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을 가다/임우선]“학생을 지켜라”… 미국은 지금 스마트폰-소셜미디어와 전쟁 중
“스마트폰은 주머니 속 헤로인”… 학교서라도 중독 벗어나게 안간힘
‘잠금 파우치’부터 법으로 금지까지… “청소년 불안 원인은 소셜미디어”
뉴욕시, 빅테크에 배상 소송 제기… 상원, ‘어린이 보호’ 규제법 통과
● 아이들 지키기 총력전 “학교에서 7시간만이라도”
새 학년이 시작된 요즘, 여러 주는 연이어 ‘학교 안 스마트폰 사용 금지’를 선언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 정책을 처음 시행한 곳은 플로리다주. 지난해 공립학교에서 스마트폰과 무선 이어폰 사용을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올해는 더 많은 주가 가세해 인디애나와 루이지애나, 사우스캐롤라이나주가 금지 정책에 동참했다.
미국 전역의 학교 현장에서 사실상 반(反)스마트폰 정책이 퍼지고 있는 것은 이로 인한 문제가 심각한 수위에 이르렀다는 판단 때문이다. 물론 법제화 이전에도 학교들은 교내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학생들이 지키지 않았고 교육 현장의 위기감은 높아졌다. 미 퓨리서치센터 조사에서 고교 교사의 72%가 “스마트폰 사용으로 발생하는 학생들의 주의 산만은 ‘중대한 문제’”라고 답했을 정도다. 학계에서도 학생들의 스마트폰 사용이 학업성취도 하락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잇따랐다.
교사들에 따르면 수업 중에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틱톡’ 영상에 빠져 있거나 화장실에서 넷플릭스를 보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에어드롭’(아이폰 파일 전송 기능)으로 친구와 선정적 콘텐츠를 주고받고,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특정 친구의 사진을 찍기도 한다. 이를 소셜미디어에 게시해 희롱하거나 인종차별적 발언을 하고, 딥페이크 사진을 만들어 돌려보는 등 범죄에 준하는 사건들도 계속되고 있다.
제도가 만들어지길 기다릴 수 없었던 일부 학교들은 자체적으로 규정을 만들어 대응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올해 오하이오, 콜로라도, 메릴랜드, 코네티컷, 펜실베이니아, 버지니아, 캘리포니아주의 많은 학교가 잠금 파우치 제도를 도입했거나 수업 중 전자 기기 사용을 금지했다. 학생들의 중독과 학습 방해, 우울감, 섭식장애 등 정신건강 문제가 심각하다는 판단에서다.
● “가장 나쁜 건 바로 너” 뉴욕, 소셜미디어 상대 소송
올해 2월 뉴욕시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행정부 차원에서 “학생들에게 끼친 피해를 배상하라”며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틱톡, 유튜브, 스냅챗 등 5대 소셜미디어 플랫폼에 소송을 제기했다. 에릭 애덤스 뉴욕 시장은 “뉴욕시의 젊은이들이 전에 없던 비율로 불안, 절망, 심지어 자살 시도를 경험하고 있는데 소셜미디어가 주요 원인이란 증거가 늘고 있다”며 뉴욕시 보건정신위생국, 병원 당국, 시 교육부와 함께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의 핵심은 이들 소셜미디어 플랫폼들이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미칠 걸 알면서도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청소년들이 끝없이 중독돼 헤어나지 못하도록 플랫폼을 설계했다는 대목이다. 이를 통해 공중보건 위기를 초래하는 한편으로 교육당국의 재정에도 수억 달러의 해를 끼쳤다고 보고 있다.
아슈윈 바산 뉴욕시 보건정신위생국장은 “‘좋아요’와 같은 플랫폼의 소셜 기능은 도파민 분비를 조작하도록 설계됐다”며 “빅테크들은 부정적이고 무서우며 터무니없는 콘텐츠가 지속적인 이용자 참여와 더 큰 수익을 창출시킨다는 걸 잘 알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런 콘텐츠가 학생들의 온라인 괴롭힘, 우울증, 불안장애, 섭식장애 증가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한 것이다.
뉴욕주 상원의원 앤드루 구나르데스는 “하버드대 의대 연구에 따르면 소셜미디어 기업들은 2022년 미성년자 대상 광고 판매로 110억 달러(약 14조8000억 원)를 벌었다”며 “우리는 거대 기술 기업이 스스로 개선되기를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미국은 국가 차원에서도 소셜미디어가 청소년에게 주는 악영향을 줄이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7월 미 상원은 소셜미디어 플랫폼들로부터 어린이와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어린이 온라인 안전법(Kids Online Safety Act·KOSA)’을 통과시켰다. 관련 기업들이 아이들을 괴롭힘, 희롱, 성적 착취, 거식증, 자해 및 약탈적 마케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합리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법안이다. 법안 발의자 중 한 명인 민주당 상원의원 리처드 블루먼솔은 “자동차 제조업체가 안전벨트와 에어백을 설치해야 하듯이 소셜미디어 회사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 중독 없이 연락 가능한 ‘워치’ 마케팅
학생들의 스마트폰 및 소셜미디어 사용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며 빅테크들의 제품 전략도 바뀌고 있다. 이들 제품에 대한 대중의 우려와 거부감이 높아지자 스마트폰보다 중독 우려는 낮으면서도 학부모와의 연락은 가능한 ‘스마트워치 마케팅’이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총기 사고가 잦은 미국에서는 ‘아이와 연락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교내 스마트폰 전면 금지에 반대하는 학부모도 적지 않다. 어릴 때부터 총기 사고 보도에 자주 노출된 학생들 역시 스마트폰이 없어 연락하지 못하는 상황을 극도로 불안해하는 ‘노모포비아(Nomophobia·No Mobile Phone Phobia)’를 보이기도 한다.
이에 애플은 애플워치 마케팅 슬로건 중 하나를 ‘당신의 아이를 위한 애플워치(Apple Watch For Your Kids)’로 내걸고 관련 서비스를 홍보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9월로 예정된 애플 신제품 출시에서 플라스틱 소재를 적용하고 가격을 낮춘 어린이 전용 애플워치가 공개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임우선 뉴욕 특파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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