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베이징 인력시장, 절박한 ‘란웨이와’ 몰려든다
이벌찬 특파원 르포
더위가 물러가지 않았지만, 3일 오전 4시 중국 베이징 외곽 마쥐차오(馬駒橋) 인력시장에 몰려든 중국 청년들은 추위라도 타는 듯 긴팔 차림이었다. ‘마쥐’라는 이름은 군마(軍馬)가 될 망아지를 키우던 마장에서 유래했지만, 이제는 취업 경쟁에서 낙오한 젊은이들을 상징하게 됐다. 허베이성 바오딩이 고향인 정모(29)씨는 “요즘 나보다 어린 친구들도 많이 보인다”면서 “고개 푹 숙이고 스마트폰을 쳐다보는 사람들이 젊은 초짜인데, 선착순인 이곳에서 몇 번 공치다 보면 손에서 폰을 놓게 될 것”이라고 했다. 2년 전만 해도 베이징의 반도체 장비 공장에서 6500위안(약 122만원)의 월급을 받았던 그는 20위안(약 3700원)짜리 숙소에서 지내며 매일 새벽 거리로 나온다.
마쥐차오는 매일 수천명의 절박한 노동자가 모이는 화베이(華北) 최대 인력시장이다. 이곳에 청년들이 흘러드는 것은 최악의 청년 취업난 때문이다. ‘직장 다운그레이드’ 현상의 연쇄 작용으로 저학력·타지 출신 청년들이 여기까지 내몰리고 있다. 길가에서 할머니들이 파는 2위안(약 370원)짜리 목장갑, 한 켤레에 10위안(약 1900원)인 작업용 신발의 주고객이 신참 청년들이다. 마쥐차오엔 오전 4시부터 6시까지 승합차·버스가 쉴 새 없이 와서 건설 노동자, 주방 보조, 물류 센터 분류 작업자, 청소부, 경비 등을 데려간다. 오후 8시 퇴근이 기본이고, 일당은 보통 160위안(약 3만원)이지만 택배 상하차 등 ‘힘쓰는 일’은 200위안 넘게 준다. 단돈 3만원을 벌기 위해 청년들이 대기를 포함해 16시간을 쓰는 꼴이다.
중국 청년들의 취업난은 정부 통계로는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6월 청년(16∼24세) 실업률이 사상 최고인 21.3%를 기록하자 통계 발표를 중단했고, 작년 12월부터 재학생은 제외한 실업률을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 여름 대학 졸업생이 사상 최다인 1179만명에 이르고, 3년 동안 코로나 등으로 누적된 실업자들이 취업 시장에 쏟아지자 새 통계에서도 청년 실업률이 최고치인 17.1%(7월)로 올라갔다. 중국 임시 노동자의 50%가 25세 이하(작년 11월 구직 사이트 즈롄자오핀 집계)고, 도피성 대학원 진학이 급증한 점을 감안하면 실상은 훨씬 참혹하다. 베이징의 한 대학교 고위 관계자는 “상부 지침에 따라 모든 대학이 매주 회의를 열고 재학생 취업률을 비공식 집계하며 대책을 마련하는 중”이라고 했다.
중국은 천안문 사태 이후 정치적 불만을 경제성장을 통한 고용 개선으로 덮어왔는데, 이제 한계에 부딪혔다는 분석도 나온다. 장쩌민 시대엔 국영기업 개혁이 경제의 파이를 키웠고, 시진핑 시대 초창기에는 인터넷 기업과 창업이 돌파구였다. 그러나 지금은 미·중 경쟁으로 경제성장보다 안보가 우선이라 뾰족한 수를 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민간 기업 부진과 부동산·소비 침체 등 경제문제 또한 복합적이다.
