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혁기의 책상물림]보물상자를 내주지 않으려면
조선시대에도 고양이 집사가 있었을까? 궁금증을 간편하게 해결할 방법이 있다. ‘한국고전종합DB’ 사이트에서 한글로 ‘고양이’를 검색하면 1000여건의 용례가 나온다. 쥐 잡는 재주, 호랑이와의 대조 등이 주된 내용이지만, 고양이를 손 위에 올려놓고 손자처럼 털을 빗어주는 노승의 모습도 보이고, 기르던 흰 고양이가 죽자 슬픔에 겨워 지은 제문도 눈에 띈다.
평생 한문을 배우고 읽어도 찾기 힘든 자료들이 클릭 몇번으로 쏟아진다. 궁금증뿐 아니라 학술 목적, 글쓰기나 문화콘텐츠 창작을 위해서도 고전 데이터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닌다. 하지만 이러한 활용은 한문자료들을 누군가가 한 땀 한 땀 번역해내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2007년 한국고전번역원이 설립된 이래 총 3331책 분량의 번역 성과가 제출되었고 한문 번역에 종사하고자 하는 후속 세대가 적게나마 끊이지 않는다. 기록유산을 문화콘텐츠로 활용하는 창작자 양성 프로그램도 한국국학진흥원 주관으로 진행 중이다.
하지만 세계기록유산 <승정원일기>의 번역도 3분의 1밖에 미치지 못했고, 그 외의 번역 대상은 총량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독서 대중을 위해서라면 일부만 선역하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AI의 시대일수록 우리가 필요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분량의 데이터를 한글로 제공하는가가 더 중요해진다. 그런데 지원 예산이 감축되어 번역 완료된 자료들을 탑재하는 일이 몇년째 밀리고 있다. 전문 번역인력에 대한 처우는 물가상승률 대비 대폭 줄어들었다. 아무리 풍부한 가능성을 지녔다 한들, 번역을 거치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문서 더미에 불과하다. 반면 중국은 훨씬 간편한 가공만 거쳐도 우리 한문을 그들의 데이터로 편입시킬 수 있다. 안에 뭐가 들었는지도 모르는 보물상자를 통째로 내주는 꼴이 되는 것이다.
전체 국가 연구비 가운데 한문 번역 지원에 들어가는 예산은 매우 미미하다. 해는 저물고 가야 할 길 먼 번역사업에 그 미미한 예산마저 감축되는 현실이 참으로 답답하다. 투입 대비 결과가 이보다 더 가성비 높은 국가예산이 또 있을까? 더구나 그 결과가 무한한 활용 가능성을 품은 지식의 보고임에 있어서랴.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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