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대한민국 중소기업의 위기
체력 약한 中企 생존 위협, 최저임금 등 차등 적용을
허현도 중소기업중앙회 부산울산중소기업회장
우리나라 경제의 근간은 중소기업이다. 중소기업 기본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중소기업은 804만 개로 전체 기업의 99.9%를 차지하고, 종사자는 1895만 6000명으로 전체 종사자의 81%가 중소기업에 근무한다. 중소기업 매출액은 3309조 원으로 전체 매출액의 44.2%를 차지하고 있다. 통계에서 나타나듯 중소기업의 역할은 대단하다. 고용시장에서 대부분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대기업이 들어가지 않는 틈새시장에서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부품 공급자로서 글로벌 경쟁력 강화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중소기업인들을 만나면 외환·금융 위기 때보다 지금이 더 힘들다고 한다. 원인을 살펴보면, 먼저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노동 규제를 들 수 있다. 신제품 출시를 위해 몰아서 일을 해야 할 기업이나, 소수 핵심 인력에 일이 몰릴 수밖에 없는 업종에서는 주52시간제가 발목을 잡는 족쇄다. 특히 중소기업 현장에서는 돈을 벌기 위해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 근로자가 대부분인데 더 많은 일을 하고 높은 임금을 원하지만 주52시간제 적용으로 근무 시간이 제한되면서 잔업수당, 특근수당을 확보할 수 있는 고용지를 찾아 중소기업의 인력난을 가중시키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어떠한가? 기업인들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심정’이라고 한다.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업주가 1년 이상 징역 등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특히 소규모 사업장은 사업주 역할이 절대적이어서 구속되거나 징역형을 받으면 폐업 가능성이 높고, 근로자도 일자리를 잃게 될 우려가 크다. 중대재해처벌법을 지키기 위해서는 안전설비를 바꾸는 등 기술적인 조치가 아니라 인력·예산 확보, 유해·위험 요인 개선 절차 마련·점검, 매뉴얼 작성 등 관리적 조치가 필요한데 사업주가 혼자서 다 하기는 어렵다. 전문가의 힘을 빌리려고 해도 대기업, 공기업 등에서 안전관리자를 대거 채용하면서 중소기업까지 전문 인력은 오지도 않고, 외부 컨설팅은 비용이 수천만 원에 달해 대부분 중소기업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최저임금은 2015년 5580원에서 내년 1만30원으로 10년간 무려 79.7%나 인상됐다. 이로 인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경영 압박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대기업에 비해 인건비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특히 매출이 일정하지 않은 자영업자들은 추가적인 인건비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워 경영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최저임금제는 저임금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제도인데 의도와 달리 오히려 보호하고자 하는 노동자들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기업들이 최저임금 부담으로 비숙련 노동자들을 기계나 숙련도가 높은 노동자로 대체해서다.
다음으로는 중국의 한국 시장 공습을 들 수 있다. 미국과 유럽 수출길이 막힌 중국 기업들이 한국 등을 표적으로 과잉 생산된 제품들을 저가의 밀어내기 방식으로 수출을 늘리면서 철강 배터리 전기차 등의 수입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대중 무역수지도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30년간 흑자 행진을 이어갔지만, 지난해 처음으로 180억 달러 적자를 보였으며 적자 구조가 고착화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알테쉬(알리익스프레스, 테무, 쉬인)로 상징되는 초저가 공세가 산업 전반으로 확대돼 중소기업들은 설 자리를 잃고, 산업 생태계가 크게 위협받고 있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규제 강화와 외국 제품의 저가 공세가 지속된다면, 중소기업은 사라지고 산업 생태계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특히 지금과 같이 중소기업과 대기업을 동일 선상에 놓는다면 체력이 약한 중소기업은 몇 년 내에 한계에 몰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대기업 정책과 중소기업 정책이 달라야 하고, 규제도 차등 적용해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인과관계가 없는 경우 대표자의 형사처벌을 완화하고 기업 규모별로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적용해야 한다. 주52시간제는 기업 상황에 맞게 ‘주’ 단위에서 ‘주·월·분기·반기·연’ 단위로 유연화하고, 납기를 맞춰야 하거나 근로자가 더 일하고 싶어 하는 경우 노사 자율에 맡기는 것이 합리적이다. 특히 높은 최저임금은 취약 업종의 사업주는 준수가 불가능한 상황이므로 업종별·규모별 지불 능력을 반영한 최저임금 구분 적용이 필요하다. 그리고 중국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민관이 원팀이 돼 활로를 찾고 수출 총력전을 펼쳐야 한다. 또한 중국 정부가 자국 업체를 보호하는 것처럼 우리나라 역시 국내 업체를 옥죄는 규제의 족쇄를 풀어주고, 산업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어느 시대든지 사회의 모순과 갈등이 심화되면 해결하기 위한 개혁이 필요하다. 적절한 시기에 과감하게 추진하지 않으면 심각한 위기 상황을 겪게 되고 결국 그 사회는 쇠퇴를 면치 못하게 된다. 지금이라도 현실을 직시하면서 총체적이고 획기적인 변화를 모색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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