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합성방' 등장...딥페이크 성범죄에 노출된 기자들
기자협회·여성기자협회 "기자 합성방, 언론 자유 위축시키는 폭력 행위"
기자 대상으로 번진 딥페이크 범죄에 "프로필 내려야 하나" 우려 확산
"위축보다는 더 많이 기사를 쓰면서 사회가 더 많이 관심 갖게 만들어야"
[미디어오늘 정민경, 윤유경, 김예리, 노지민 기자]
텔레그램 기반 딥페이크 성범죄물의 대상이 기자들에게까지 번진 가운데, 언론 단체들이 규탄 성명을 내고 정부와 국회에 처벌 강화를 요구했다. 딥페이크 성범죄를 보도하는 기자들의 신상을 캐고 딥페이크 합성물을 만들며 위협하는 '기자 합성방' 보도 이후 기자들 사이에선 프로필 노출을 꺼리는 분위기도 감지되지만 기자 업무 특성상 노출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지난달 30일 한국기자협회는 기자 합성방을 두고 “기자들의 신변을 위협하고 언론 자유를 위축시키는 명백한 폭력행위”라며 비판 성명을 냈다. 같은 날 한국여성기자협회도 성명을 통해 “기자 활동을 방해하기 위해 성범죄를 저지르고, 앞으로도 저지르겠다는 발상은 여성 기자들의 인격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뿐 아니라 언론의 자유에 대한 심대한 위협”이라며 “이를 방치할 경우 앞으로 자신과 의견을 달리하는 사안을 취재하는 모든 기자에 대한 공격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두 협회는 △정부는 딥페이크 성범죄에 대해 즉각적인 수사와 강력한 법적 조치를 취할 것 △국회는 처벌을 강화하는 법률 개정을 서두를 것 △디지털 플랫폼 운영업체들은 불법적인 콘텐츠의 확산을 막고 사용자들에 대한 철저한 관리를 할 것 등을 요구했다.
3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도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의 결과로 성폭력에 노출되는 언론사 여성 기자에 대한 보호 방안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김수진 전국언론노동조합 성평등위원장은 “만연한 딥페이크 범죄는 언론계라고 예외가 아니다”라며 “기자를 대상으로 한 딥페이크 범죄와 최근 단체 카톡방에서 여성 언론인에게 성희롱을 일삼는 일이 드러났듯 여성 기자들은 동료로부터, 취재원으로부터 또 온라인상에서 성폭력의 대상이 된다”고 지적했다.
기자 대상 딥페이크 범죄가 드러나자 언론계에선 온라인에 노출된 기자 프로필 사진을 내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고민도 전해진다. 하지만 기자들은 업무 특성상 '기자 수첩' 등과 같이 얼굴 사진을 공개하는 경우가 많고, 취재 과정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개인 전화번호가 공개되며, 보도 영상이나 유튜브 출연 등 여러 방면에서 얼굴 등 노출이 불가피하다.
한 일간지에서 젠더 관련 기사를 쓰는 A기자는 “최근 프로필 노출을 꺼려하거나 SNS 계정을 비공개로 하는 분위기가 확산한 것을 느낀다”며 “특히 단톡방이나 딥페이크 관련 기사를 쓰다 보면 많은 이들이 '혹시 내가 피해자 아니야?'라고 물어오는 경우가 많다. 범죄 특성상 '피해자가 피해를 입은지 모르고 확산된다'는 특징 때문에 불안감이 더 커지는 것 같다”고 했다. A 기자는 “회사에서 프로필(사진)도 정기적으로 찍으라고 하고, 기자 수첩에도 신뢰성을 위해 얼굴 노출이 불가피한 면이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종합일간지의 B기자 역시 “실질적으로 불안이 높아지고 있다”며 “교육팀 소속이라 학교 딥페이크에 관한 기사를 최근 여러 건 썼는데 여성 기자를 대상으로 한 딥페이크 범죄가 나왔다는 보도를 보고 '내 기사도 봤을 것 같은데 기자 홈 프로필을 내려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B기자는 “댓글만 봐도 딥페이크 이슈를 다룬 기자들을 조롱하고, 혐오하는 댓글이 많다. 다른 동료 기자들과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프로필을 내리긴 이미 늦었다'는 말도 나눴다”고 했다.
'기자 합성방' 사건을 단독 보도해 온 정지혜 세계일보 기자는 2일 통화에서 “기자 합성방 기사를 쓰고 난 후 '나도 피해자인지 알고 싶다'는 연락을 많이 받았다. 그만큼 불안해하는 기자들이 많다”고 전했다. “딥페이크 범죄와 관련해 '그냥 장난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은데 실제 해당 방에 올라오는 사진들을 보면 굉장히 심각하다. 또한 이러한 위협은 '회사로 찾아가겠다'는 식의 오프라인으로의 위협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과거 n번방 기사를 썼을 때도 이런 협박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지혜 기자는 “기자 합성방 등의 큰 특징이 '너네는 우릴 잡을 수 없다', '너네가 계속 기사를 쓰면 더 큰 범죄를 저지를 것' 같이 도발을 하는 것이다. 위축보다는 더 많이 기사를 쓰면서 사회가 더 많이 관심을 갖게 만들어야 할 것 같다”며 “더 많은 기자들이 관련 기사를 쓰면서 사회적 관심을 모으고 정치권과 사회가 움직이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련기사: 세계일보 [단독]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폭력 '기자방'도 등장… “예쁜 분들 위주로 부탁”]
이런 가운데 기자 사회 전반에 딥페이크 범죄를 '아이들 장난' 식으로 여기는 정서도 문제로 꼽힌다. 딥페이크 성범죄 판결을 취재했던 종합일간지 C기자는 “언론계에도 딥페이크 문제가 엄연한 성폭력이고 강간 문화의 연장선에 있는 범죄라는 걸 확실히 하지 않는다. 이를 두고 '포르노문화, 강간문화'라고 부르는 것 자체를 불편해 한다. 딥페이크 가해자들이 공유한 문화가 언론사 간부나 판사 등 4050 남성들이 어렸을 때부터 만연했다고 지적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며 “이런 인식이 잘못됐다고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제대로 다루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가능할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종합일간지 D기자는 “'기자방'이 만들어졌다는 보도가 나온 후 취재 과정에서 혹시나 구성원 피해 사실이 확인되면 꼭 알려달라는 (회사의) 공지를 받았다. 회사에서 구성원들의 안전을 고민하고 있다는 시그널처럼 여겨졌다”면서도 “피해 사실을 신고했을 때 회사에서 어떤 대처를 할 것인지,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가 더 구체적으로 공지되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모두가 이 문제를 정말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고민”이라며 “수사기관, 교육부, 여가부, 과기부 등 여러 부처의 영역에 걸쳐 있는 사건인지라 서로 책임 미루기만 하다가 또 흐지부지 끝나지는 않을지 싶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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