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이트의 국가구상 현실화되는가? [신진욱의 시선]
윤석열 정부는 총체적 퇴행의 정치를 가장 적나라한 형태로 구현해주고 있다. 그 이유는 최고권력자인 대통령이 지도자로서의 철학과 도덕적 깊이를 갖지 못한 정신적 진공 상태에서, 우익 세력들이 대통령의 힘을 빌려 그들의 국가구상을 여과 없이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념의 “의미도 모르”면서 “제일 중요한 게 이념”이라고 외치는 대통령의 존재는 교조적 이념 세력에 최고의 정치적 기회다.
신진욱 |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최근 거셌던 뉴라이트, 친일 논란을 계기로 윤석열 정부의 그간의 행보와 담론, 인적 구성을 정리해보면서 분명해진 게 있다. 이 사안은 단지 독립기념관장이나 고용노동부 장관 등 몇몇 개인의 인식 문제가 아니라, 뉴라이트를 비롯한 한국 우익 세력이 꿈꾸어온 국가구상이 윤석열 정부를 통해 현실화되는가의 문제라는 것이다.
뉴라이트는 광범위한 우익운동이었고, 대외정책, 정치, 경제, 노동, 역사해석, 교육 등 많은 의제에서 우파 국가구상을 정립하고 추진했다. 초기 단체들은 나중에 많이 사라졌지만 그 핵심 세력은 여러 우익단체에서 활동해왔고 사회의 제도권력을 쥐고 있다.
간혹 뉴라이트를 친일 단체와 동일시하는 시각도 있지만, 뉴라이트는 매우 다양한 단체들을 포함한다. 최대 조직이었던 뉴라이트전국연합은 전국에 지역조직과 산하기관, 직능조직까지 갖추고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 자유주의연대,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뉴라이트싱크넷, 교과서포럼, 한국기독교개혁운동 등이 연결되어 있었다. 또한 바른사회시민회의, 자유기업원, 한반도선진화재단 등 여러 중요 단체가 지금도 활동하고 있다.
뉴라이트에는 보수의 혁신을 모색하거나 중도보수를 지향한 흐름도 있었지만 결국 주도권을 쥔 것은 극우 분파들이었다. 그들의 이념과 노선을 정리해보면 대외관계는 한·미·일 동맹과 반북·흡수통일론, 정치는 자유민주주의를 내건 반공권위주의, 경제는 친기업·반노동 자유시장경제론, 역사는 식민지근대화론과 이승만·박정희 재평가론으로 압축된다. 이 사각형의 틀로 윤석열 정부의 지난 2년 반을 비춰보면 많은 부분 일치한다.
그런 뉴-라이트는 과연 ‘뉴’한가?
그 이름에 ‘새로움’을 내세웠기 때문에 막연히 ‘올드라이트’와 대비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이념과 담론, 인적 구성의 면에서 공통점과 연속성이 더 많다. 그러므로 특정 뉴라이트 단체만 떼어서 볼 게 아니라, 뉴·올드라이트를 망라하는 우익 세력의 인적, 조직적 연계를 총체적 관점에서 봐야 한다.
올드라이트의 대표 사례는 보수개신교 단체와 반공·반북 단체들이다. 뉴라이트가 성장한 시기에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한국자유총연맹, 반핵반김국민협의회, 친북좌익척결국민행동본부 등 ‘올드’ 단체들도 매우 활발했고, 해병전우회, 재향군인회, 고엽제전우회 등 퇴역군인 조직들도 정치화됐다. 많은 뉴라이트 단체는 이들과 이념이나 담론의 친화성이 컸을 뿐 아니라 종종 함께 행동했으며, 특히 보수개신교와는 인적으로도 많이 겹친다.
뉴라이트와 올드라이트를 묶어주는 이데올로기적 중심개념은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이며, 그것과 짝을 이루는 개념인 ‘종북·친북’, ‘반국가세력’, ‘공산전체주의’ 등은 반대 세력에 대한 폭력을 고무, 정당화하는 담론들이다.
