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발톱 다시 세운 ‘네일 부적’

김은진 기자 2024. 9. 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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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선수들은 최근 외국인 에이스 제임스 네일이 부상당한 이후 그의 유니폼을 더그아웃에 걸어놓은 채(작은 사진) 마음으로 함께 경기하고 있다. 감성적인 성향의 선수가 많아 어려울 때일수록 잘 뭉친다는 KIA는 네일의 부상을 계기로 다시 똘똘 뭉쳤다. KIA 타이거즈 제공


턱골절 수술 에이스 유니폼
매경기 더그아웃에 걸어두고
승리 땐 하이파이브도 함께
‘F성향’ 선수들 감성 엿보여


양현종부터 나성범·이우성 등
꽃감독도 인정한 여린 감수성
주전 이탈 고비마다 오히려 똘똘
내내 선두 수성 ‘낭만 호랑이’


지난주부터, KIA의 더그아웃에는 유니폼 한 장이 걸려 있다. 등번호 40번, 네일이 입던 유니폼이다. 광주 홈 경기에서도, 대구 원정 경기에서도 네일은 유니폼으로 KIA 더그아웃에서 선수들과 함께 했다.

승리한 뒤 KIA 선수들은 벽에 걸어뒀던 네일의 유니폼까지 같이 챙겨들고 하이파이브를 한다. 승리의 기쁨을, 최대한 가을야구에는 복귀할 수 있게 병상에서 노력하고 있는 네일과 함께 나누고 싶은 KIA 선수들의 마음이다.

네일은 지난 8월24일 창원 NC전에서 투구 중 타구에 턱을 맞아 골절상을 입었다. 뼈를 고정하는 수술을 받았고 한동안 입원 치료를 받다가 최근 퇴원했다. 리그 다승, 평균자책 경쟁을 펼쳐온 외국인 에이스 네일의 이탈은 정규시즌 1위 확정을 위해 달리던 KIA에게 초대형악재였다.

그러나 네일이 다친 24일 NC전을 포함해 KIA는 1일 삼성전까지 7경기에서 5승2패를 했다. 특히 남은 시즌 최대 고비로 꼽혔던 2위 삼성과 2연전(8월31일~1일)을 모두 잡으면서 6.5경기 차까지 달아났다. 정규시즌 우승 매직넘버는 이제 ‘12’다.

올해 KIA에게는 내내 ‘위기’와 ‘고비’가 따라다녔다. 개막 전부터 스프링캠프에서 갑자기 사령탑을 선임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고 개막 직전 4번타자로 구상해놨던 나성범이 부상으로 이탈하더니 개막 이후 이의리, 윌 크로우, 윤영철까지 선발 투수가 차례로 부상당해 시즌을 마감했다.

그래도 1위를 지켜온 KIA는 시즌 초반 NC부터 시작해 LG, 삼성으로 이어진 2위들의 추격을 거세게 받았다. 턱밑까지 승차가 좁혀지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팀에게는 져도 2위가 돼 도전하는 팀들에게만은 승리했다. 중하위권 팀을 만나면 나사가 하나 풀린 듯한 경기를 하다가도, 2위만 만나면 무서운 호랑이 발톱을 꺼내들어 맹공을 퍼부었다. 롯데나 SSG에게는 상대전적에서 밀리면서도 삼성을 10승4패, LG를 12승3패로 압도한 것은 올시즌 리그 최대의 ‘미스터리’ 중 하나가 돼 가고 있다.

그 원인을 KIA는 선수들의 성향에서 찾는다. 선수로서, 코치로서 오랫동안 현재의 선수들과 함께 해온 이범호 KIA 감독은 “우리 팀에는 강하기보다 부드러운 성격의 선수들이 많다. 여리다고 해야 하나, 그렇다보니 서로 으쌰으쌰 해서 훨씬 더 힘을 낼 수 있는 그런 상황들이 있다. 집단 근성이 약간 있는데, 뭔가 일이 있으면 애들이 훨씬 더 힘을 내고 다 끄집어낸다. 항상 그랬던 것 같다”며 “이번엔 네일이 그렇게 되면서 선수들이 더 뭉친 것 같다”고 말했다.

KIA에는 감성적인 선수들이 많다. 투수 최고참인 양현종부터가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낭만 있는 캐릭터다. 신예 시절 함께 했던 칸베 토시오 코치와 지금도 연락하고 세상을 떠난 호세 리마가 그리워 인터뷰하다 눈물을 보이고, 투병하다 떠난 친구 이두환을 해마다 1988년생 친구들과 함께 기린다. 타자 최고참 최형우가 그 중 가장 세 보이지만 그 역시 불혹이 된 지금 2군에서 후배들이 써 준 기념구에 감동받아 취재진 앞에 들고나와 자랑할 정도의 감성을 갖고 있다. 나성범, 박찬호, 이우성을 비롯해 임기영, 정해영, 전상현 등 어린 투수들도 대부분 부드러운 성향을 가졌다.

선수들의 감성적인 성향은 올해 유독, 위기에서 무너지는 게 아니라 뭉치는 힘이 되고 있다. 네일의 부상 이후 로테이션에 혼자 남게 된 양현종은 “불펜 투수들이 힘들어질 수 있다”며 이닝 욕심을 더 내고, 최형우는 네일을 향해 “얼굴을 다쳤는데 니 인생이 더 중요하다. 너무 빨리 돌아오려고 애쓰지 말라”고 말하기도 했다.

박찬호는 8월31일 삼성전에서 3점 홈런까지 치며 5타점을 때린 뒤 “아직 완전체가 아니다. 야수들끼리 매 경기 무조건 점수 차를 벌려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다”고도 했다. 네일이 없고 마운드가 정상이 아니니 타자들이 힘을 내 공격력으로 이겨야 한다는 이야기를 지금 타자들끼리 매일 하고 있다.

고비가 찾아올 때마다 똘똘 뭉쳐 넘어내는 ‘감성의 팀 DNA’는 이미 외국인 선수들에게도 심어졌다. 퇴원한 네일은 TV로 KIA의 경기를 꼬박꼬박 보고 선수들과 통화하며 마음으로 함께 한다. 턱을 다쳐 제대로 먹을 수 없는 상태지만 체중을 유지하기 위해 일찍이 죽을 먹기 시작했다. 가을야구를 함께 하기 위해 네일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김은진 기자 muldero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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