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눈앞에 환자가 죽어가는데…미래 환자 위한 개혁이 무슨 소용인가”[논설위원의 단도직입]

정유진 기자 2024. 9. 3.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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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 대표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 대표가 지난달 29일 서울 양천구 목동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며 의료공백 장기화에 따른 환자들의 어려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2014년 식도암 4기 판정을 받았다. 방사선 치료 후유증으로 얻은 폐기종 때문에 2017년부터 요양 생활을 하던 중 병원 측이 갑작스레 요양급여 삭감을 이유로 환자 전원에게 강제퇴원을 통보했다. 치료에 전념해야 할 때였음에도, 말기 암 환자들을 대책 없이 몰아내는 현실에 분노해 2018년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를 만들었다. 다른 환자단체와의 연대 필요성을 느껴 지난해 12월에는 한국중증질환연합회를 결성했다. 지난 2월 의료대란이 시작된 뒤에는 환자들의 피해 상황을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 대표는 자리에 앉자마자 붉게 상기된 얼굴로 “너무 속상하다”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단체를 찾아온 한 폐암 말기 환자의 자녀와 인터뷰 약속 시간 직전까지 이야기를 나누다 온 참이었다.

“대학병원에서 폐 사진을 찍어보더니 자신들은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면서, 요양병원으로 가시라고 했답니다. 위험해서 조직검사도 할 수 없으니 암 확진 판정도, 산정특례도 해줄 수 없다면서요. 예전 같으면 가능성이 낮아도 치료를 시도라도 했을 텐데, 지금 그 환자분과 자녀들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의료공백으로 인한 환자들의 상황이 지금 이렇습니다.”

전공의 집단 이탈로 시작된 의료대란이 어느덧 200일을 맞는다. 지난 6개월여 동안 대한민국 의료는 서서히 침몰하는 배와 같았다. 맨 아래 칸에 탄 중증질환자들은 일찌감치 물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었지만, 아프지 않은 사람들은 갑판 위에 있었기에 심각성을 제대로 체감하지 못했다. 대형병원 응급실까지 마비될 위기에 처하고 나서야 뒤늦게 국회가 중재에 나서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윤석열 대통령은 ‘의료현장에 한번 가보면 큰 문제가 없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먼 산 보듯 하고 있다.

김 대표는 “지금 정부도, 정치권도, 의료계도 모두가 미래와 과거 얘기만 하면서 싸우고 있다”며 “당장 눈앞에서 죽어가는 환자 편에서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다”고 답답해했다. 그는 “모두가 환자를 더 고통스럽게 만듦으로써 각자의 이익을 관철시키려 하는 것 같다”며 “이런 참담한 상황이 어딨느냐”고 했다.

본인 역시 식도암 4기 환자로 현재까지 추적관찰 중인 김 대표는 지금도 호흡에 다소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지난달 29일 만난 김 대표와의 대화를 일문일답 형태로 정리했다.

환자단체는 중증질환자의 ‘마지막 보루’, 루게릭연맹·췌장암환우회 등과 공동대응 위해 만들어
대형병원 신규 입원 거의 안 받아…수술 날짜 받고도 전공의 이탈로 기약 없는 기다림
정부·의료계·정치권, 과거·미래 얘기만 하며 싸우는 현실 참담…환자 편에서 말하는 사람 누가 있나
‘비상진료 원활’하다는 윤 대통령 말에 절망…의사 2000명 늘리려다 매일 2000명씩 죽어나갈 판
업무개시명령 실효성 없어…환자를 희생양 삼지 못하게 집단행동 처벌법 반드시 제정해야
전국 곳곳에서 응급실 진료중단이 현실화하고 있는 가운데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 앞에 구급차들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 환자단체 활동은 언제,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2014년 식도암 4기 확진 판정을 받고 치료하던 중 방사선 치료 후유증으로 폐기종 증세가 나타났어요. 공기 좋은 곳에서 지내는 게 좋다기에, 2017년 전남 담양으로 내려가 요양 생활을 시작했죠. 그런데 요양병원에서 어느 날 갑자기 환자 전원에게 강제퇴원을 통보해온 겁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요양급여를 통삭감했다면서요. 통삭감은 보통 허위입원이나 보험사기범 등에게나 적용하는 것인데,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죠. 심평원을 찾아가 설명을 요청하니, 단체도 아닌 개별 환자까지 일일이 면담해줄 순 없다고 거절하더군요. 그래서 바로 다음날 다른 환자들과 함께 단체를 결성했죠. 그렇게 시작된 게 암환자권익협의회입니다. 알고 보니 환자의 권리를 제약하는 제도적 문제들이 다양하게 중첩돼 있더라고요. 여러 환자단체와 공동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지난해 12월 한국루게릭연맹회, 한국췌장암환우회 등과 한국중증질환연합회를 만들게 됐습니다.”

- 중증질환자들에게 이러한 환자단체의 존재와 활동은 어떤 의미일까요.

