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글이 우리말 운율 타고 춤을 춰 30년 버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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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어서 중간에 그만두려고도 했어요. 하지만 막혔던 번역이 뚫릴 때 느껴지는 기쁨이 너무 커서 30년을 버틸 수 있었습니다."
최 명예교수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셰익스피어 작품을 운문 형식으로 번역했다.
최 명예교수는 "국내에 셰익스피어 번역이 들어온 게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인데, 일본어 구조상 운문 번역이 어려워 그 영향으로 우리도 산문 번역을 했다"며 "이번 완간으로 일본의 영향에서 완전히 독립하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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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극-비극 등 총 10권 5824쪽 달해
“日강점기에 운문을 산문으로 바꿔… 우리말 번역 통해 日영향서 벗어나
셰익스피어 읽고 나면 삶이 달라져”
국내 셰익스피어 연구 권위자인 최종철 연세대 명예교수(75)의 눈에는 고된 작업을 끝낸 시원함과 아쉬움이 번갈아 스쳤다. 3일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그가 번역한 ‘셰익스피어 전집’(민음사) 완간 기념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그는 “번역 과정에서 시행들이 우리말 운율을 타고 춤출 때 ‘고통 속 희열’을 느꼈다”고 밝혔다.
최 명예교수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셰익스피어 작품을 운문 형식으로 번역했다. ‘햄릿’의 75%, ‘맥베스’의 95% 등 셰익스피어 희곡 중 대부분의 대사가 산문이 아닌 운문 형식으로 이뤄진 데 따른 것. 그러나 최 명예교수 이전 번역본들은 의미 전달에 방점을 둔 산문 번역이 주를 이뤄 원문에 담긴 ‘읽는 맛’을 살리기가 힘들었다. 최 명예교수는 “국내에 셰익스피어 번역이 들어온 게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인데, 일본어 구조상 운문 번역이 어려워 그 영향으로 우리도 산문 번역을 했다”며 “이번 완간으로 일본의 영향에서 완전히 독립하게 됐다”고 말했다.
원문을 우리말로 풀기 위해 셰익스피어 작품의 ‘약강 오보격 무운시’(약강 음절이 다섯 번 반복되면서 시행 끝의 운을 맞추지 않은 시) 형식에 우리나라 시의 기본 운율인 ‘삼사조(三四調)’를 적용해 자연스러운 번역을 시도했다. 예를 들어 ‘햄릿’의 명대사인 ‘To be, or not to be’는 보통 ‘사느냐, 죽느냐’로 번역돼 왔지만 한국어 뜻과 소리의 조화를 고려해 ‘존재할 것이냐, 말 것이냐’로 옮겼다.
완간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건 작품의 밀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풀어 쓰는 산문과 달리 글자 수 제한이 있는 운문은 함축적이고, 영어의 조사나 목적격 등이 생략되는 경우도 많았다. 셰익스피어 작품 중 가장 시적인 인물이 등장하는 맥베스의 번역이 가장 까다로웠던 이유다. 최 명예교수는 “1993년 맥베스 번역에 성공한 것을 추진력 삼아 나머지 작업을 완성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가 번역 작업을 마친 지난해는 셰익스피어 최초 전집인 ‘제1 이절판(The First Folio)’이 나온 지 400주년 되는 해였다. 그는 “제1 이절판의 편집자들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고 또 읽고, 또 읽으라’고 권했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셰익스피어를 읽은 후의 삶은 그전보다 정서적으로 풍성해져 있을 겁니다. 꼭 소리내서 읽어보세요.”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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