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증 따고 선생님 소리 들으며 일해”…자기효능감 ‘업’ 일자리 만들어야 [심층기획-노인일자리 100만 시대의 그림자]
공공형 노인일자리 ‘한울타리 사업단’
치매예방·마사지 등 다양한 재능 나눔
‘쓸모 있는 어르신’ 대접에 자존감 향상
돌봄 필요한 이들에겐 복지 증진 효과
현장에 수요 있는 프로그램 개발 중요
노인 주도로 진행 시스템 구축 바람직
“중앙정부 차원에서 적극적 투자 필요”
“아부지, 옛날에 파란 비닐 우산 기억나?”
멀뚱멀뚱 의자에 앉아만 있던 어르신이 색연필을 들었다. 그러곤 흰 종이에 빼곡하게 빗방울을 그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삐뚤빼뚤하던 동그라미들이 점점 일정한 모양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안씨는 이런 순간들이 가장 뿌듯하다고 말했다. “안 하신다고 하더니 너무 잘하네! 아부지 이름도 쓰셔. 오늘 날짜도 적자.”
정읍북부노인복지관의 공공형 노인일자리 ‘한울타리 사업단’은 치매 예방, 민요 공연, 건강 마사지 등 다양한 주제의 재능 나눔 프로그램을 가지고 지역 경로당·요양원을 찾아간다. 집에서 무료함을 달래는 노인에겐 일거리를 주고, 돌봄이 필요한 노인에겐 서비스를 제공한다.
노인일자리 사업이 양적 확대를 넘어 질적 성장을 이루려면 한울타리 사업단처럼 참여자의 만족감이 놓고 생산성도 있는 사업이 늘어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장에선 좋은 노인일자리를 만드는 열쇠는 ‘수요처 발굴’과 ‘참여자 교육’에 있다고 강조했다.
◆받는 노인에서 주는 노인으로
“내가 자격증을 달고 선생님 소리 들을 줄은 상상도 못 했지.”
요양원 직원들도 사업 참여 어르신들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정읍북부노인복지관 관계자는 “요양보호사·사회복지사들한텐 프로그램 개발이 큰 부담인데, 이걸 우리가 나서서 덜어준다고 하니 반길 수밖에 없다”며 “그래서 노인일자리라고 얕보는 분위기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한울타리 사업단도 어려움은 있다. 이들도 인력·예산 부족 문제를 겪고 있다. 사업 담당자 양씨는 한울타리 사업단 45명 외에도 시장형 일자리 등 도합 173명을 관리하고 있다. 특히 교구나 재료비 등이 추가로 드는 한울타리 사업은 참가자들이 업무시간 외 추가로 봉사단 활동을 해 한국노인종합복지관으로부터 예산을 따와 보태는 상황이다.
양씨는 그렇기 때문에 더욱 노인일자리의 전문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양씨의 구상은 몇 년 정도 공공형 일자리에서 경험을 쌓은 어르신을 관리자 역할로 채용해 재료 구입이나 스케줄 조정, 조 편성 등 전담인력이 하고 있는 일을 맡기는 것이다. 하지만 일주일에 많아도 세 번, 하루에 3시간으로 정해진 공공형 노인일자리의 작업 시간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양씨는 “어르신을 사회서비스형 일자리로 채용해 전담인력이 하면서 주도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싶다”고 말했다.
일손이 부족한 농촌에선 사흘 고추만 따도 공익형 노인일자리 월급인 29만원을 벌 수 있다. 사업 참여 어르신에게 적절한 노동시간을 확보해 주면서 급여도 높이려면 사회서비스형 사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양씨는 “어르신들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몇 년만 더 하면 새로운 수요처를 스스로 개발하는 것까지도 가능할 것이라 본다”고 자신했다.
노인일자리는 크게 공익형·사회서비스형·시장형으로 나뉜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는 일반적인 일자리 형태인 사회서비스형·시장형과 다르게 공익형은 월 30시간밖에 일하지 않고,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점 때문에 노인들을 ‘일하는 노동자’가 아닌 ‘복지 수혜자’로 바라보는 시각이 존재해 왔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인 스스로도 공공형 일자리를 복지 프로그램 정도로 인식한다”면서 “자기효능감은 이익을 창출하고 그게 자기 생활에 보탬이 됐을 때 느끼는데, 대부분의 공공형에선 어렵다”고 지적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공익형 노인일자리는 65만4000개에 달하지만, 사회서비스형은 15만1000개로 14.7%에 그친다. 시장형은 22만5000개(21.8%)다. 복지부는 내년 이 비율을 각각 15.6%, 21.4%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그에 맞는 지원도 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 교수는 “아무나 사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기초수급자인 노인일자리 지원자는 교육과 전문성이 부족한 상태로 일터에 나선다”면서 “사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만큼 전문성을 쌓을 수 있는 사전 교육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일자리 발굴, 참가자 교육 등을 담당하는 인력이 지금은 너무 빈약하다”면서 “현장에서 새로운 아이템을 발굴할 수 있으려면 중앙정부 차원에서 시스템에 투자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윤솔 기자 sol.y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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