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생존이 최우선? 국민 죽어도, 70만 시위 나서도 아랑곳 않는 네타냐후

김효진 기자 2024. 9. 3.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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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네타냐후 휴전에 최선 다하고 있냐는 질문에 "아니"…영국, 이스라엘에 특정 무기 수출 허가 중단

지난 주말 가자지구에서 인질 6명이 주검으로 발견되며 이스라엘에서 휴전을 촉구하는 대규모 시위와 총파업이 일었지만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협상 쟁점인 가자지구와 이집트 사이 국경 지대 필라델피 회랑 주둔 포기 땐 "전 세계의 압력" 탓에 "돌아올 수 없을 것"이라며 협상 조건 변경을 거부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네타냐후 총리가 휴전 협상에 최선을 다하지 않고 있다고 평가하고 영국이 국제인도법 위반을 우려하며 특정 무기 수출 허가를 중단하는 등 국제적 압력 또한 거세지는 상황에서 네타냐후 총리가 계속해서 입장을 고수할지 주목된다.

이스라엘 매체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을 보면 네타냐후 총리는 2일(이하 현지시간) 예루살렘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전쟁 목표는 "하마스 파괴, 우리 인질 귀환, 가자지구가 이스라엘에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도록 보장하는 것, 북부 국경 주민들을 안전하게 돌려보내는 것"이라며 이러한 전쟁 목표 달성에 "하마스의 재무장과 산소 공급관인 필라델피 회랑" 통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2005년 이후 이스라엘이 이집트와의 국경을 제외한 가자지구의 모든 국경을 통제했는데 통제에서 제외된 부분을 통해 가자지구에 무기가 들어왔다며 "악의 축(이란 및 대리 세력을 지칭)이 필라델피 회랑을 필요로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다른 10월7일(하마스의 이스라엘 습격)을 겪지 않도록 보장하기 위해" 필라델피 회랑 주둔이 "전략적 필수"라고 강조했다.

이날 회견은 지난달 31일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인 인질 6명이 주검으로 돌아온 것이 확인된 뒤 이스라엘 내에서 협상 타결을 서두르지 않은 네타냐후 총리에 대한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는 가운데 행해졌다.

지난 주말 주검으로 발견된 인질 중엔 불과 열흘 전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 연설에 나서 협상을 촉구한 인질 가족 존 폴린과 레이철 골드버그폴린의 자녀 미국계 이스라엘인 허시 골드버그폴린(23)도 있었다. 지난해 10월7일 하마스가 납치한 인질 250명 중 100명 이상이 지난해 11월 휴전 기간 동안 한 번에 석방됐지만 100명 이상이 여전히 가자지구에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이고 휴전 협상이 지연되며 이 중 30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돼 남은 인질은 이제 수십 명에 불과하다는 추측이다.

2일 미 CNN에 방송에 따르면 주최 쪽은 이스라엘 인구의 7%에 해당하는 최소 70만 명이 인질 협상 타결을 촉구하는 시위에 나섰다고 추산했는데, 네타냐후 총리는 그럼에도 협상 상대방인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힌 기존 조건을 고수한 것이다.

네타냐후 총리는 회견에서 이번에 필라델피 회랑에서 물러나면 국제사회 압력 탓에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전 세계가 우리에게 가할 엄청난 외교적 압력" 탓에 "만일 우리가 (필라델피 회랑을) 떠나면 (휴전 첫 단계 기간인 42일이 아니라) 42년 동안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20년 전 이곳을 떠난 뒤 20년 간 돌아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그들(인질들)을 생존한 채로 데려오는 데 실패한 것에 용서를 구한다"면서도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 필라델피 회랑 관련 결정 탓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또 하마스가 이들 인질의 죽음에 대해 "매우 무거운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회견에서 "그들(인질)을 집으로 데려오기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 중"이라고 말했지만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네타냐후 총리가 지난 7월 필라델피 회랑과 가자지구를 남북으로 가르는 네차림 회랑 통제를 추가로 요구한 것을 지적했다. 이는 지난 5월 이스라엘 쪽이 휴전 협상에 대해 제출한 안엔 없는 내용으로 정부가 오히려 조건을 추가하며 협상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날 앞서 바이든 대통령도 네타냐후 총리가 인질 협상 타결을 위해 충분히 노력하고 있냐는 언론의 질문을 받고 "아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다만 이번 주말까지 최종 협상안이 제시될 것인지에 대한 질문엔 "매우 가까워졌다"며 긍정적으로 답했다.

관련해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회견에서 하마스가 "우리 인질 6명의 머리에 총을 쏴 처형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양보하라고 요구하는 건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바이든 대통령이나 진지하게 평화를 달성하고 인질 석방을 이루려 하는 누구도 이스라엘에 이러한 양보를 진지하게 요구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며 바이든 대통령과의 간극을 다시금 드러냈다.

