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이종섭 전 보좌관 "박정훈, 유족 지휘 받은 듯 수사"…유족 진술서엔 "명확한 수사" 요구 뿐

유선의 기자 2024. 9. 3.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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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순직 이틀 뒤 유족 진술조서엔 "현장 간부들 명확한 수사" 요구 뿐
해병대수사단 수사·보고·설명 과정에 유족 관여·요구 가능한 시점 없어
박진희 사단장 "유족 지휘 받은 듯" 발언 뒤엔 "박정훈, 상명하복 안 했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가장 왼쪽)의 군사보좌관을 지낸 박진희 육군 56사단장(왼쪽에서 세 번째). 박정훈 전 해병대수사단장(가장 오른쪽)과 다음 박 전 단장 항명 혐의 재판에 증인으로 채택된 임기훈 전 국방비서관(왼쪽에서 두 번째) 〈출처=연합뉴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군사보좌관을 맡았던 박진희 육군 56사단장이 오늘(3일) 법정에서 박정훈 전 해병대수사단장의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를 비판했습니다.

박 사단장은 군사법원에서 열린 박 전 단장의 항명 혐의 재판에 군검찰 측 증인으로 출석해 "박 전 단장이 열심히 수사했지만 마치 수사 지휘를 유족에게 받은 것처럼, 유족이 원하는 부분으로 수사했다"고 말했습니다.

박 전 단장이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의 혐의가 포함된 수사 결과를 경찰로 이첩했던 것이 '유족이 원하는 수사 방향이었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풀이됩니다.

지난해 7월 20일 해병대 1사단 내 분향소 아들의 사진 앞에서 울고 있는 채 상병의 어머니 〈출처=연합뉴스〉

유족의 요구는 "현장 상황 수사 잘해달라"


박 사단장의 증언을 검증하기 위해 채 상병 유가족의 진술 내용을 확인해 봤습니다.

채 상병의 아버지는 아들 순직 이틀 뒤인 지난해 7월 21일 해병대수사단 조사에 응했습니다.

JTBC가 입수한 진술조서엔 박 사단장이 말한 '유족의 수사 지휘'로 볼 만한 내용은 없었습니다.

다만 해병대사령부 수사관이 아들을 잃은 아버지에게 바라는 게 있는지 물었던 내용은 있습니다. 채 상병 아버지의 해병대수사단 진술조서 일부를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 해병대 수사관 "이번 아들의 사망 사건과 관련해 우리 (해병대수사단) 광역수사대로 요구할 사항이 있나요."
· 채 상병 아버지 "집사람이 요구했던 사항처럼 현장에 있었던 간부들이 우리 아들을 구조할 수 있었는데 안 구했는지, 무서워서 못했는지, 아니면 당황해서 그랬는지, 그 사실에 대해 명확히 수사를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명확히 수사를 해달라. 구체적으로는 '현장 간부들이 우리 아들을 구할 수 있었는데 못 구했던 건 아닌지 밝혀달라'는 게 부모가 요구한 전부였습니다.

임 전 사단장을 수사해달라는 요구가 없었던 건 물론이고, 누구를 넣어달라거나 빼달라는 요구는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해병대수사단이 전한 아들의 사망 원인을 '어렵지만 받아들인다'고 했을 뿐입니다.

· 해병대 수사관 "아들이 익사로 인해 사망했음을 인정하나요."
· 채 상병 아버지 "네…. 이제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게 현실인데…."

지난해 7월 19일 채 상병이 급류에 휩쓸려 실종된 뒤 침울한 표정으로 구조 소식을 기다리는 해병대 전우들 〈출처=연합뉴스〉

유족은 수사를 지휘할 수도, 요구할 수도 없었다


유족이 박 전 단장에게 혹은 해병대수사단에 수사와 관련해 뭔가를 요구하거나 지휘할 수 있었는지, 당시 상황을 날짜별로 정리해보겠습니다.

7.21(금) 해병대수사단은 아버지로부터 진술을 들은 그 날, 유족에게 이틀 동안 진행한 1차 중간 수사결과를 설명했습니다.

7.22(토) 박 전 단장은 다음 날 채 상병 영결식을 마치고 해병대사령부로 복귀하면서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에게 "사안의 중대함을 고려해 다음 주부터 수사단장이 직접 현장 지휘하겠다"고 보고했습니다.

7.24(월) 박 전 단장은 김 사령관에게 보고한 대로 이날부터 포항과 예천을 오가며 수사를 지휘했습니다.

7.28(금) 나흘 뒤, 박 전 단장은 김 사령관에게 먼저 수사결과를 보고했고, 오후 2시쯤 남원에 있는 채 상병 조부모집으로 가 유가족 10여명을 대상으로 "임 전 사단장 등 8명에 대해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가 있어 다음 주 초 관할인 경북지방경찰청으로 사건을 넘기겠다"고 설명했습니다.

7.30(일) 박 전 단장은 이틀 전 유족에게 설명한 내용과 똑같은 수사 결과를 이 전 장관에게 보고해 결재를 받았습니다.

정황상 유족이 끼어들 틈이 없었을 뿐 아니라 수사 결과가 바뀐 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이 전 장관이 다음날(7월 31일) 스스로 결재한 것을 번복하고 이첩 보류 지시를 내리면서, 결과적으로 수사 결과가 바뀌었습니다.

"유족 수사 지휘" 발언 다음엔 "상명하복" 언급


유족의 진술 내용을 봐도, 당시 상황을 날짜별로 따져봐도, 유족이 사건을 지휘하거나 개입할 여지는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박 사단장 외에 이런 의혹을 제기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박 전 단장에게 상관명예훼손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이 전 장관조차도 유족에 대한 발언을 한 적은 없었습니다.

박 사단장은 오늘 "유족 수사 지휘 받은 듯" 발언 직후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명백히 군에서 상명하복이 이뤄져야 하는데 이 사건에선 이뤄지지 않았다. 장관의 정당한 지시를 외압이라고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은 이 전 장관이 스스로 결재한 사건을 다음날 번복해 이첩 보류를 지시하고, 해병대수사단이 경찰로 이첩한 사건을 군검찰이 회수해 와 결과적으로 임 전 사단장의 혐의가 빠지게 된 과정에 누군가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입니다.

박 사단장의 주장대로 '상명하복'이 이뤄지지 않은 것인지(박 전 단장이 정당한 지시에 항명한 것인지), 정당한 수사 결과가 누군가의 개입으로 바뀐 것인지(수사에 외압이 있었던 것인지)를 따져보자는 것입니다.

때문에 박 사단장은 "상명하복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또 오늘 군사법원에서 한 발언이 '실제로 유족이 수사를 지휘했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항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박 전 단장이 유족이 원한 수사 결과를 만들기 위해 항명한 것 같다'는 취지의 발언은 증거(유족 진술조서)를 봐도, 정황(일자별 수사 진행 상황)을 봐도, 전혀 설득력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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