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국사 교과서, 선의의 경쟁이 필요하다
최근 일선 고등학교에 9종의 한국사 교과서가 배포되었고, 예상대로 역사 교과서 논란은 다시금 되살아났다.
나는 한국사 전공자는 아니다. 19세기 영국사, 그것도 의학 사상사와 의료사를 전공하는 서양사 연구가인데, 이번 한국사 교과서 9종 중에서 논란의 중심에 있는 교과서의 집필자이자, 그중 가장 집중적으로 비판받고 있는 사람이다. 이처럼 정치적으로 중립이 이루어지기 힘든 사안에서는 핵심 논쟁 속에 나 자신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위치시키는 것이 중요하며 독자가 이해하기도 쉬울 것이다. 역사 연구자 이전에 나는 ‘우파 자유주의’ 시각을 가진 한국인의 한 사람이다.
모두가 알고 있듯, 민주주의의 에너지는 늘 그 안에 사회와 개인의 긴장을 자체적으로 잘 해소하지 못하는 경우, 즉 자유와 민주의 가치가 균형을 잃을 때 포퓰리즘이나 전체주의로 폭주할 위험성을 내포한다. 하지만 슬프게도 우파 안에서도 비주류에 속하는 개인주의자인 내가 보기에, 한국 사회는 양당 정치 구도 하에서 상호 견제가 상대적으로 잘 작동하는 영미 사회보다는 역사 속 소크라테스 시절의 그리스나 18세기 말 프랑스에 점점 더 근접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이런 우려와 걱정, 그리고 개인주의의 중요성을 지금껏 정당하게 나에게 허용된 공간에서 10년 넘게 발언해왔다. 시장과 개인을 중심으로 사회를 바라본다는 의미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나의 이런 우파 자유주의 시각은 좌파에 의해 친일파 혹은 뉴라이트(언제부터 이 두 개념이 혼재되어 버렸는지는 나도 모른다)로 낙인찍히고 있다. 아니, 그 낙인 없이 발언할 수 있는 길이 사실상 사라져 버린 것 같다. 특히 한국 근현대사 부분이 그렇다.
요 며칠 교과서 내용 일부가 언론에 공개되면서, 나는 현재 일부 좌파 언론에 의해 “일제 착취 안 해, “5·18은 민주화운동 아닌 사태” 등 선정적인 내용으로 악마화되고 있다. 내 홈페이지(baeminteacher.com)에 투명하게 공개해 놓은 발언의 일부만을 입맛대로 인용해서 만든 기사들이다. 이 언론들은 현재 나뿐 아니라, 교과서 집필과 관련된 우파 역사 교사 및 학자들의 과거 모임 발언들을 내가 참가한 교과서의 논조와 연관시키면서 점점 더 그 공격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나는 오른쪽에 서 있지만, 우리 모두는 좌와 우 가운데 중간이 어딘지 알 수 없다. 아마도 신만이 알 것이다. 그러기에 좌와 우가 이다지도 싸우고 있을 것이다. 나는 내가 참가한 교과서에 대해 “비로소 좌우의 중간에서 균형이 잡힌 한국사 교과서가 만들어졌다”고 오만하게 주장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우리 모두는 자신이 정의롭고, 진리에 더 가깝다고 믿고 싶어 할 뿐이다.
이제 일선 학교에선 교과서 선정 절차가 시작된다. 현 상황은 시장에 나온 상품 (교과서)의 내용이 아닌 그 상품을 만든 사람에 대한 비방에 치중하는, 마치 선거에서 정책 대결이 아닌 흑색선전만이 난무하는 모습이다. 나는 현 9종의 교과서들이 모두 선의의 경쟁을 하게 되길 바란다. 하지만 지금 좌파 언론은 우파가 쓴 교과서는 채택되어선 안 된다는 신념의 소유자처럼 행동하고 있다. 하지만 페어플레이를 해야 할 것 아닌가. 입맛대로 취사선택해서 교과서 집필자를 악마화해서야 되겠는가.
이 글의 목적은 하나다. 내가 집필한 교과서가 아니어도 좋다. 하지만 전제가 있다. 사상의 시장에서 선의의 경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부디 현명한 역사 교사들의 올바른 선택을 기대한다. 그 선택의 기회는 9종 모든 교과서에 공평하게 열려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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