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조 시장규모 'RPT'…SK바이오팜 '노크'
최태원 장녀 최윤정 본부장 "고품질 악티늄 확보"
[아이뉴스24 정승필 기자] 글로벌 빅파마들이 차세대 표적항암제로 방사성의약품 RPT(Radiopharmaceutical Therapy)를 주목하며 이를 개발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기술 확보에 나섰다. 이들 기업 모두 알파(α) 방사성 동위원소 '악티늄-225(AC-225)'를 기반으로 RPT를 개발 중인데, SK바이오팜도 같은 물질 통해 RPT 개발에 뛰어들어 어떤 차별성을 보일지 이목이 쏠린다.
표적항암제 기술에는 대표적으로 항체약물접합체(Antibody-drug conjugates·ADC)가 있다. 이는 암세포를 탐지하는 항체(Antibody)에 특정 암세포의 항원 단백질을 공격하는 독성약물(Drug)인 페이로드를 링커(Linker)로 결합(conjugates)하는 차세대 플랫폼 기술로 꼽힌다. 여기서 링커의 역할은 주변 세포를 손상시키지 않고 표적으로 삼은 암세포에 선택적으로 약물을 방출해 제거하는 것이다. 이 기술은 암 치료의 효과성을 높이면서도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어, 마치 유도미사일과 유사하다.
RPT도 ADC와 비슷하게 종양 세포를 표적으로 삼아 리간드(결합 물질)에 방사성 동위원소를 탑재해 미량을 체내로 투여해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방식이다. RPT에는 방사성 동위원소 중 적절한 반감기를 가진 성질의 물질만 쓰이는데, 반감기가 길면 체내에 방사선이 남을 수 있어서다. 따라서 치료용은 반감기를 최소 7일, 진단용은 수 시간 정도의 반감기를 가진 물질을 사용한다.
업계에서는 RPT가 항암 치료제로서 뛰어난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나, 방사성 동위원소의 반감기와 원료의 안정적 확보가 어려운 점 등 진입 장벽이 높다고 평가한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이 RPT 기술 개발에 주력하는 이유는 시장 규모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프레시던스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2022년 글로벌 RPT 시장 규모는 53억달러(한화 약 7조원)를 기록했으며, 오는 2032년에는 137억달러(한화 약 19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빅파마 아스트라제네카 등 RPT 개발 위해 회사 인수까지
RPT 분야 선점 경쟁은 글로벌 제약사들 중심으로 연구 개발과 인수 합병에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등 과열되고 있는 양상이다. 영국 아스트라제네카는 올해 3월 캐나다 RPT 개발사 퓨전파마슈티컬스(Fusion Pharmaceuticals·이하 퓨전)를 24억달러(한화 약 3조2000억원) 규모로 인수하며 시장 진입을 본격화했다.
퓨전은 방사성 동위원소 악티늄-255를 활용해 항암제를 연구 중이다. 주요 파이프라인은 전이성 거세저항성 전립선암(mCPRC)을 대상으로 하는 후보물질인 'FPI-2265'다. 현재 임상 2상을 진행하고 있다. 이 물질은 mCPRC에서 과하게 발현되는 단백질인 전립선특이막항원(PSMA)을 표적으로 작용하는 기전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스트라제네카에 앞서 미국 일라이릴리와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BMS)도 지난해 각각 포인트바이오파마(POINT Biopharma)와 레이즈바이오(RayzeBio)를 14억달러와 41억달러에 인수하며 RPT 분야에 뛰어들었다.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악티늄-255을 이용한다는 점이다.
악티늄-225는 알파 입자를 방출하면서 암세포를 파괴하는데, 이 과정에서 방출되는 에너지는 암세포 주변에 있는 정상 세포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반감기의 경우 약 10일로, 이는 치료에 사용한 뒤 체내에서 빠르게 감소해 환자의 방사선 노출을 줄일 수 있다.
'한 우물' 판 SK바이오팜, 미래 전략으로 RPT 낙점
이 가운데 창사 이래 10여 년 동안 뇌전증 치료제 '엑스코프리(성분명 세노바메이트)'에 집중해온 SK바이오팜이 RPT를 차기 혁신 신약으로 점찍었다. 글로벌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악티늄-225를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악티늄-225 공급 문제는 미국 테라파워(TerraPower)의 자회사인 테라파워 아이소토프스(Isotopes)와의 계약 체결로 상당 부분 해소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장녀인 최윤정 SK바이오팜 사업개발본부장은 "방사성 동위원소 특성상 RPT를 제조한 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일주일에서 열흘에 걸쳐 원소 활동이 반 정도 줄어들게 된다"며 "이 때문에 적시에 생산해 병원까지 빠르게 운송해서 투약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 본부장은 "반대로 말하면 원료의 공급망과 물류 허가 등 이런 프로세스를 먼저 잘 구축해놓는다면 큰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다른 후발주자들은 이런 장벽으로 인해 RPT 개발에 진입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현재 생산할 수 있는 물량도 매우 제한적이고 업체 수도 적기에 SK바이오팜이 중장기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영역으로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SK바이오팜은 올해 7월 홍콩 풀라이프 테크놀로지스(Full-Life Technologies)로부터 뉴로텐신 수용체(NTSR1)를 표적으로 하는 RPT 후보물질 'FL-091' 기술을 도입했다. FL-091은 대장암, 전립선암, 췌장암 등 다양한 유형의 고형암에서 과발현되는 수용체 단백질인 NTSR1에 선택적으로 결합해 암세포를 사멸하는 물질이다. 이 또한 악티늄-225 기반으로 설계됐다. SK바이오팜은 이 물질명을 'SKL35501'로 변경하고, 현재 전임상 단계에 착수한 상태다.
SK바이오팜 관계자는 "테라파워의 악티늄-225는 토륨-229라는 원료에서 화학적으로 추출하는 방식인데, 현재 토륨-229는 미국 에너지부 이외 경로로 확보가 불가능하다"라며 "테라파워가 이 원료를 미국 에너지부로부터 독점적으로 공급받고 있고, 이에 따라 자사가 고품질의 악티늄-225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RPT 전문성을 보강하기 위해 전문 인력을 적극적으로 채용하는 동시에 방사성 동위원소를 다룰 수 있는 기관인 한국원자력의학원과도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승필 기자(pilihp@inews24.com)Copyright © 아이뉴스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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