“마지막 보루 같은 존재죠. 예전에 다발골수종 환우가 우리 단체에 전화를 걸어온 적이 있어요. 골수이식 수술을 하고 퇴원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수술비 문제 때문에 하도 여기저기 문의 전화를 하느라 목이 다 쉬어 있었어요. 수술비 중 어떤 부분이 본인부담상한액의 예외조항으로 인정된 건지, 그걸 실비보험으로 보상받을 수 있는 건지 등에 대해 병원 원무과도, 건강보험공단도, 소비자보호원도, 아무도 제대로 설명을 해주지 않은 거예요. 보험사는 지급을 거부하는데, 어찌해야 할지 몰라 여기저기 수소문하다가 우리 단체에까지 전화를 한 겁니다. 저희 도움으로 보험금 받아서 빌린 수술비 갚고 나자 긴장이 풀렸는지 나흘 후 응급실에 실려가서 2주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왜 누구도 환자에게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는 걸까요.”

- 환자로 사는 것은 언제나 쉽지 않지만, 의료공백이 장기화하고 있는 지금은 환자들에게 재난과 같은 상황입니다. 의·정 간 치킨게임에 낀 환자들의 목소리를 거의 유일하게 대변해온 곳도 바로 환자단체들이었습니다. 지난 6개월간 환자들의 상황은 어떠했습니까.

“일단 대형병원들이 신규 입원을 거의 받지 않고 있어요. 지난 2월18일 확진 판정을 받은 한 전립선암 환자분은 병원에서 그달 안으로 수술 날짜를 잡자고 했었는데, 바로 다음날 전공의 집단 이탈로 수술이 취소됐어요. 대기명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수술 날짜가 다시 잡히기만을 기약 없이 기다리면서 매일매일, 정말 매일매일 병원에 전화하셨대요. 얼마나 불안했겠어요. 이러다 치료 한번 못해보고 죽는 것 아닐까, 밤마다 그 공포 때문에 잠도 못 잤다고 합니다. 결국 본인이 사방팔방 알아본 끝에 다른 2차 병원에서 지난 6월에야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해요. 이분은 그나마 운이 좋은 거죠. 2차 병원에서 수술이 가능한 암이 있고, 불가능한 암이 있거든요.”

지난 7월4일 서울 보신각에서 열린 ‘의사 집단휴진 철회 및 재발방지법 제정 촉구 집회’에 참석한 코넬리아드랑게 증후군 환자의 어머니 김정애씨가 발언 도중 울먹이고 있다. 서성일 기자

- 신규 입원을 안 받으면, 그 환자들은 다 어디로 가나요.

“일단 항암부터 하는 거죠. 물론 예전에도 그렇게 할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환자 상태와 필요에 따라 결정하는 게 아니라 그냥 무조건 항암부터 해요. 수술이란 게 때가 있는 건데, 항암만 하다 보면 항암제 내성이나 재발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런 피해 현황은 지금 제대로 파악조차 되지 않고 있어요. 가장 심각한 건 과거에는 재발·전이되거나 더 이상 쓸 약이 없다 할지라도 한두 번 정도 항암이나 방사선 치료를 더 해주곤 했거든요. 담도관이 막히면 뚫는 시술을 해서 통증을 완화해주기도 하고요. 의사가 마지막으로 먹는 항암제 3주 치를 줬는데, 그거 먹고 지금까지 기적처럼 살아 있는 분도 있어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말기 암 환자들에게는 이런 게 정말 중요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냥 무 자르듯이 ‘해줄 게 없으니 오지 마세요’ ‘호스피스 병동 가세요’ 이럽니다. 그 순간 환자들은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생에 대한 의지를 놓게 돼요. 모든 희망의 빛이 꺼지면서 자포자기하게 됩니다. 사실 그 모든 상황을 가장 잘 아는 건 의사들이에요. 환자들은 모릅니다. 그냥 의사가 하라는 대로 따를 뿐이죠. 그런데도 그걸 가장 잘 아는 의사들이 지금 환자들을 방치하며 포기하고 있어요. 그래서 제가 의사들의 지금 행태를 반인륜적이라고 하는 겁니다.”

- 의사들은 한국 의료가 망가지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어서 싸우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정부도, 의사도, 모두 환자를 위해서라고 주장하는데요.

“정작 환자들은 속이 터집니다. 간호법 통과된 후에 개원의들까지 총파업 검토하겠다고 나서는 걸 보니, 다들 뭐 하자는 건가 싶더라고요. 지금 응급실 뺑뺑이 문제가 심각하잖아요. 응급실에 못 들어가는 환자들은 그럼 어디로 갈까요. 급한 대로 동네 병원에 갑니다. 그런데 거기까지 문 닫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거잖아요. 모두가 환자를 더 고통스럽게 만듦으로써 이참에 자기들 이익을 다 관철시키겠다고 나서고 있어요. 이런 참담한 경우가 어딨습니까. 보건의료노조가 파업 예고했을 때 한 대학병원은 어떻게 한 줄 아세요? 내일부터 간호사 파업으로 더 이상 케어가 어려우니 환자들은 다 퇴원해서 다른 병원으로 가라고 통보했어요. 간호사들은 내일 아침 파업 전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환자를 돌보겠다고 하는데, 왜 전날 밤부터 환자들에게 겁을 줘서 동요하게 만듭니까. 한마디로 이 모든 상황에 대한 불만을 간호사에게 쏟아내라는 건데, 어떻게 그게 (전공의의 공백을 메워온) 간호사 탓이겠어요. 다행히 파업 직전 협상이 타결돼서 사태는 잘 마무리됐지만요.”

