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빨리 변하는, 그만큼 늘 새로운 한국[폴 카버 한국 블로그]
한국은 정말 빨리 변하는 나라다. 외국 친구들끼리 하는 얘기이긴 한데 영국에 잠깐 있다가 몇 주 만에 한국에 돌아와도 동네가 너무 달라져 버려서 길 찾기가 어렵다는 농담을 하곤 한다. 내가 사는 곳만 해도 여기저기 공사가 끊임없이 진행된다. 몇 달 만에 뚝딱 새로운 빌라가 들어선다. 그 와중에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는 또 다른 건물이 철거된다. 매일매일 이 광경을 지켜보는 우리로서는 그 변화가 그렇게 크게 와닿지 않을 수 있지만 가끔 한국을 방문하는 분들은 그 차이를 바로 볼 수 있는 것 같다.
한국에 너무 자주 오시다 보니 이전에 갔던 곳을 또 들르는 것은 식상하실 것 같아서 나는 꾸준히 부모님을 위한 관광상품을 계속 개발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 안 가본 데를 계속 발굴해야 하니 한국분들도 잘 모르는 장소를 찾아내기도 하는데 다행히도 서울은 계속 발전하는 도시라 여전히 새로운 갈 곳들이 생겨난다.
이번에는 여의도에 새로 오픈한 ‘서울달’에 갔는데 거기 올라가면 서울의 멋진 전경을 볼 수 있다. 새로운 장소들도 많이 생겨났지만 서울 신규 지하철 노선 개통이나 노선 연장, 영국보다 더 많은 듯 보이는 전기버스와 전기 승용차들도 부모님이 금방 알아차리신 서울의 변화들이었다. 서울로 7017과 경의선숲길도 둘러봤는데 여기는 새로운 장소는 아니지만 부모님이 지난번에 왔을 때보다 훨씬 더 무성해진 식물들과 나무들 덕분에 새로운 장소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이런 변화들이 부모님에게 모두 긍정적으로 비쳤던 것은 아닌 듯하다. 예전에 내가 오랫동안 살았던 동네를 부모님과 함께 걷는데, 이전에 있던 오래된 건물들이 새로운 건물들로 거의 모두 교체되는 바람에 부모님이 알아볼 수 있던 곳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고 지난번에 오셔서 자주 들렀던 빵집, 커피숍, 식당 등도 거의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직업상 길을 잘 찾으시는 우리 아버지조차도 길을 헷갈리셨는데 아버지가 이전에 오셨을 때 길을 찾으며 참고하시던 랜드마크 건물도 모두 새로운 건물로 바뀌어 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낙후된 구도심이 활성화되며 외부인과 돈이 유입되고 원주민이 밀려나는 현상)이 지역 주민들에게 좀 더 편리하고 안락한 삶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있기는 하겠지만, 시대와 지역의 특정하고 고유한 성격을 반영하는 길, 도로, 주택과 건물들이 사라지고 다른 동네와 별반 다를 것 없는 비슷한 디자인의 아파트와 빌라로 교체된다는 점은 서울의 발전 과정에서 나타나는 안타까운 결과인 것 같다.
시간이 흐르면서 서울이 변화하듯이 우리 부모님도 나이가 드실 것이다. 같은 나이대 분들과 비교해 여전히 활동적이시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에 오셨을 때보다 체력이 떨어지신 것 같아 보였고 걸으시는 동안 중간중간에 쉬는 시간도 더 늘어난 것 같았다. 어머니는 오랜만에 남산 정상에 가보고 싶어 하셨는데 지난번에는 직접 걸어서 오르셨다면 이번에는 관광버스를 타고 가실 수밖에 없게 되었고, 아버지는 바닥에 앉아서 먹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시기에는 무릎이 너무 안 좋아지셨다.
한국을 자주 방문하다 보니 이제 갈 데가 없어져 버렸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서울은 정말 살아 숨 쉬는 도시인 듯하다. 그렇게 자주 방문하셔도 또 새로운 갈 곳이 항상 생기니 말이다. 게다가 한류 덕분에 너무 멋있어져서 세계적인 여행지로도 각광받고 있다.
어머니는 영국에서 영국 신문에 소개된 한국의 관광지를 나에게 보여주셨는데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곳이었다. 언젠가 우리 부모님도 한국까지 오는 비행이 너무 힘들어서 한국의 새로운 관광 명소들을 더 이상 방문하지 못하실 때가 올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계속 부모님에게 한국의 새로운 곳들을 여기저기 구경시켜 드릴 결심이다.
폴 카버 영국 출신·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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