로 뜨겁다. 시작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일 여야 대표회담 머리발언에서 언급한 ‘계엄 준비설’이었다. 이 대표의 이 발언이 대통령실과 여당으로부터 “날조된 유언비어” “국기문란”이란 역공을 받자 민주당 지도부와 소속 국방위원들이 일제히 엄호사격에 나서면서 충돌이 격화됐다.

지금 확산되는 계엄 준비설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윤석열 정부가 2022년 11월 입법예고한 대통령경호법 시행령 개정안과 만나게 된다. 개정안은 김용현 경호처장(현 국방부 장관 후보자)이 이끄는 대통령 경호처가 경호 업무를 수행하는 군·경찰을 지휘 감독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개정안대로라면 경호처장은 경호처 요원 700여명과 1300명의 경찰, 1천명의 군병력 등 모두 3천여명을 자신의 지휘권 아래 거느리게 되는 셈이었다.

당시 대통령실이 경호처 권한 강화를 추진했던 명분은 측면과 배후가 산으로 막힌 청와대와 달리 대통령실이 옮겨 간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는 사방이 트여 경호에 필요한 인력·장비의 확충이 불가피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유신 시절인 1976년부터 4년간만 존재했던 경호처의 타 기관 지휘·감독권 부활 시도에, 야당 지지층에선 높아진 반정부 여론을 의식한 대통령실이 정권 위기 때 계엄과 같은 비상령을 선포해 시민의 반발을 제압하려는 사전 포석으로 받아들였다. 시행령 개정안은 논란 끝에 보류됐다가, 지난해 5월 ‘지휘·감독’ 대신 ‘관계기관의 장과 협의’한다는 문구를 넣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2022년 6월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김용현 당시 경호처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한동안 잠잠했던 계엄 준비설이 다시 고개를 든 건 경호처 권한을 확대한 당사자인 김용현 경호처장이 지난달 12일 국방부 장관 후보자에 지명되면서부터다. 민주당이 무엇보다 주목한 건 김 후보자가 국방부 장관으로 옮겨 가면 ‘충암파’라 불리는 윤 대통령의 충암고 선후배들이 군정·군령권은 물론, 실병력의 동원과 통제에 필수적인 정보 계통의 요직을 장악하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실제 김 후보자는 윤 대통령의 충암고 1년 선배다. 정보기관인 국군방첩사령관에 임명된 여인형 중장도 충암고 출신이다. 방첩사는 박근혜 정부 시절 계엄령 검토 문건을 작성한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의 후신으로, 계엄이 선포되면 주요 사건 수사를 지휘하고 정보·수사기관을 조정·통제할 합동수사본부도 방첩사에 꾸려진다. 그뿐이 아니다. 대북 특수정보 수집의 핵심 기관인 777사령부 수장인 박종선 사령관, 현행 계엄법상 국방부 장관과 함께 대통령에게 계엄 발령을 건의할 수 있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도 충암고 출신이다.

하지만 열거한 사실들은 군의 최근 상황이 예사롭지 않음을 보여주는 여러 정황 가운데 일부일 뿐, 계엄 준비설을 뒷받침할 만한 ‘물증’은 되지 못한다는 게 군과 정치권의 중론이다. 민주당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겨레가 취재한 민주당의 전현직 국방위원들은 “계엄 편람을 업데이트하기 위해 통상적인 연습은 가능하나,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7년 ‘기무사 문건’ 수준의 계엄 준비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럼에도 민주당 지도부가 연일 계엄을 입에 올리는 건 ‘정치적 예방주사’ 성격이 짙어 보인다. 이 대표와 가까운 민주당의 정무직 당직자는 3일 한겨레에 “일종의 사전 경고다. 국민들이 이런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어야 혹시라도 벌어질 상황에 대비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민주당은 구체적인 계엄 준비까지는 아니지만 군 내부에서 ‘대통령 탄핵 상황 등 정치적 급변 사태에 대비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민주당발 계엄 시나리오를 여권은 ‘괴담 정치’ ‘선동 정치’라 쏘아붙이며 역공 소재로 삼는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계엄 준비설은) 오로지 상상에 기반을 둔 괴담 선동일 뿐”이라며 “민주당이 여기 목매는 건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방어하고 대통령 탄핵 정국을 조성하려는 목적”이라고 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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