한반도 평화를 얘기해도, 노동자 권리, 복지 확대, 기업 규제, 종합부동산세를 얘기해도 모두 ‘공산주의’, ‘자유민주주의의 적’으로 통한다. 그런 식으로 자본의 지배, 정치적 독재, 제국주의와 식민주의가 연결된다.
이처럼 뉴라이트, 올드라이트가 공동의 정체성과 이데올로기를 발전시키면서 함께 능동화된 이유가 뭘까?
그 대답은 민주화로 인한 위기의식에서 찾을 수 있다. 1987년에 독재가 무너진 뒤에 1997년에 김대중 대통령이, 2002년에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2004년에는 노 대통령 탄핵 시도가 실패하고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과반수 의석을 얻으면서 한나라당이 ‘천막정당’으로 전락했다. 우익의 능동화가 일어난 배경이다.
이 상황이 뜻한 바는 오랜 독재 동안 공고했던 재벌, 부자, 관료, 군부, 종교재단의 특권과 이익을 더 이상 국가권력이 지켜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과 동등한 위치에 설 수 없었던 시민들이 이제 민주적 권리를 누리며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하자, 기득권층은 그들의 이익을 위해 스스로 조직하고, 이념으로 무장하고, 정치에 나서야 했다. 이들 우익단체들의 본질은 민주화 이후 위협받는 구체제와 기득권을 방어하는 투쟁에 있다.
윤석열 정부는 그러한 총체적 퇴행의 정치를 가장 적나라한 형태로 구현해주고 있다. 그 이유는 최고권력자인 대통령이 지도자로서의 철학과 도덕적 깊이를 갖지 못한 정신적 진공 상태에서, 우익 세력들이 대통령의 힘을 빌려 그들의 국가구상을 여과 없이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념의 “의미도 모르”면서 “제일 중요한 게 이념”이라고 외치는 대통령의 존재는 교조적 이념 세력에 최고의 정치적 기회다.
실제로 윤석열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우익단체 핵심 인사들이 권력의 중심에 포진해 있었다. ‘원조 윤핵관’인 장제원 전 국민의힘 의원, 권성동 의원 등이 모두 영향력 있는 뉴라이트 조직의 대표였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 김영호 통일부 장관, 한오섭 전 정무수석비서관도 모두 뉴라이트나 기타 우익단체 구성원이었다.
권력기관뿐 아니라 사람들의 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방송, 역사, 교육 분야 정부위원회 수장들도 뉴라이트 인사들로 채워졌다. 이동관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동아일보에서 ‘뉴라이트’라는 용어를 대중화한 인물이며, 김낙년 한국학중앙연구원장, 허동현 국사편찬위원장, 이배용 국가교육위원장 등이 모두 식민지근대화론자, 교과서포럼 멤버였다.
이런 상황은 우리 국가의 미래에 심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 국가는 나라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내리고 자원을 배분할 공적 권한과 권력을 가진 유일한 조직이다. 그 조직의 정상이 반민족적, 반민주적, 반민중적 집단의 손에 들어가면, 그들이 비록 소수일지라도 사회의 제도와 시스템이 급속히 이완되고 왜곡될 수 있다.
더 깊이 우려되는 것은 사회의 근본가치에 대한 위협이다. ‘위안부’는 자발적 매춘이고, 식민지배와 독재로 잘살게 됐으며, 민주화운동의 배후에 북한이 있고, 파업하는 노동자는 국가의 적이라는 담론들은 인간 존엄의 모독, 주권과 민주주의의 폄훼, 자유와 평등의 부정이다. 그것이 아무렇지 않게 말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진정한 위기다.
극우의 주류화에서 가장 큰 위험은 우리가 거기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처음엔 상상할 수 없던 것이, 점차 하나의 의견이 되고, 나중엔 상식이 된다. 사회가 거기에 이르면 희망을 찾기 어렵다. 우리 사회는 어디쯤 와 있을까.
만약 당신과 내가 이 현실에 분노와 모욕을 느낀다면, 우리에겐 아직 이 사회를 지킬 힘과 자존감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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