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맛과 섬] [206] 서산 곤쟁이젓
가을이 되면 젓갈에 맛이 든다. 뜨거운 여름을 견디며 숙성된 맛이다. 그대로 밥상에 올려도 좋고, 무와 채소와 버무려서 먹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밥도둑이다. 가장 큰 밥도둑은 막 지은 밥에 비벼 먹는 곤쟁이젓이다. 이렇게 먹어 본 사람은 고개를 끄덕인다. 흰밥이든 보리밥이든 곤쟁이젓 비빔밥은 감동이다. 옛날 중국 사신이 해주를 지나다 곤쟁이젓을 먹고 감동하여, 이 맛을 못 보는 노모가 생각나 눈물을 흘리며 ‘감동젓’이라 했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조선 시대 양반들 사이에 주고받는 선물이었으며, 중국도 사신을 통해 곤쟁이젓을 요구하기도 했다.
곤쟁이는 길이가 1센티미터 남짓 되는 아주 작은 곤쟁잇과 갑각류다. 전라도와 충청도에서는 고개미, 강원도에서는 부새우라고도 한다. 고문헌에는 곤쟁이젓을 자하해, 감동해, 세하해라 했다. ‘전어지’에는 곤쟁이는 서해와 남해에서 온 나라가 넘칠 정도로 많이 나지만 해주에서 나는 곤쟁이가 잘고 부드러워 맛이 좋다고 했다. ‘도문대작’에는 ‘의주’에서 나는 것이 가늘고 달다고 했다. 모두 시나브로 강물이 들어오는 파도가 적은 연안이나 내만이다.
처음 곤쟁이를 만난 곳은 부안 새만금홍보관 근처 바닷가다. 새만금 사업이 완공되기 전이다. 몇 명 어민들이 무릎 깊이의 갯골을 따라 허리에 자루그물을 묶어 끌고 다녔다. 뭘 잡는지 몰라 물어보니 ‘쌀새우’라고 했다. 쌀새우는 곤쟁이의 다른 이름인 세하를 말한다. 지난해 여름에는 서해랑길을 걷다가 곰소만 한 어촌에서 자루그물을 둘러메고 바다로 들어가는 어민을 만났다. 인천 젓갈 시장에서 곤쟁이젓을 파는 상인도 만났다.
그리고 마침내 서산의 가로림만에서 직접 곤쟁이를 잡는 한 어민을 만나 곤쟁이젓을 받았다. 그는 곤쟁이를 잡는 즉시 뱃전에서 바로 천일염과 버무려 젓갈을 담근다고 했다. ‘전어지’에도 곤쟁이는 5월부터 8월까지 잡는데 배에 항아리와 소금을 준비했다가 즉시 젓갈을 담근다고 했다. 여름을 보내며 그 곤쟁이젓을 꺼냈다. 그리고 막 지은 밥에 한 수저 올리고 참기름을 더해 비볐다. 다른 반찬이 필요 없다. 뚝딱 밥 한 그릇을 비우고 한 그릇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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