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 역사에 잊힌 비운의 존재 '여성 광부' 다큐에 담다
다큐멘터리 ‘광부엄마’는 창간 79주년을 맞은 강원일보가 최초로 시도한 영화 다큐멘터리다. 4월 여성광부 이야기를 영상으로 기록하고 싶다는 정치부 최기영 선배의 말을 듣고 다큐 제작에 임하게 됐다. 특히 7월 태백 장성광업소 폐광을 앞두고 적절하다고 느꼈고 그동안 광부에 대한 보도는 많았지만 여성 광부인 선탄부(選炭婦)를 다룬 보도는 많지 않았기 때문에 의미 있는 프로젝트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각각 다른 부서의 기자들이 모여 6명의 팀이 이뤄졌다. 팀원들이 사진을 찍고 인터뷰를 하면 난 모든 것을 영상으로 기록하는 역할을 맡았다.
팀원들과 첫 취재 당시 은퇴 여성광부 김매화 할머니를 만났다. 사실 김 할머니는 대학생이었던 작년 여름 여러 번 뵌 적이 있었다. 졸업 작품을 촬영했을 때 우연히 역 앞을 지나가던 할머니를 봤고 그것이 계기가 돼 자택까지 가서 깊은 사연을 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로부터 1년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기자가 돼 팀원들과 삼척을 찾았을 때는 할머니와 전혀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러나 4번째로 연락한 순간 연결이 돼 그날 바로 할머니 집으로 찾아가 인터뷰할 수 있었고 강원일보를 통해 기구한 사연을 소개했다.
여성 광부 10명 중 7명이 진폐 질환을 앓고 있음에도 장해등급 급수를 받지 못한 채 살아간다. 만성폐쇄성 폐질환으로 산재 등급이 인정돼 심사를 받을 수 있는 대상이 되려면 여성 광부는 광부보다 20년을 광업소에서 더 일해야 한다. 김 할머니는 삼척 도계광업소에서 20년 근무를 했고 급수심사 대상이 되는 조건도 충족했다. 퇴직 후 폐질환으로 폐 일부를 잘라낸 흔적도 있었다. 하지만 공단에서는 ‘의증’으로 분류돼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강원일보 기사를 보면 김 할머니는 1976년 처음 선탄부로 재직했다고 나온다. 실제로 통계를 보면 1970년대가 유독 많은 광부가 목숨을 잃은 시기다. 남편을 잃은 아내가 정말 많았고 여성들이 광업소로 많이 유입됐다. 그들은 석탄더미 속 정탄(精炭)과 돌, 불순물을 골라내는 일을 했다. 다큐 인트로 영상에 1970년 텍스트와 함께 선탄부의 사진이 흘러가는 장면을 연출한 것은 그 이유 때문이다.
정선에서는 (사)중앙진폐재활협회 이희탁 회장님을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진폐 환자로 협회에 소속한 여성 광부들의 명단도 받았다. 글도 배우지 못한 채 어린 나이에 여성 광부로 취업했지만 문해교육을 통해 지금은 시인으로 활동하는 전옥화씨도 만날 수 있었다. 여러 취재원 도움을 받아 춘천에서 3~4시간 걸리는 태백, 삼척, 정선을 수차례 오가며 4개월간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렇게 각각 다른 부서의 기자들이 힘을 합쳐 맡은 임무를 수행한 덕에 ‘광부엄마’ 연재물이 계속해서 보도됐다.
기사가 연재되며 반향도 있었지만 문제는 다큐멘터리 제작이었다. 작품을 어떻게 풀어갈지 많은 고민이 있었다. 어느 날 머릿속에서 문득 들었던 생각은 ‘다큐의 첫머리와 끝머리를 전옥화 시인이 읊은 시로 활용하자’였다. 전 시인을 만났을 때 ‘지독한 가난’ 시를 읊어 달라고 요청했다. 시의 내용도 선탄부가 지나간 삶을 되돌아보는 느낌이었고, 다큐의 내레이션으로 쓰기에 잘 어울릴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이 외에도 ‘광부엄마’ 영상을 만들며 많은 문제를 겪었다. 편집과정의 기술적 문제도 있었고, 취재 과정에서 선탄부의 희생과 노고를 들으며 머리와 가슴으로는 충분히 이해했지만 뜻대로 작품이 나오지 않는다는 답답함도 있었다. 결국 취재영상과 대학 시절 촬영했던 데이터까지 동원했고 1.7테라 정도의 용량이 나왔다. 영상 텍스트에 쓰일 선탄부 정보도 부족해 협회와 광산연대 측에 수십 번 연락했다. 마침 회사 데이터베이스에서 수십여 년 전의 흑백 여성광부 사진들을 발견했고 최대한 활용했다. 영상은 그렇게 50번의 수정을 거쳐 완성됐다.
이번 다큐멘터리에서 초점을 맞춘 것은 4K와 같은, 영화 같은 영상을 제작하는 것이 아닌 불합리한 진폐법과 생계 끝자락에 선 광부엄마를 있는 그대로 보도하는 것이었다. 전옥화 시인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식 위해 청춘을 바친 육신이여”란 시에서 처절한 삶을 살았던 선탄부의 존재를 한 구절로 표현한 것처럼, 독자들이 여성광부들의 존재를 오랫동안 기억해준다면 다큐멘터리의 역할은 충분히 다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기자생활을 시작한 지 갓 1년째다. 선배들과 함께 ‘광부엄마’를 취재한 것만으로 의미 있던 프로젝트였고 빠듯한 인력 등 여러 어려움에도 전폭적으로 지원해 준 부서와 회사에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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