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페이크 참사, 아이들에게 디지털 '윤리' 말고 '기술'만 가르친 결과다"
온라인 괴롭힘 등 디지털 폭력 방치
SW만 교육, 윤리적 사용 교육은 등한시
선진국, 저학년부터 토론하며 윤리 고민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부터 의무화해야"
“터질 게 터진 겁니다.”
전국 초·중·고교에서 일어난 딥페이크 성범죄 사태를 지켜보는 국내 미디어 학자들의 공통된 탄식이다. 딥페이크 범죄는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다. 온라인상의 집단 괴롭힘, 폭력적 영상 공유 등 어린이·청소년들의 온라인 일탈과 범죄는 지속돼 왔다. 그럼에도 디지털 기기의 윤리적 활용법에 대한 교육은 사실상 없었고, 친구·교사·가족을 소재로 한 성범죄 영상물을 어린이·청소년들이 제작하고 돌려보기에 이르렀다. 학자들은 정부와 학교가 미디어 교육을 계속 외면하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사용법만 배우는 한국, 윤리 고민하는 선진국
한국의 디지털 교육은 디지털 기기 사용법 중심이다. 초등학생은 국어 교과의 ‘매체’ 단원에서, 중·고교생은 정보 교과 등에서 미디어와 디지털에 대해 배운다. 하지만 기기나 소프트웨어 사용방법 위주다. '미디어를 비판적·윤리적으로 잘 사용하는 힘'을 뜻하는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미디어 문해력) 교육은 거의 없다.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이 희망 학교로 찾아가는 ‘디지털윤리’ 교육이 있지만 일회성 체험활동이다. 심재웅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미디어 리터러시는 오랜 교육을 통해 누적되는 힘인데, 현재 학교 교육은 생색내기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핀란드, 미국, 호주, 독일 등 교육 선진국에선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체계적으로 미디어 리터러시를 가르친다. 디지털 기술의 역기능과 윤리적 갈등에 대한 토론과 실습도 활발하다. 이문형 유한대 애니메이션영상학과 교수는 “핀란드에선 학생들이 자기 사진을 영상으로 편집하게 해서 '가짜뉴스' 제작이 얼마나 쉬운지 체감하게 하는 수업을 한다”며 “청소년이 스스로 디지털을 분석하고 판단하는 디지털 문해력을 키우는 훈련”이라고 설명했다.
온라인 공간에서 책임감을 갖고 공동체의 문제에 참여하는 ‘디지털 시민성’을 키우는 것도 중요시한다. 미국 하버드대가 청소년 디지털 교육을 위해 만든 학습 프로그램인 DRCP(Digital Literacy Resource Platform)는 디지털 기기로 사회와 건강하게 소통하는 법을 가르친다. 예컨대 2012년 흑인 소년 트레이본 마틴이 백인 히스패닉계 자율방범대의 총에 맞아 숨진 사건이 온라인 인종 차별 반대 운동으로 번진 사례를 탐구하는 식이다.
이대로라면 "훨씬 심각한 문제 일어날 것"
그러나 한국 정부가 내놓은 딥페이크 대책은 처벌 강화, 텔레그램 성범죄물 신속 삭제 등 대부분 사후 대응이다. 가해자를 만들지 않기 위한 근본 대책인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은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이번 사태는 10대가 딥페이크 성범죄 가해자이자 피해자라는 점에서 큰 충격을 안겼지만, 위험신호는 몇 년 전부터 있었다. 연예인 딥페이크 성범죄물은 2019년에 공론화됐다. 미국의 온라인 보안업체 ‘시큐리티히어로’의 ‘2023 딥페이크 현황’에 따르면, 한국은 전 세계에서 딥페이크 음란물에 가장 취약한 국가이며, 딥페이크 음란물의 소재로 가장 많이 활용된 10명 중 8명이 한국 가수였다.
교육 부재가 이어지면 청소년 디지털 범죄는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기술이 빠르게 발전할수록 10대와 기성세대의 지식 격차가 커져 속수무책이 된다. 심재웅 교수는 “지금이라도 의무적으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하지 않으면 딥페이크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강진숙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리터러시 교육을 법으로 제도화해야 한다”며 “교육 선진국에선 저학년일수록 교육을 의무화하고, 청소년 관련 법에도 리터러시 교육 항목을 넣는다”고 말했다.
언론·가정, ‘범죄’라고 정확히 부르기
학교와 가정의 역할도 크다. 정현선 경인교대 미디어리터러시연구소장은 “학교들이 자율 편성 시수에 미디어 리터러시를 넣어야 한다”며 "현재 딥페이크 문제도 쉬쉬하지 말고 학생들이 토론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언론이 딥페이크를 제대로 정의할 필요도 있다. 심재웅 교수는 “일부 언론이 딥페이크를 ‘놀이 문화’라고 표현하는데 놀이, 문화, 재미 등의 표현은 자제하고 ‘범죄’라고 명확히 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가정에서도 자녀에게 ‘너 텔레그램 하면 큰일 나’라고 얼버무리지 말고 가해자가 될지도 모를 위험성과 피해자가 될 경우 대처법을 직접적으로 상세히 말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남보라 기자 rar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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