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쓰고, 표지 고르고, 편집까지… ‘자가 출판 플랫폼’ 등록 작가 7만명
4년새 등록 작가수 2.3배 증가
아이 둘을 키우는 오미정(40)씨는 지난해 ‘수익 확장을 위한 그림 있는 책 만들기’란 전자책 시리즈의 수입으로 2억4000만원을 벌었다. 지금까지 7년 동안 낸 그림책만 10권. 2016년 첫째를 임신하면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교보문고의 자가 출판 플랫폼인 ‘바로출판 POD(publish on demand)’를 통해 작가로 데뷔했다. 오씨는 “임신해서 생긴 경력 단절이 오히려 작가가 되는 기회로 이어졌다”며 “출판사 도움 없이 스스로 책을 낼 수 있는 자가 출판 플랫폼 덕분”이라고 했다.
학생, 직장인, 주부까지 자가 출판 플랫폼을 통해 작가로 데뷔하는 사람이 최근 크게 늘고 있다. 자가 출판 플랫폼이란 원고만 준비되어 있으면 표지도 직접 고르고, 편집까지 작가가 직접 해 전자책을 유통할 수 있는 온라인 기반 업체를 말한다. 원고를 보내고 출판사 ‘채택’을 기다리거나, 본인이 출판 비용을 대는 자비 출판과는 다른 방식이다.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전자책 형태로 일단 출간하고, 소문이 나서 찾는 사람이 생기면 주문에 따라 종이책으로 출판한다.
대표적 자가 출판 플랫폼인 부크크, 바로출판POD, 유페이퍼 세 곳에 등록된 작가는 2020년 3만2067명에서 올해 8월까지 7만3263명으로 급증했다. 불과 4년여 사이에 플랫폼별로 2~3배씩 증가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비용이 들지 않고 진입 장벽이 낮다 보니 전 연령대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했다.
베스트셀러 ‘90년생이 온다’(2018)를 쓴 임홍택(42) 작가도 처음엔 자가 출판 플랫폼을 이용해 데뷔했다. 그는 2017년 ‘99세대의 역습’이라는 책을 바로출판POD에서 먼저 냈고, 쌓은 피드백을 기반으로 ‘90년생이 온다’를 출간했다. 이 책으로 약 2년 동안 10억을 벌었다. 임 작가는 “회사가 아닌 내 이름을 걸고 돈을 벌고 싶었다. 오후 6시쯤 퇴근하면 매일 5~6시간 글을 쓰면서 작가가 되고자 준비했다”면서 “브랜드 네임이 없는 시기에 플랫폼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국내 최대 자가 출판 플랫폼 부크크의 올해 상반기 판매 부수 1위 작가는 고등학교 3학년 여학생이다. 전남의 한 고등학생인 차정은(18)양이 낸 시집 ‘토마토 컵라면’은 상반기에만 1만2000부가 팔렸고 매출 약 9000만원을 올렸다. 플랫폼이 수익 65%를 가져간다. 차 작가는 “학업을 병행하면서 출판사를 찾아 시집을 내고 평가받기까지 기다리기엔 시간이 없을 것 같아 플랫폼을 이용했는데 오히려 더 잘된 것 같다”고 했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표현 욕구가 넘쳐나는 시대에 저비용으로 누구든 책을 출판할 수 있는 시대”라면서 “종전 출판계의 시야에 잡히지 않았던 새로운 감수성을 가진 작가들이 등단할 길이 열린 셈”이라고 했다.
종전 출판 시스템의 높은 진입 장벽을 피하는 기능을 인정하면서도, 품질 저하 우려가 나오기도 한다. 표정훈 출판 평론가는 “크리에이터, 유튜버 등 1인 미디어가 대세가 되면서 출판 업계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며 “전통적 출판 방식의 평가와 편집이 없다 보니 책의 품질 저하 문제가 뒤따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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