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 KBS 사장 선임 과정부터 주변 에워싼 '카르텔' 있다"

박지은 기자 2024. 9. 3.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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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성향 이석래 전 KBS 이사 글 파장]
무급휴직·수신료 통합징수 포기 발언
구성원들 "연임 치적 삼으려 하나"
경영능력·연임가능성 등 뒷말 무성

임기를 3개월여 남겨둔 박민 KBS 사장에 대한 내부의 분노가 어느 때보다 거세다. 1·2차 특별명예퇴직에 이어 정리해고 전 단계로 인식되는 ‘해고 회피 노력’을 명시한 무급휴직 강행, ‘TV 수신료 분리징수 유지’ 발언 등이 내부 반발의 불을 지폈다. 단체협상 최종 결렬로 인한 ‘무단협’ 상태가 지속되며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파업 수단도 고려한 ‘쟁의행위’ 찬반 투표를 예고하고, 사장 신임 투표를 진행해 노사관계는 최악을 치닫고 있다. 이런 와중 여권 성향인 이석래 전 KBS 이사가 박민 사장 선출 당시 상황을 공개한 ‘작심 발언성’ 글을 내부게시판에 올리면서 박민 사장의 경영능력, 연임 가능성 등을 두고 여러 말이 나온다.

박민 KBS 사장이 8월28일 국회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모습. /연합뉴스

박민 사장이 연임 도전을 공식적으로 밝힌 건 아니다. 다만 KBS 구성원이 박 사장이 연임을 노리고 있다고 의심하는 근거는 사내 3개 노조(KBS본부, KBS노동조합, KBS같이노동조합)가 한목소리로 반대했음에도 추진한 무급휴직과 조직개편(직제개편) 등이 있다. 이에 대한 비판 성명엔 “사측은 이번 무급휴직을 발판삼아 낙하산 박민의 연임을 위한 최대 치적으로 KBS 구조조정을 내세우려는 것인가”(언론노조 KBS본부) “아무런 공적 없이 연임에 나서기 스스로도 면구했던 건가”(KBS 같이노조) 등의 우려가 담겨 있다. 박 사장은 8월28일 12기 KBS 이사회 마지막 회의에서 직제개편안 철회서를 제출하면서도 “13기 이사회에 수정안을 제출하겠다”고 여지를 남겨 직제개편 강행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같은 날 KBS 결산 보고를 위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박 사장의 발언을 두고도 파장이 일었다. 이날 박 사장은 노종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수신료 분리징수를 동의하는 입장인지’ 묻자 “수신료가 분리고지가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다시 분리고지를 통합으로 해달라고 요구하기에는 공정성이나 방만경영에 대한 혁신이 부족하다”고 답했다. 이에 노 의원이 재차 ‘회사가 살아야 할 거 아닌가. 어떻게든 정부, 국민을 설득해 통합징수 해달라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묻자, 박 사장은 “이렇게(수신료 분리고지) 해야지 KBS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저는 옳은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박 사장의 발언에 대해 KBS본부는 성명을 내어 “사장으로서 당연히 공영방송의 주요 재원인 수신료 수입을 지켜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분리고지를 유지해야 한다는 무책임한 발언을 뻔뻔하게 내뱉은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며 “수신료 분리고지로 올해만 1600억원의 적자가 예상된다며 무급휴직 카드까지 꺼내들며 구조조정 공포를 조성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같이노조도 2일 성명에서 “‘수신료 통합징수안에 대한 맹목적 거부’, 연임을 염두에 두고 누군가의 심기를 거스르기 싫었을 수 있다”며 “수신료 제도를 지켜내지 못한 사장은 있어도 스스로 포기한 사장은 처음이다. 30여년 언론인 경력이 부끄럽고 무색하다”고 했다.

KBS본부는 4~9일 사장 신임 투표를 실시한다. “황당한 인식을 보이는 낙하산 박민 사장에게 현실을 똑똑히 알려줄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앞서 8월23일 쟁의대책위원회로 전환한 KBS본부는 “사측과 30여 차례 교섭을 벌였으나 사측은 협상 시작부터 5개 국장 임명동의제, 본부장과 센터장, 총국장 중간평가제 등에 대해 삭제만을 고집했다”며 단체협상 최종 결렬을 알렸다. 또 KBS본부는 준법투쟁과 피케팅, 보이콧, 태업, 파업 등에 돌입하기 위해 향후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치른다는 계획이다.

여권 성향인 이석래 이사가 임기를 마치며 8월29일 올린 사내게시글을 두고도 박민 사장 선임 과정에 대한 논란이 증폭됐다. KBS 내부 출신인 이 이사는 해당 글에서 “KBS가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려면 직원들 개개인의 용기가 필요하다”면서 “지금 이 순간에도 자존심보다는 당장의 보직을 탐하는 사람들이 있다. 현 사장의 임명을 제가 반대하던 시기 저에 대해 근거없는 마타도어를 퍼트리고 뒷조사에 협박까지 하면서 충성한 사람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박민 사장 선임을 강행했던 일부 KBS 이사들과 현 간부진을 향한 비판으로 해석되는 지점이다.

지난해 10월 김의철 전 사장 해임 이후 이사회의 보궐 사장 선임 과정에서 절차적 부당성 논란이 있었다. 당시 사장 후보 3인 대상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자 KBS 이사회는 박민·최재훈 후보를 대상으로 결선 투표를 진행하려고 했다. 그런데 서기석 이사장이 돌연 휴회를 선언하고 이사회를 연기했다. 이 과정에서 최재훈 후보가 사퇴하면서 박민 후보가 사장 최종 후보가 됐다. 당시 야권 이사들은 “낙하산으로 지목된 후보가 여권 이사 내부의 이탈표로 과반 득표가 불확실해지자 표결을 무산시키는 무리수를 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석래 이사는 기자협회보와의 통화에서 “KBS가 정치적 영향력 하에 있다는 문제 인식 아래 이렇게 되면 우리가 다 죽는다, 그러니까 (이 문제에) 벗어나 달라는 걸 얘기하려 했다”며 “사장 선임 과정부터 사장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사람들이 카르텔을 형성해 KBS가 내부적으로 단합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차기 KBS 이사회 전망을 묻자 이 이사는 “당분간은 좀 힘들지 않겠냐”며 “그래도 KBS 출신들이 몇 명 들어가니 역할을 잘 할 거라고 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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