- 정부는 여전히 비상진료체계가 잘 작동하고 있다면서, 지금은 흔들림 없이 개혁을 추진해나가야 할 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이 지난 8월29일 국정브리핑에서 ‘의료현장에 가보라. 비상진료체계가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다’고 말한 걸 듣고 절망했습니다. 저희가 지난 4, 5월 두 차례에 걸쳐 췌장암환우회를 통해 설문조사를 했어요. 정상 진료를 하고 계신다는 분이 1차 때는 응답자 189명 중 37%, 2차 때는 281명 중 32%에 불과했어요. 그런데 도대체 정부는 무슨 근거로 의료체계가 그래도 잘 버티고 있다고 말하는 걸까요. 사실 저는 지난 2월 전공의들이 집단 이탈했을 때만 해도 사태가 이렇게까지 장기화할 줄 정말 상상도 못했어요. 아마 정부도, 의사들도 예상 못했을 겁니다. 전공의들이 다 빠져나가면 병원이 한 달을 버티기 어려울 거라고 했는데, 지금 그 상태로 반년 넘게 이어져오고 있는 거잖아요. 의사 2000명 증원하려다가 환자들이 매일같이 2000명씩 죽어나갈 판이에요.”

-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저는 정부와 의료계 양쪽 중 누가 더 잘했는지, 잘못했는지를 따지고 싶진 않아요. 문제는 정부도, 정치권도, 의료계도 모두 미래와 과거 얘기만 하고 있다는 겁니다. 정부는 미래의 환자를 위해 개혁을 흔들림 없이 추진해야 하니 과도기적 혼란은 참아야 한다고 합니다. 국회는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숫자 근거가 뭐냐, 왜 회의록이 없느냐를 갖고 싸워요. 의사들은 원점 재검토만 말하고 있고요. 당장 현재 눈앞의 환자 편에서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어요. 아니, 당장의 환자도 못 살리면서 미래의 환자가 무슨 소용입니까. 일단 급한 사람부터 살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 몇명을 증원해야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100명을 늘리든 1000명을 늘리든 1만명을 늘리든 그건 나중에 의·정이 논의해서 정하면 되는 겁니다. 본질은 그 과정 속에 지금 중증질환자들의 목숨이 희생되고 있다는 거죠. 일단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의사들이 돌아오게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지난 3월15일 오전 서울 시내 한 의과대학 열람실이 의대생들의 집단 휴학으로 텅 빈 가운데 가운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연합뉴스

- 이 사태가 어떻게든 마무리되고 의사들이 병원으로 돌아왔을 때, 예전처럼 환자들이 의사들을 신뢰할 수 있을 거라고 보십니까.

“환자들에게 의사는 내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신 같은 존재예요. 전공의에 이어 나중엔 의대 교수들까지 집단 휴진에 나섰지만, 환자들은 혹시라도 우리 선생님 안 돌아올까봐 싫은 소리 한마디 못했어요. 그런데 의사들은 과연 환자를 그만큼 소중하게 여기고 있을까요. 오죽 답답하면 제가 병원이 환자 안 받겠다고 하면, 환자들도 병원 보이콧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까지 했겠습니까. 하지만 환자가 기댈 곳은 의사밖에 없어요. 결국 다시 믿을 수밖에 없죠. 사실 더 큰 걱정은 환자와 의사 간 관계보다, 의사들 간의 관계예요. 전공의들이 대한의사협회와 교수들에게 가진 배신감이 큰 것 같아요. 의료계 내의 갈등과 불신이 쉽게 봉합되지 않을 것 같아 보입니다.”

- 2020년 의료대란에 이어 반복되고 있는 의료공백 사태를 막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번 사태에서 봤듯이 업무개시명령은 실효성이 없습니다. 의사들의 집단행동을 처벌할 수 있는 법을 반드시 만들어야 합니다. 또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나 각종 의료 관련 위원회에 환자 몫의 숫자를 늘려야 합니다. 이제까지 의료정책을 만들 때 환자 중심 의료라는 허울 좋은 말만 늘어놨지, 언제 한번 환자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된 적 있습니까. 의사들은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의료는 건강보험재정이 투입되는 공공재입니다. 다시는 환자를 희생양으로 삼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려면, 이번 의료사태로 발생한 환자 피해 사례와 결과를 조사·분석할 특별기구도 만들어야 합니다.”

정유진 논설위원

정유진 논설위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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