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차 퇴출 빠르다” 반대에도 강행… 100년 車 아성 흔들

이영관 기자 2024. 9. 4.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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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정책에 EU 제조업 위기
지난 3월 독일 폴크스바겐의 아우토슈타트(Autostadt·자동차 도시) ‘카 타워’에 차량들이 층마다 쌓여 있는 모습. 아우토슈타트는 폴크스바겐이 독일 본사가 있는 볼프스부르크에 2000년 세운 자동차 테마파크다. 신차를 소비자에게 인도하기 전까지 차를 보관하는 ‘카 타워’가 이곳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꼽힌다. 구매한 차를 직접 받기를 원하면, 이곳을 방문해 주차돼 있는 모습을 확인하고 수령할 수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유럽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전기차 전환 정책을 펴고 있다. 2035년부터는 내연차를 아예 팔 수 없게 하는 법안을 2021년부터 마련해 추진해왔고 지난해 7월 유럽 의회에서 이 법안이 통과됐다. 2032년 전기차 판매 비율을 67%로 높이기로 한 미국 등과 비교해도 속도가 빨라도 너무 빠르다.

이런 움직임에 자동차 종주국인 독일을 비롯해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 유럽 내 자동차 강국과 주요 기업들 사이에선 반발이 컸다. 2021년 유럽 내 자동차 기업들이 모인 단체인 유럽자동차산업협회(ACEA)는 “특정 기술을 강제하거나 금지하기보다는 혁신에 집중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내연차 대신 전기차만 개발하라는 것에 대한 반대였다. 또 독일자동차협회도 2022년 “내연차 판매 중지는 소비자 선택을 제한하고 고용에도 영향을 끼친다”고 했다. 그러나 유럽연합은 산업계의 반대를 외면한 채 강행했다.

내연차 판매 금지가 확정될 가능성이 커지자, 자동차 기업들은 뒤늦게 2021~2022년 전후 잇따라 전기차 전환을 위해 대규모 투자를 선언하기 시작했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전기차 온리(only)” 전략을 발표하며 2030년부터 전기차만 팔겠다고 공언하고, 폴크스바겐은 2030년까지 판매량 절반을 전기차로 채우겠다고 밝힌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은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10년 넘게 정부 지원과 광대한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전기차 산업을 키워온 중국 기업들은 성능은 물론 전기차 SW(소프트웨어) 등에서도 유럽 기업들을 앞선다. 결국 유럽차는 ‘100년 아성’의 내연차라는 장점도 살리지 못하고, 전기차는 중국 기업에 밀리는 악순환에 빠진 셈이다.

그래픽=김성규

◇안방인 유럽, 최대 시장 중국에서 모두 고전

메르세데스 벤츠는 세계 최초의 자동차를 만들었다. 약 140년의 역사 속에서 최고 고급차의 명성을 이어왔고, BMW와 폴크스바겐도 100년 가까이 자동차 종주국의 대표 기업으로 자타가 공인했다. 하지만 유럽의 정책 변화는 이들로 하여금 전기차라는 ‘준비 안 된 길’을 가게 했다.

문제는 성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유럽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올해 1~7월 유럽에서 팔린 전체 승용차 중 전기차 비율은 여전히 13.8%에 그친다. 2021년 10%를 처음 넘겼고, 작년 최고점(15.8%)을 찍은 뒤 오히려 뒷걸음치고 있다. 고전하는 유럽 자동차 기업의 모습은 실적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폴크스바겐그룹의 영업이익률이 올 상반기(1~6월) 기준 6.3%였다. 2022년(9.7%)과 지난해(7.2%)에 이어 계속 감소하는 추세다. 경쟁력 있던 내연차 대신 전기차 전환을 시도했지만 전기차에서 손실이 발생하면서 수익에 악영향을 끼쳤다.

내연차를 앞세워 2000년 이후 ‘텃밭’처럼 삼아왔던 중국 시장에서도 타격이 크다. 폴크스바겐은 글로벌 매출의 약 30% 안팎이 중국 시장에서 나왔다. 2022년까지 15년간 중국 내수 시장 점유율 1위를 지켰다. 그러나 작년 중국 전기차 기업 BYD(점유율 11%)에 처음으로 역전을 허용했다.

◇”유럽 전기차 전환 속도 조절해야” 지적도

기술력을 충분히 쌓지 못한 채 지나치게 빠르게 전기차로 전환한 것이 부진의 근본 원인이란 지적이 많다. 2000년대 초반 중국 시장이 개방되고 경제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자동차 기업 등 유럽 제조업은 중국 기업들에 유럽의 노하우를 전수해줬다. 하지만 이제는 반대가 됐다. 유럽 기업이 중국 기업에서 배우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예컨대 폴크스바겐이 2026년 중국에 내놓을 중형 전기 SUV 모델 2개에 자율 주행 등 중국 기업 샤오펑의 SW 관련 기술을 반영할 계획이다. 유럽 내부에서도 전기차 전환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국 정부는 2030년으로 예정했던 전기차 전환 시기를 5년 뒤로 늦추겠다고 지난해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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