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46> 부산 초량천 돼지고기

최원준 시인·음식문화칼럼니스트 2024. 9. 3.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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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갈비·대패·불백… 앞에 ‘초량’ 붙으면 전국구 명물

- ‘돼지고기 음식 수도’ 부산서도
- 합리적인 가격에 질좋은 고기
- 타지인 들고나는 항만의 입지
- 동구 초량천 일대 특히 이름나

- 전국적 브랜드 초량돼지갈비
- 대패열풍 시작점인 초량대패
- 관광객들 많이 찾는 초량불백

자주 언급하는 말이지만 ‘부산은 돼지고기 음식의 수도’라고 할 만큼 다양한 돼지고기 음식이 잘 발달해 있는 도시이다. 부산에 와야 제맛을 볼 수 있는 돼지국밥을 시작으로 돼지갈비, 돼지두루치기, 돼지 감자탕, 돼지 곱창, 돼지머리 수육, 돼지족발, 돼지 순대… 어디에든 여러 부위의 독특한 맛을 내는 돼지고기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부산이다.

부산 동구 초량천 일대는 지금이라도 돼지고기 음식 축제를 열어도 될 만큼 돼지고기 음식을 다채롭게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여기에 부산의 사연과 역사가 함께한다. 왼쪽부터 초량돼지갈비, 초량대패삼겹살, 초량불백을 한 상 그득 차린 모습이다.


그러하기에 부산 곳곳 돼지고기 음식점이 집단화한 곳 또한 많다. 역이나 버스터미널 등 교통요충지나 부산의 여느 재래시장에 자리 잡은 부산돼지국밥 외에도, 초량동 돼지갈비, 문현동 돼지 곱창, 부평동 돼지족발, 자갈치시장 돼지 감자탕과 돼지껍데기, 수정시장 돼지머리 수육, 그리고 초량동의 돼지불백 등이 음식 골목을 이루고 있다. 이는 부산이 근현대사의 거친 물결 속에서도 팔도의 이주민을 받아들이고, 팔도의 다양한 음식과 음식문화 또한 수용하는 과정의 결과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다양한 돼지고기 음식이다.

▮돼지갈비와 초량불백

부산 동구 초량천 일대 돼지갈비 골목.


특히 부산에서도 돼지고기 음식이 전국적으로 유명하고, 다양한 메뉴로 망라되는 곳이 부산 동구 초량동의 ‘초량천’ 일대이다. 초량천은 부산역 맞은편 구봉산에서 발원하여 초량동 소재 부산역 동편을 흘러, 부산항 부산국제여객터미널 인근에서 바다로 합류하는 하천이다.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초량천 주변에는 수많은 피난민이 판자촌을 형성하고 생활했다. 이후 1964년 초량 산복도로가 개통되자 초량천은 지금의 중앙대로와 산복도로 마을을 연결하는 연결 통로가 되기도 했다. 1970년대 무렵부터 초량천은 복개되어 초량동의 상업중심지 역할을 하다가 최근 재정비해 자연 하천으로 거듭나고 있다.

이 초량천을 중심으로 ‘초량돼지갈비’라는 전국적인 브랜드의 ‘초량돼지갈비 골목’이 들어서 있고, 초량육거리의 기사식당 골목에는 부산 특유의 입 안이 얼얼할 정도로 매운맛의 ‘초량불백(돼지불고기백반)’이 전국의 여행객을 불러 모은다. 초량천 입구에는 일명 ‘대패 삼겹살’이라 불리는 얇은 냉동 삼겹살 구이집이 ‘초량대패’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이 부산 대패삼겹살의 열풍이 시작된 곳이다.

그중에서도 초량천의 돼지고기 음식의 시작은 ‘초량돼지갈비’부터 였다. 초량돼지갈비의 유래는 한국전쟁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쟁이 끝난 이후 몇 년 동안 우리나라는 부산항을 통해 우방들에게 다양한 물자를 원조받는다.

원조물자를 하역하는 노무자들은 초량천 인근 식당에서 술추렴과 요기를 하며 노동의 수고를 풀어놓았다. 이때 몇몇 식당이 싼값의 돼지고기를 연탄불 석쇠에 구워 제공했던 것이 ‘초량돼지갈비 골목’ 시초이다.

초량돼지갈비가 다른 지역의 돼지갈비와 다른 점은 고기가 신선하다는 것. 고기를 갈비짝 단위로 주문하여 그날 바로 소비하기 때문이다. 고기의 두께도 다른 곳에 비해 두툼하다. 두툼해야 육즙이 풍부하고 씹는 식감도 좋아지기에 그렇다. 그리고 가게마다 갈비를 재우고 숙성시키는 방법이 다르고, 양념과 조리법이 각각이기에 맛 또한 각기 달라 재미있다.