이스라엘 인질 가족 단체는 이날 네타냐후 총리의 "거짓으로 가득한 연설"이 "인질을 귀환시킬 의사가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며 규탄했다. 단체는 "더이상 이 범죄적 태만에 손을 들어주지 않을 것"이라며 투쟁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반면 네타냐후 총리와 연정을 구성 중인 극우 장관들은 총리 연설을 지지했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베잘렐 스모트리히 재무장관이 "우리 적에 굳건히 맞서고 이스라엘 국민과 전 세계에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했다"며 네타냐후 총리 연설을 지지했고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도 "필라델피 회랑을 떠나선 안 된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영국 BBC 방송, <타임스오브이스라엘>, CNN 등을 보면 전날에 이어 2일에도 텔아비브, 예루살렘, 카에사레아 등 이스라엘 전역에서 네타냐후 정부에 항의하고 인질 협상을 촉구하는 수십 만 명 규모 시위가 열렸다. 시위대는 죽어서 돌아온 인질 6명을 상징하는 빈 관을 들고 예루살렘 총리 관저를 향해 행진했다.

총리 관저 앞에서 연설한 인질 가족 샤이 모제스는 "이스라엘 총리가 이스라엘 시민을 죽음으로 내몰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이스라엘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오고 있다"며 네타냐후 총리가 필라델피 회랑 주둔을 고집하며 협상 타결을 미루는 것은 "정치적 생존"을 위한 것이라고 규탄했다.

텔아비브에서 시위대는 미국 대사관을 향해 "부끄러운 줄 알라"고 외쳤고 카에사레아에 있는 네타냐후 총리 사저 밖에서도 모닥불을 피우고 "당신은 유죄다"라고 비난했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경찰이 시위대를 무작위로 땅으로 던지며 진압을 시도했고 이 과정에서 자사 기자가 언론인이라고 밝혔음에도 경찰이 그의 목을 잡아 누른 채 30m 가량 밀어냈다고 보도했다. 이날 시내 도로 곳곳이 시위대로 인해 봉쇄됐다.

이스라엘 최대 노동조합인 히스타드루트는 2일 총파업을 요구하기도 했다. 텔아비브 벤구리온 국제공항도 파업에 동참해 이날 오전 2시간 가량 공항 운영을 중단했다. 다만 <뉴욕타임스>(NYT), BBC를 보면 파업 촉구에 따라 학교, 은행, 일부 관공서가 문을 닫았지만 텔아비브에서조차 많은 상점들은 동참에 거부했다.

<뉴욕타임스>는 낮은 파업 참여는 가자지구 전쟁 종식 방법에 대해 이스라엘인들이 분열돼 있음을 드러낸다고 짚었다. 이날 파업은 법원이 파업이 "정치적"이며 사전에 충분히 통지되지 않았다고 판단함에 따라 오후 2시30분께 예정보다 이르게 종료됐다.

<AP> 통신은 2일 하마스 쪽이 성명을 내 이스라엘이 군사적 압박을 계속하는 것은 "그들(인질)이 관에 담겨 가족에 돌아가는 것을 의미할 것"이라며 이스라엘이 군사 작전으로 인질을 구출하려 시도할 경우 인질을 사살할 수 있다고 시사했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 조사에 따르면 지난 주말 주검으로 발견된 인질 6명은 이스라엘군 도착 하루나 이틀 전 총에 맞아 살해됐다.

영국, 이스라엘에 특정 무기 수출 허가 중단…유럽서 "외교적 찬바람" 시작?

네타냐후 총리가 국내 압박에 저항하는 가운데 국제적 압력도 강해지고 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2일 데이비드 라미 영국 외무장관은 국제인도법 위반 위험을 이유로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수출 허가 350건 중 30건을 즉시 중지하겠다고 밝혔다.

라미 장관은 "이스라엘이 안보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해야 할 필요를 인지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이 사용하는 방법과 민간인 사상자 및 민간 기반시설 파괴에 대한 보고에 대해 깊이 우려하고 있다"며 "오늘 하원에서 받은 평가에 따르면, 영국의 이스라엘에 대한 특정 무기 수출이 심각한 국제인도법 위반을 저지르거나 용이하게 하는 데 이용될 수 있는 명백한 위험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수출 허가가 중단되는 품목엔 전투기, 헬기, 무인기(드론) 등 군용 항공기 부품이 포함돼 있다. 영국 공급 무기는 이스라엘 무기 수입분의 1% 미만이지만 이러한 조처는 정치적 상징성을 갖는다는 평가다.

CNN은 이스라엘군의 필라델피 회랑 주둔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점령에 반대하는 미국 행정부의 입장과도 다르다고 지적했다.

BBC는 영국의 조처가 이스라엘의 유럽 동맹국들에게서 부는 "차가운 외교적 바람"의 시작일지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네타냐후 총리가 거리에서 제기되는 협상 요구는 무시하더라도 미 대통령 등의 요구는 무시할 수 없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2일(현지시간) 예루살렘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직접 가자지구 지도를 가리키며 이집트와 가자지구 국경 지대인 필라델피 회랑 주둔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EPA·AP=연합뉴스

[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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