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고물가 잡혔는데 금리 못 내려, 뼈아픈 부동산 오판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로 둔화되면서 3년 5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내려갔다. 한국은행은 “물가 둔화 흐름이 주요 선진국에 비해 빠른 편”이라고 했다. 7월 기준 미국의 물가 상승률은 2.9%이고, 유로 지역은 2.2%였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0.5%까지 내렸던 기준금리를 2023년 1월 3.5%로 인상한 뒤 고금리를 유지한 것은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서였다. 그동안 치솟는 물가 때문에 국민 고통이 컸다. 소득은 안 느는데 높은 물가와 금리 부담으로 지출이 늘어나면서 가구 흑자액이 2022년 3분기부터 8분기 연속 감소했다. 고금리·고물가 시대를 온 국민이 허리띠 졸라매고 버틴 결과 드디어 물가가 안정세로 접어들었다. 그런데도 한국은행 금통위는 지난 8월에도 금리를 연 3.5%로 동결했다.
물가가 안정세를 보이는데도 한은이 금리를 못 내리는 것은 수도권 집값 상승과 이로 인한 가계부채 급증 때문이다. 정부는 집값 하락기에 부동산 경착륙을 막겠다며 저금리 대출을 풀어 집 구매를 독려해왔다. 서울 전세가는 67주 연속 상승하고, 서울 아파트 매매가는 23주 연속 상승했다. 서울 아파트 상승 폭이 5년 10개월여 만에 최대 폭에 달했다.
그런데도 국토부 장관은 “추세적 상승은 없을 것” “지역적,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잔 등락”이라고 오판했다. 정책 대출의 영향으로 집값이 가파르게 오르자 뒤늦게 집값 진화에 나서 8·8 부동산 공급 대책을 발표하고 9월부터 대출 규제에 들어갔지만 타이밍을 놓쳤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 8월 5대 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9조6259억원 늘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영끌’ 부동산 광풍이 불던 2020년 11월(9조4195억원)의 기록을 넘어섰다. 이 중 주택담보대출만 한 달 새 8조9115억원 증가해 전체 가계 대출의 93%를 차지했다.
길어지는 내수 부진과 고금리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금리 인하가 시급하다. 하지만 집값 상승에 제동이 걸리지 않으면 10월에도 기준금리 인하를 기대하기 힘들어진다. 금리를 낮췄다가 서울 및 수도권 아파트 가격 상승을 더 부채질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금리 인하의 적기가 왔는데도 금리를 못 내리게 만든 부동산 시장 오판이 뼈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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