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을 기약하는 출범 100일 우주항공청 [기고]
우리 조상들은 100일의 의미를 중시했다. 태어나 건강하게 100일을 넘기면 일단 사람으로서 건강한 삶을 시작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1월 9일 '우주항공청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고, 5월 27일 경남 사천에서 우주항공청이 개청했다. 산고를 겪으며 태어난 우주항공청의 100일을 맞아 대한민국 우주항공산업의 지속가능한 100년을 기원하며, 나아갈 바를 고민해 본다.
서울에서 300㎞ 이상 떨어진 경남 사천에 중앙정부기관이 설치된 점은 매우 이례적이다. 역사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준비과정에서 어려움은 있었지만 지금까지 중앙정부기관에서는 볼 수 없던 파괴적 혁신이다. 우주항공청이 경남 사천에 자리 잡은 이유는 분명하다. 생산액에서나 고용인원 모두에서 경남에 항공우주산업의 70%가량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우주항공청이 사천에 설치된 것에 불만과 불안을 나타낸다. 불만은 본인 생각과 달리 된 것에 대한 다소의 이기적 불편함일 수도 있지만, 불안은 대한민국 우주항공산업의 미래를 걱정하는 진심에서 비롯한 것이라 생각한다. 필자는 그들에게 말하고 싶다. 우주항공청의 미래를 보고 싶거든 KAI를 보라. KAI의 전신인 삼성항공이나 대우중공업은 이미 1990년대에 경남 사천에 터를 잡았다. 지금은 본사와 연구개발부서, 생산부서까지 모두 한곳에 모여 있다. 지방에 몰려 있지만, 바로 사천에서 초음속 훈련기 T-50, 4.5세대 초음속 전투기 KF-21, 다목적 헬기 수리온, 공격형 헬기 LAH 등을 성공적으로 개발하여 세계에 수출하고 있다. 문제는 '지방'이 아니라 '지방에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다. KAI가 성공한 회사라면 우주항공청도 성공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여기서 우주항공청 성공을 위한 3가지 이슈를 짚어본다. 첫째, 우주항공청 설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예산 확보와 제도적 지원이 필수적이다. 우주항공청을 설치했다는 사실 자체에 만족하고 끝난다면 아이만 낳고 양육하지 않는 것과 같다. 세상을 바꾼 혁신적 변화는 축적된 에너지의 산물인 경우가 많다. 인류 최고의 물리학자 뉴턴이나 아인슈타인, 세계 최초의 비행기를 개발한 라이트 형제는 역사의 거인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들이 있기까지는 그에 앞서거나 동시대에 수많은 연구자가 있었고 무수한 연구 성과가 축적되어 뉴턴이나 아인슈타인, 라이트 형제라는 이름으로 폭발한 것이다. 현대 과학기술 측면에서 중국은 미국보다 분명 늦게 출발했다. 그러나 미국보다 훨씬 많은 사람을 투입함으로써 따라잡으려고 한다. 축적은 시간, 사람, 돈이며, 모두를 합치면 결국 돈이다. 2024년 우리나라 우주항공청의 총예산은 1조 원가량인데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예산은 30조 원에 달한다는 점을 기억하자.
둘째, 우리가 우주항공의 모든 분야에서 선두가 될 수는 없다. 우리나라가 전투기 시장에서 강자가 된 것은 남북한 대치라는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전투기 수요가 많았기 때문이다. 반면 우주산업 분야의 국내 시장은 크지 않다. 따라서 우주항공 분야에서도 우리가 앞서갈 수 있는 요건을 갖춘 분야를 '선택'하고 '집중'할 필요가 있다. 총액으로 미국이나 중국과 맞설 수 없다면 특정한 분야에 집중해서 강자가 되자는 것이다.
셋째, 모든 지원을 직접적으로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축적의 주요 인자 중 하나인 사람의 경우 대학을 통해 육성할 수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나 산업통상자원부의 예산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인력 교육과 연구개발의 경우 대학에 대한 예산 지원을 통해 성과를 얻을 수 있다. 지방의 산업과 공공기관의 큰 애로 중 하나인 사람의 문제를, 대학을 통해 해소하는 전략이다.
무리하게 욕심을 내기보다는 부족한 부분을 다른 방식으로 보충하여 폭발할 수 있는 에너지를 축적하는 것이 중요하다. 거듭 말하지만 축적은 시간과 사람, 돈으로 이루어진다. 축적 없이 좋은 결과는 없다. 온 국민의 축하와 기대 속에 태어나 출범 100일을 맞는 우주항공청. 그 10주년 기념식은 달에서, 50주년 기념식은 화성에서 치러지길 기대한다.
권진회 경상국립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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