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대의 농사직설] 임차농이 ‘유령 농부’ 되지 않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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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지 임대차를 둘러싼 부조리를 고발한 최근 '농민신문' 기사(2024년 8월12일자)를 실감 나게 읽었다.
친환경농사를 짓던 임차농이 땅주인의 회유로 스스로 친환경 인증을 취소하고 '유령 농부'로 전락한다는 내용이었다.
농업경영체를 등록해 직불금을 수령한 이의 정보(땅주인)와 같은 농지에서 친환경 인증을 취득한 농가의 정보(임차농)가 다르게 나타나자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은 땅주인에게 공익직불금 부정수급이 의심된다고 통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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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주에 계약서 작성 말 못꺼내
공익직불금 부정수급 회피 위해
임대차 부조리 만연한게 현실
땅 안사고 농사 지을 수 있어야
임대 물량 늘리고 관리 강화를
농지 임대차를 둘러싼 부조리를 고발한 최근 ‘농민신문’ 기사(2024년 8월12일자)를 실감 나게 읽었다. 친환경농사를 짓던 임차농이 땅주인의 회유로 스스로 친환경 인증을 취소하고 ‘유령 농부’로 전락한다는 내용이었다.
기사의 요지는 이렇다. 농업경영체를 등록해 직불금을 수령한 이의 정보(땅주인)와 같은 농지에서 친환경 인증을 취득한 농가의 정보(임차농)가 다르게 나타나자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은 땅주인에게 공익직불금 부정수급이 의심된다고 통보했다. 땅주인이 직접 농사를 짓지 않았기에 명백한 부정수급이었다. 땅주인은 불법을 자인하는 대신 임차농한테 친환경 인증 취소를 제안하고, 수용하면 땅을 계속 빌려주겠다고 회유했다. 임차농은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고 농업경영체 등록도, 친환경 인증도 없는 ‘유령 농부’가 됐다.
농지 임대차를 둘러싼 부조리는 대한민국 농촌에 만연해 있다. 내가 사는 제주 마을도 예외가 아니다. 연로한 한 이웃마을 주민은 하우스를 포함해 2만㎡(6050평) 농사를 2년 전까지 직접 지었다. 더이상은 몸이 힘들어 절반의 땅을 친척한테 빌려주기로 했다. 농지 임대차계약서도 써줬다. 덕분에 친척은 농업경영체 등록을 하고 각종 제도적 지원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1년 만에 계약서를 파기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연리 0.7%의 농어촌진흥기금을 1억원가량 쓰고 있었는데 지난해 초 융자액이 절반으로 깎였다. 농지 규모가 줄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알고 보니 계약서를 작성해 임대차 사실을 정직하게 노출시킨 게 화근이었다. 그래서 전체 농사를 내가 직접 짓는 것으로 서류를 다시 꾸몄다”고 토로했다.
필자는 이전 칼럼에서 9917㎡(3000평) 감귤밭을 빌려 농사를 시작했다고 썼던 적이 있다. 당시엔 털어놓지 못했지만 사실은 임대차계약서를 작성하지 못했다. 땅주인이 8년 이상 자경 요건을 채워 양도세 감면 혜택을 누리고자 한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계약서를 쓰자는 말을 꺼낼 수조차 없었다.
임대차계약서가 없으니 농업경영체로 등록할 수가 없고 농협 조합원이 될 수도 없었다. 비료나 농약을 구입할 때는 이웃 조합원의 이름을 빌려야 했고, 농업기술센터의 저렴한 농기계 임대서비스도 이용할 수 없었다. 허다한 농업보조금은 그림의 떡, 농업경영체가 아니면 아예 접근할 수도 없다. 농사 이력이 어디에도 남지 않는 ‘유령 농부’였던 것이다. 고민 끝에, 귀퉁이 땅이라도 내 땅을 장만하기로 했다. 귀농자들에게 지원하는 창업자금을 어렵게 빌려 노년의 농지 구입이라는 모험 투자를 감행했다. 하지만 곧 돌아올 원금상환 일정을 어떻게 맞춰나갈지, 속으론 걱정이 태산이다.
대한민국에서 물려받은 땅이 없는 사람은 전업 농부가 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들 한다. 값비싼 농지 구입에 따른 투자 부담이 비현실적으로 커졌기 때문이다. 어떻게 문제를 풀 것인가. 답은 가까이 있다. 땅을 사지 않고도 농사를 지어 먹고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농지 임대 물량이 넉넉하게 공급되도록 하고, 임차농이 ‘유령 농부’가 되지 않도록 부조리를 정리해야 한다.
농지 이슈는 자칫 ‘뜨거운 감자’일 수 있다. 하지만 청신호도 켜지고 있다. 고령화로 농사지을 사람이 태부족이다. 농지의 임대 대기 물량이 차고 넘친다. 농지 임대차의 부조리를 차단할 수 있는 정부의 농지 관리 역량도 충분히 축적돼 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정부의 용기를 기대한다. 농업의 신규 진입장벽을 허물고 지속가능한 발전의 토대를 다지는 일이다.
김현대 농사저널리스트·전 한겨레신문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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