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통계’ 감추기 급급한 윤 정부 [세상읽기]
임재성 | 변호사·사회학자
윤석열 정부는 지난 8월 유엔 무역통계에서 대한민국 무기류(총·포탄 등) 정보가 공개되는 것을 막았다. 대한민국 무기류 수출입 통계(이하 ‘무기통계’)는 1988년 이후 유엔 무역통계 절차를 통해 계속 공개되던 정보였다. 그 정보가 한국 정부 요청에 의해 최초로 막혔다. ‘힘에 의한 평화’를 교리처럼 외치면서도 정작 그 ‘힘’에 대한 상식적 수준의 정보조차 감추겠다는, 최소한의 감시나 견제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부당한 조치다.
평화운동이 척박한 한국 사회이기에, 안타깝게도 이 초유의 사건에 대한 보도나 분석, 비판은 크지 않다. 분석과 비판을 위해서는 두가지 정보를 먼저 확인할 필요가 있다. ①무기통계가 무엇이고 어느 정도 공개되고 있는지, ②윤석열 정부 들어 무기통계를 두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다.
‘무기통계’란 무엇인가? 특정 국가가 연도별로 어떤 나라와 어느 정도 액수의 무기, 총·포탄 상품(통상 ‘HS코드 93’)을 수출입하고 있는지에 대한 통계다. 무기통계는 일정한 추상성을 가진다. 무기를 구체적으로 특정하지 않고 권총류, 미사일류, 검류 등 7개 항목으로 분류한다. 항목에 따른 내역도 수출입 국가와 국가별 총액이 표시될 뿐이다. 이 추상성으로 인해 대부분의 나라들이 무기통계를 지속적으로 공개하고 있다. 전세계 방위산업과 관련된 여러 분석이 이 통계를 바탕으로 작성되고 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 들어, 특히 올해 무기통계를 비공개하려는 뚜렷한 경향이 확인된다. 관세청이 직접 무기통계를 공개하진 않았지만, 한국무역협회를 통해서 대한민국 무기통계(MTI코드 97, SITC코드 891 등)는 그동안 정기적, 통상적으로 공개되어왔다. 그런데 무역협회가 지난 1월과 5월 공개하던 무기통계를 순차적으로 비공개했다. 무역협회의 비공개 조치는 관세청 요구로 인한 것이었다. 앞서 확인한 유엔 무역통계 역시 관세청이 지난 7월 유엔 쪽에 비공개를 요청한 결과다.
공개되던 정보를 감추기 위해서는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관세청의 설명은 이렇다. ‘원래 비공개 정보인데, 행정상 착오로 무역협회 쪽에서 공개되고 있었던 것이다’, ‘(유엔 통계는) 국가 안보와 관련되는 사항이라 비공개 요청했다’. 즉 무기통계는 비공개가 맞고, 공개하면 국가 안보에 위험이 발생한다는 것.
전혀 아니다. 무기통계는 ‘공개’가 맞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윤 대통령께서 ‘자유와 민주주의의 상징’이라 칭송하는 미국, 무기수출 부동의 1위인 미국도 무기통계를 일관되게 공개한다. 역시 대통령께서 ‘보편가치를 공유하는 파트너’라 명명한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구체적 무기명이나 수량, 배치 정보를 담고 있지 않은 연도별, 국가별 총액 수준의 무기류 수출입 정보는 투명하게 공개하자는 것이 국제사회의 합의다. 많은 나라들이 무기통계를 지속적으로 공개하고 있는데, 해당 나라들에 무슨 안보 위협이 발생했나? ‘대한민국은 2019년 이스라엘에 688만4013달러 상당의 무기류를 수출했다.’ 이 문장에 담긴 정보에서 어떤 안보 위험이 존재하는가?
앞서 확인한 일련의 조치로, 한국 사회는 무기통계가 공개되지 않는 아주 예외적인 국가가 되었다. 이제 우리는 대한민국이 가자 학살을 벌이고 있는 이스라엘에 얼마나 많은 무기를 수출하는지, 지난해에 견줘 올해 증가했는지, 감소했는지 알지 못한다. 자국 시민들을 탄압하는 독재 국가들에 대한민국이 무기를 수출하는지 여부도 확인할 수 없다.
이렇게 무기통계에 대한 시민들의 정보접근권을 빼앗아놓고는 정부의 ‘세계 4대 방산 강국 도약’ 정책을 선전하면서는 ‘비공개’ 정보로 도배를 한다. ‘지난해 한국의 방위산업 수출은 약 140억달러’, ‘방산 수출 대상국이 12개국으로 늘었다’, ‘폴란드에 이어 동남아, 남미서도, 올 200억불 방산 수출 꿈 아니다’ 등이다. 이 정도면 모순이 아니라 어처구니가 없는 수준이다. 정부가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라는 거다.
윤석열 정부가 무기수출산업에 대한 정책적 우선순위를 높여가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것이 타당한지, 윤리적인지에 대한 논쟁은 미뤄두자. 최우선 정책이라면, 그에 걸맞은 정보가 공개되어야 하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검증과 감시가 가능해야 한다. 그런데 더 많은 정보를 공개하기는커녕 30여년간 공개되어왔던 자료조차 감추고 있다. 반드시,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무기통계 비공개 조치는 원상회복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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