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 만에 돌아온 ‘비틀쥬스’에서 팀 버튼의 ‘리즈 시절’을 봤네
“쥬스 님이 풀려났도다.” 미치광이 악령 ‘비틀쥬스’가 어두운 다락방에 홀연히 나타나 킬킬대며 징그럽게 웃는다. 녹색 폭탄머리에 다크 서클을 가진 아저씨 악령은 팀 버튼 감독의 팬들이 열광하는 얼굴이다. 비틀쥬스가 4일 개봉한 <비틀쥬스 비틀쥬스>로 36년 만에 돌아왔다. 팀 버튼의 이름을 알린 <비틀쥬스>(1988)의 후속작이다.
반항적인 고스족 소녀였던 ‘리디아’(위노나 라이더)는 엄마가 됐다. TV쇼 ‘유령의 집’을 진행하며 유령과 대화하는 영매로 유명해졌다. 유령을 믿지 않는 딸 ‘아스트리드’(제나 오르테가)는 리디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리디아는 아빠 ‘찰스’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엄마 ‘델리아’(캐서린 오하라)와 함께 고향집에 돌아온다. 아스트리드가 유령에게 속아 저승에 끌려갈 위기에 빠지자 리디아는 딸을 구하기 위해 ‘비틀쥬스’(마이클 키튼)를 불러낸다.
<비틀쥬스>는 팀 버튼 감독 특유의 기괴한 상상력과 외톨이 캐릭터를 확립한 작품이다. 우울하면서도 유쾌하고, 끔찍하면서도 귀여운 독창적 세계를 만들어냈다. 그로테스크한 캐릭터들은 감수성 예민한 어린아이의 악몽에서 튀어나온 듯하다. 특히 비틀쥬스는 팀 버튼이 창조한 수많은 캐릭터들 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존재다. 무명에 가까운 코미디 배우였던 마이클 키튼은 비틀쥬스를 연기해 유명해졌다. <비틀쥬스 비틀쥬스>에서도 키튼의 활약은 여전하다. 비틀쥬스의 변태적 카리스마는 이 영화가 정신 없이 날뛰면서도 방향을 잃지 않도록 하는 힘이다.
<비틀쥬스 비틀쥬스>는 팬들의 향수를 변주하며 매력적인 드라마를 만들었다. ‘비틀쥬스’ 역의 마이클 키튼, ‘리디아’ 역의 위노나 라이더, ‘델리아’ 역의 캐서린 오하라가 36년 세월을 뛰어넘어 그대로 출연했다. 저승 복도를 청소하는 미화원 유령도 간만에 반갑다. 핼러윈 결혼식 장면의 즐거운 혼란은 전작의 저녁 식사 장면이 떠오른다. 다만 새로운 캐릭터들은 작품의 집중도를 다소 떨어뜨린다. 비틀쥬스의 부인이었지만 그에게 원한을 품은 ‘영혼 포식자’ 델로레스(모니카 벨루치)는 기대에 비해 허무하게 퇴장한다. 생전에 B급 영화배우로 활동했던 유령 형사 울프 잭슨(윌렘 대포)이 던지는 농담은 싱겁다.
팀 버튼은 <비틀쥬스 비틀쥬스>에선 컴퓨터그래픽(CG)을 활용해 끔찍한 코미디 캐릭터들을 구현했다. <비틀쥬스>에서 물감 특수효과와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을 뒤섞어 만들었던 독특한 느낌은 사라져 아쉽다. 영화의 모양은 매끈해졌지만 ‘가짜’ 티가 없어지면서 의외의 불쾌감도 생겼다. 출산 장면에서 피를 튀기며 등장하는 ‘아기 비틀쥬스’ 유령은 선을 넘은 농담처럼 느껴졌다.
팀 버튼의 영화는 고유한 색깔 덕분에 누구나 단번에 ‘팀 버튼 작품’이라고 알아볼 수 있었다. <비틀쥬스>의 대흥행은 팀 버튼을 그런 예술가의 지위에 올려줬다. 이후 팀 버튼은 <배트맨>(1989) <가위손>(1992) <화성침공>(1996) 등으로 전성기를 보냈다. 2000년대 들어선 <빅 피쉬>(2003) <찰리와 초콜릿 공장>(2005) 등의 수작도 만들었지만 점점 자기 색깔을 잃어갔다. 최근 디즈니 실사영화 <덤보>(2019)는 누가 연출했는지 모를 정도였다. 팀 버튼은 <비틀쥬스 비틀쥬스>에서 마음 먹고 ‘리즈 시절’(전성기)로 돌아간 것으로 보인다.
1990년쯤 <비틀쥬스>의 후속작이 <비틀쥬스 하와이 가다>라는 제목으로 기획됐지만 팀 버튼이 ‘배트맨 시리즈’에 집중하면서 무산됐다. 이후 제작 발표와 보류가 거듭되며 개봉까지 36년이 걸렸다. 한국에선 <비틀쥬스>가 ‘유령수업’이란 이름으로 극장 개봉 없이 곧장 비디오 시장에 나왔다.
얼굴이 없어진 캐릭터도 있다. <비틀쥬스>에서 리디아의 아빠 ‘찰스’를 연기했던 배우 제프리 존스는 2003년 미성년자 성범죄 혐의로 체포돼 경력이 끝났다. <비틀쥬스 비틀쥬스>에서 찰스의 죽음은 3D 애니메이션으로 그려지고, 찰스의 유령은 상어에게 뜯어먹혀 머리가 없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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