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엔 우승에서 우리가 놓친 진실 [조선칼럼 장대익]
일본은 축구 80%, 야구 76%
한국은 각각 8%, 4%에 불과
단순히 스포츠만의 문제 아냐
유년시절 운동과 팀의 경험은 신체 넘어
사회적 역량 발전의 장
입시만 올인한 우리, 제정신인가
열흘 전쯤 도쿄 출장에서 만난 일본인들은 온통 고시엔 결승전 얘기뿐이었다. 호텔방에 돌아와서 본 하일라이트는 드라마 자체였는데, 거기서는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라는 타이틀이 민망할 정도로 초특급 해설자들이 나와서 경기 분석을 하고 있었다. 고시엔은 그 자체가 일본 국민의 축제 같았다.
한국 언론이 이웃 나라 고교 야구 결승전을 대서특필한 이유는 우승팀인 교토국제고가 재일교포들이 세운 학교이기 때문이다. 고시엔은 매 경기가 끝나면 이긴 팀이 도열한 가운데 그들의 교가를 틀어주는 아름다운 전통이 있는데, 마침 교토국제고의 교가가 한국어 가사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도 땅은…”으로 되어 있어서 마치 한국 고교팀이 우승을 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일본 고교야구대회가 한국에서 크게 조명된 것은 바로 이 교가 때문이다.
사실 놀라운 것은 교가만이 아니다. 전교생 160명의 작은 학교가 어떻게 3715팀이 참여한 토너먼트에서 최상위권을 차지할 만한 실력을 갖출 수 있었는지는 가장 감동적인 스토리다. 일본에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이어가기 위해 고군분투해온 역사도 매우 뭉클하다. 게다가 진짜 고시엔 우승이라니! 출장 중에 만난 일본 교수들도 이번 우승은 일본 사회에서도 기적 같은 일이라며 축하의 악수를 청했다.
어깨가 으쓱할 법도 한데 그러지 못했다. 우리 고교의 현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번 여름 고시엔 본선에는 47지역의 총 3715팀의 치열한 예선을 거친 49교만이 참가했다. 엄청난 규모다. 반면 한국은 100개 정도의 고교야구팀이 활동 중이니 일본에 비해 37배 작은 수다. 인구 차이를 감안해도 규모는 15배 정도 작다. 축구의 경우도 상황은 비슷하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고교 중 구기 종목 팀을 보유한 비율이다. 2021년 통계로 보면 일본 고교 축구팀은 3962개(우리는 190개)다. 일본 고교 수가 4887개이니 일본 고교 중 80%가 축구팀을 보유하고 있고, 76%가 야구팀을 꾸리고 있는 셈이다. 반면 한국은 단 8%만이 축구팀을, 단 4%만이 야구팀을 보유하고 있다. 이것이 한일 양국의 고교팀 스포츠 격차이다. 즉 우리 고교에서 팀 스포츠는 하나의 생활이나 문화가 아니고 그들만의 리그일 뿐이다.
다시 고시엔. 이렇게 많은 자기 지역 고교팀들 중 우승팀만이 고시엔 본선에 나서니, 가령 여름 고시엔 본선이 치러지는 8월은 모두가 자기 지역 공동체의 치어리더들이 된다. 실제로 이번에 교토국제고를 응원하기 위해 온 교토의 이웃 학교 학생과 학부모들의 열띤 응원이 카메라에 자주 잡혔다.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라 ‘우리’의 축제가 된 것이다. 축제가 되는 순간 경기의 승패는 보너스가 된다.
팀 스포츠는 말 그대로 팀이 무엇인지를 경험하는 장이다. 청소년기에 크고 작은 팀에 속해서 함께 경기를 뛴다는 것은 자신의 신체 기량을 발전시킨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협동과 배려심과 같은 사회적 역량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일 뿐만 아니라, 승리와 패배에서 오는 기쁨과 슬픔, 응원과 비난에서 오는 안도감과 좌절감, 잘함과 못함 때문에 느끼는 자존감과 열등감을 경험하는 감정 조율의 장이다. 게다가 자기 팀원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상대팀에 대해서까지 역지사지를 해볼 수 있는 공감의 연습장이다.
어린 시절에 ‘놀이’를 경험하지 못한 아이는 성인이 되어 심각한 정서적 문제를 겪는다는 연구는 수도 없이 많다. 놀이는 감정의 출렁임을 경험하고 조율해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청소년기는 신체적으로 왕성하고 호르몬적으로 역동적이며 인지적으로 유연한 시기다. 이 시기에 입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으로 팀 스포츠를 도려내고 청소년들을 경주마처럼 홀로 달리게 만든 우리 어른들은 제정신일까? 지속적인 단체 체육 활동이 인지 능력과 학습력을 높이고 스트레스를 완화하며 항우울제 기능을 한다는 사실에 비춰볼 때, 어른들의 이런 판단은 심각한 오류일 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들을 오도하는 심각한 범죄일 수 있다.
‘운동화를 신은 뇌’의 저자인 하버드 의대의 레이티 교수는 고등학교의 0교시 체육 수업이 학생들의 학습력 향상과 뇌 구조 개선에 크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밝히며 운동이 신체뿐만 아니라 뇌를 건강하게 만든다고 역설하고 있다. 이 사실에 깊이 공감한 국내의 모 자사고 교장이 학교의 교육철학을 ‘체지덕’으로 삼고 전교생에게 운동부터 시킨 일이 있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학부모의 극심한 반대로 포기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인생에서 운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은 부모들인데도 이런 반대를 하고 있다는 현실이 매우 초현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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