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치아, 코리아”… 정호원, 韓 10회 연속 패럴림픽 金신화 썼다

파리=김정훈 기자 2024. 9. 4.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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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BC3 등급 男개인전 정상
“큰 부담에 시달려… 金 따서 후련”
패럴림픽서 4번째 金 목에 걸어
韓 보치아, 1988년부터 金 행진
정호원(가운데)이 3일 아레나 파리 쉬드에서 열린 파리 패럴림픽(장애인 올림픽) 보치아 BC3 등급 남자 개인전 결승에서 승리하면서 한국 보치아의 패럴림픽 10연속 금메달을 달성했다. 왼쪽은 정호원의 ‘경기 파트너’로 참가한 김승겸 코치, 오른쪽은 임광택 보치아 대표팀 감독이다. 정호원은 강선희와 함께 이번 대회 혼성 페어에도 출전한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한국 보치아 대표팀이 이번에도 비장애인 여자 양궁 대표팀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한국 여자 양궁이 10회 연속으로 올림픽 금메달 사냥에 성공한 것처럼 한국 보치아도 10회 연속 패럴림픽(장애인 올림픽) 금메달을 차지했다. 주인공은 ‘보치아의 페이커’ 정호원(38)이었다.

세계보치아연맹 BC3(사지마비) 등급 랭킹 3위 정호원은 3일 파리 패럴림픽 보치아 남자부 BC3 등급 개인전 결승에서 세계 1위 대니얼 미셸(29·호주)을 5-2(3-0, 1-0, 0-2, 1-0)로 물리쳤다. 그러면서 이번 한국 대표팀에 보치아 첫 금메달이자 전체 세 번째 금메달을 안겼다. 정호원에 앞서 정소영(36)이 여자 BC2, 정성준(46)이 BC1 등급 결승에 진출했지만 모두 마지막 문턱을 넘지 못해 1988년 서울 대회 때부터 이어진 보치아 금메달 획득 기록이 9회 연속에서 멈춰 있었다.

승리 확정 순간 경기용 고글을 벗어 던지며 포효한 정호원은 “그동안 표현은 안 했지만 매우 큰 부담에 시달렸다. 금메달을 따고 나니 마음이 후련하다”면서 “최근에 성적이 나오지 않아 (동갑내기 친구인) 김승겸 코치가 애를 참 많이 썼다. 그 덕에 경기력이 올라왔다”며 김 코치에게 공을 돌렸다.

정호원과 14년째 호흡을 맞추고 있는 김 코치는 “호원이가 성적이 나오지 않을 때 ‘나 때문인가’ 하는 자책을 많이 했다”며 “이런 마음과 부담감을 이겨내려고 이런저런 노력을 많이 했는데 좋은 결과로 이어져 기쁘다”고 말했다. 임광택 보치아 대표팀 감독도 “호원이의 경기력이 전성기 수준으로 돌아왔다”고 평했다.

2008년 베이징 대회 때부터 패럴림픽에 출전한 정호원은 3년 전 도쿄 대회 때까지 금 3개, 은 2개, 동메달 1개를 목에 걸었다. 그리고 5번째 패럴림픽인 이번 파리 대회 때도 금메달을 추가하면서 보치아 역사상 패럴림픽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 선수가 됐다. 이 종목에서 패럴림픽 금메달을 4개 따낸 선수는 정호원까지 3명인데 나머지 2명은 은메달이 1개뿐이다.

정호원은 “개인전 금메달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 이후 8년 만이다. 개인전 금메달을 다시 목에 걸어 정말 좋다”면서 “아직 4년 뒤 로스앤젤레스(LA) 대회는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앞으로 계속 더 잘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호원은 강선희(47)와 짝을 이루는 BC3 혼성 페어(2인)에서 다시 한번 금메달에 도전한다. 정호원은 앞선 4차례 패럴림픽에서는 한 번도 2관왕에 오른 적이 없다. 정호원은 “파리에 오기 전부터 목표로 삼았던 2관왕을 달성할 수 있도록 혼성 페어 때도 개인전과 마찬가지로 간절한 마음으로 도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호원이 장애를 만난 건 생후 100일이 지났을 무렵이다. 정호원의 부모는 경기 가평군 대성리역에서 매점을 운영했다. 인근에 집이 있었지만 가게에 자꾸 도둑이 들어 아예 정호원을 데리고 매점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취객이 난동을 부려 아버지가 밖으로 나갔고 어머니 홍현주 씨(64)도 정호원을 평상에 재운 뒤 남편을 따라 나섰다. 그사이 정호원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일시적으로 뇌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았다. 정호원은 결국 뇌병변(뇌성마비) 진단을 받았다.

정호원이 아홉 살이던 1995년에는 집에 불이 났다. 휠체어에 앉아 움직일 수 없는 정호원을 어머니 홍 씨가 온몸으로 감싸는 동안 네 살 터울 형은 전신 화상을 입었다. 작은아들에 이어 아내와 큰아들까지 장애인이 되자 아버지는 집을 떠났다. 혼자 매점을 꾸려 가게 된 홍 씨는 두 아들에게 “세상에 힘들지 않은 사람은 없다.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너희 힘으로 이겨내야 한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정호원은 “어머니는 내가 부담을 느낄까 봐 일부러 자주 연락을 하지 않으시는데 그런 모습을 보면 마음이 더욱 아프다. 살가운 아들이 아니라 죄송하다. 앞으로 더욱 잘하겠다”고 말했다.

파리=김정훈 기자 h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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