초량천의 두 번째 간판 음식은 ‘초량불백’. 한때 초량육거리(초량동에 있는 여섯 갈래의 도로가 나 있는 곳. 초량천 상단의 연결도로) 주변에는 택시 기사가 식사 후 잠시 휴식을 취하던 식당가가 있었다. 일명 초량기사식당골목.

20여 년 전. 이 기사식당의 돼지불백(돼지고기를 맵게 볶아서 차려주는 불고기백반)이 맛있다는 귀띔에, 당시 신문 연재 중이던 음식 칼럼에 이 음식을 소개한 적이 있었다. 이후 이 돼지불백이 전국적으로 입소문이 났다. 소위 말해 대박이 난 것. 연재한 음식 칼럼의 인터넷판을 보고 전국 유수의 방송국 프로그램이 앞다퉈 초량불백을 소개하면서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치르게 된 것이다. 이후로 이 골목은 ‘기사식당골목’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초량불백골목’으로 재탄생하기에 이른다.

‘초량불백’은 검은 프라이팬에 벌겋게 양념한 돼지고기를 각종 채소와 함께 볶아주는 음식인데, 화끈한 맛이 아주 강렬하다. 꽤 중독성이 강하고 자극적인 음식이라 전국적으로도 유명한 맛 골목이 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추억의 대패삼겹

초량천의 세 번째 음식은 ‘초량대패’이다. 중년들에게 ‘대패삼겹살’은 추억을 반추하는 음식이다. 초량천의 ‘초량대패’도 다를 바가 없겠다. 초량대패는 부산에서 대패삼겹살 전문점이 최초로 집단화해 영업한 곳이다. 이를 웅변하듯 초량천 인근으로 10여 곳의 대패삼겹살, 냉삼(냉동 삼겹살)집이 산재해 있다.

1990년 초쯤으로 기억이 된다. 정발장군 동상 뒷편 국제빌딩에 정의화 전 국회의장이 발행인을 맡은 ‘월간 현장’이라는 잡지사에 잠시 의탁하고 있을 때였다. 이때 최영철 시인이 편집장을 맡고 필자가 편집차장을 맡아 부산의 언론 기자들과 문화예술인을 맞이하던 시절이었다.

당시에는 누구 할 것 없이 주머니가 가벼워 자주 술추렴 하던 곳이 초량 복개천 변에 있던 서너 집의 대패삼겹살집이었다. 당시 식당에서 내던 돼지고기는 대부분이 냉동이었다. 삼겹살 부위 덩어리 살을 냉동해 놓았다가 절삭기에 얇게 저미듯 썰어내어 큰 쟁반에 수북이 쌓아주는 식이다. 이를 불판에 올리면 기분 좋게 치지직~ 고기 익는 소리에 모두 침이 꼴딱꼴딱 넘어가는 것이다.

1인분이 600원이었던가? 대여섯 사람이 먹어도 큰돈 들지 않았으니, 서민들에게는 더없이 훌륭하고 영양가 높은 음식이었다. 게다가 같은 양이라도 대패삼겹살은 다른 돼지고기보다 더 양이 많아 보였다. 도르르 말린 대패삼겹살이 풍성하게 보이기에 서민들에게는 마음마저 풍성하게 하는 음식이었던 것이다.

▮돼지국밥·감자탕 그리고 족발

이외에도 초량천과 인근 부산역, 초량시장 주변으로는 부산의 대표 돼지국밥집 본점이나 지점이 다수 소재하고 있고, 오래된 감자탕 맛집, 족발맛집, 생고기 맛집, 뒷고기 맛집 등의 노포들이 즐비하다.

이처럼 초량은 다양한 돼지고기 음식점이 다양하게 밀집해 있는 곳이다. 골목골목 돼지고기 음식에는 진심이라는 뜻이다. 역사적으로나 음식 문화적 측면에서도, 그리고 도시형성 과정을 살펴보더라도, 초량천 주변의 입지와 돼지고기 음식의 연관성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돼지고기 음식의 수도’인 부산, 그중에서도 돼지고기 음식이 가장 다종다양하게 분포하고 집단화된 초량천 주변에서, 부산을 대표하는 ‘돼지고기 음식 축제’를 열어보는 것은 어떨까? 축제 장소는 초량천 주변과 인근 부산역 광장.

부산 초량천 주변, 초량동은 부산의 관문이다. 유라시아 철도의 기종점인 부산역과 태평양의 관문 항인 부산항이 소재하는 곳이기에 그렇다. 부산의 관문이니만큼 타지 여행객이 밀집하는 관문 주변 지역에서, 부산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을 널리 알리자는 것이다.

이 관문 축제로 부산의 향토음식을 고부가 가치화하고, 더불어 지역 경제부흥과 상권 종사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일석삼조의 계기를 만들 수도 있을 터이다. 한마디로, 이 돼지고기 음식 축제로 부산을 명실공히 돼지고기 음식의 수도로 천명하고 전국적으로도 인정받는 기회를 갖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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