‘곡소리’는 피라미드의 최하단과 꼭대기에서 특히 크게 퍼지고 있다. 저학력 청년들이 일용직으로 밀려났다면, 엘리트 청년들은 올라갈 사다리가 끊겼다. 최근 베이징에서 만난 명문대 출신 링링허우(2000년대 이후 출생자) 취업준비생 네 명은 “소황제들이 자라 필부(匹夫)가 된 꼴”이라고 했다. 중국의 고속 성장과 ‘한 자녀 정책’이 맞물린 황금기에 수준 높은 교육을 받고 견문을 넓힌 끝에 ‘라지스젠(쓰레기 같은 시대)’를 맞이했다는 얘기다.
이들은 청년들의 현실을 다섯 개 신조어로 요약했다. 대학에서 발이 여덟 개인 ‘문어(八爪魚)’처럼 공시 준비, 석사 진학, 사기업 지원 등을 병행하지만 ‘졸업즉실업(畢業卽失業·졸업 즉시 실업)’하고 미취업자를 뜻하는 ‘란웨이와(爛尾娃·미분양 된 아이)’로 전락한다. ‘전업자녀(全職兒女·부모 집에서 생활비 받는 자녀)’가 되어 기회를 엿보지만 시간이 흐르면 ‘탕핑족(躺平族·드러눕듯 의지를 상실한 청년)’이 되어 있다.
청년들이 꿈꾸는 고소득 직군을 국가가 의도적으로 없애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과거 ‘다궁황제(금융·IT·부동산 업계 월급 부자)’ 신화를 끝내고, 미국에 대항하는 데 꼭 필요한 과학자만 부자 등극을 허용하는 ‘월급 평준화’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고소득 일자리 중계 플랫폼 창업자는 본지에 “최근 2년 사이에 ‘금융 호랑이’ 때리기가 이어졌고, 상위 1%로 통하던 사모펀드·컨설팅 등의 신규 일자리는 씨가 말랐다”면서 “베이징대·칭화대 졸업생조차 고소득 직장을 갖지 못하며 ‘기준선’이 무너졌다”고 했다. 2만위안 이상의 고액 월급은 이공계 석사 이상을 마친 이들만 누리는 사치가 됐다. 결국 일자리의 피라미드에서 모두가 한두 단계 밀려난 셈이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청년들이 조용한 것은 중국의 특수성 때문이다. ‘한자녀 정책’이 보장하는 ‘부모 찬스’, AI(인공지능)가 동원된 전방위 감시 시스템이 사회 안정의 두 축이다. 청년들 대부분은 부모·조부모에 의존하면 굶지 않는다. 무엇보다 인터넷 통제와 거리 곳곳의 AI 카메라가 온·오프라인 ‘판옵티콘’을 형성했다. 링링허우는 성장기에 애국주의 교육을 받은데다, 2022년 흐지부지 끝난 백지시위의 학습 효과로 인해 감시망을 뚫고 정부에 대항할 가능성이 작다. 1000만 메이퇀(중국판 배달의 민족) 배달부와 도피성 진학, 공무원 준비, 귀향 등의 차선책도 숨통을 틔워준다.
그러나 임계점은 있게 마련이다. 부동산 시장이 무너져 부모에게 의지할 수 없으면 청년들은 절망할 것이고, 월급 2000위안의 일자리가 희귀해지면 생존의 위기를 느낄 것이다. 마쥐차오 인력시장에선 올해 하반기부터 일당이 대부분 200위안 아래로 내려갔다. 반면 ‘일세촌(日貰村)’의 4인실 숙박료는 5위안 정도 오른 20위안이다. 이날 인력시장 근처 벤치 10여 개는 숙박비를 아끼려고 노숙하는 이들로 만원이었다. 인근 지하철역에서 만난 신모(30)씨는 “막노동엔 소질이 없어 엑스트라 아르바이트 일당 100위안으로 살아간다”고 했다. 한 숙박업소 마당 빨랫줄에 ‘청년 분투’라는 희망찬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가 걸려 있었다. 저가 밀크티 체인점 아르바이트생의 유니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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