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상승률 2%, 인플레 기준선인가 허구의 선인가 [마켓톡톡]
물가 목표 2%의 비밀 1편 유래
뉴질랜드 장관의 즉흥 발언 결과물
연준, 2012년에야 구체적 숫자 제시
우리나라 8월 물가상승률이 물가 목표치인 2.0%를 정확하게 맞췄다. 세계 각국 중앙은행이 입버릇처럼 말하던 물가상승률 2%를 달성했으니, 한국은행은 당연히 기준금리를 인하해야 할까. 물가상승률 2%는 정말 '인플레의 기준선'일까. 더스쿠프가 물가 목표 2%의 비밀을 풀어봤다. 1편 2%의 유래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를 포함해 전세계 중앙은행장들이 2021년 이후 틈날 때마다 외쳐대던 숫자가 있다. 물가상승률 목표치 2.0%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우리나라의 8월 물가상승률이 정확히 2.0%를 기록했다. 2021년 3월 이후 41개월 만에 최저치다.
3일 통계청이 발표한 우리나라 8월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공업제품과 같은 상품가격과 월세, 공공서비스 등 서비스 가격이 1%대 상승에 그치며 2.0%로 하락했다. 가격 변동이 심한 농산물과 석유류를 제외한 근원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1.9%였다.
■2%라는 우연=미국의 연방준비제도(연준·Fed), 한국은행, 영국 잉글랜드은행(BOE), 유럽중앙은행(ECB) 등 세계 중앙은행 대부분이 물가안정목표제(Inflation Targeting)를 채택하고 그 목표치로 2.0%를 내세운다. 누가 얼마나 복잡한 계산을 통해서 얻어낸 숫자일까.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물가 목표치를 언급할 때마다 고통받았던 전 세계 중앙은행을 생각하면 언뜻 미국이 제시한 숫자 같지만, 사실은 뉴질랜드가 기원이다.
그런데 목표 숫자인 2는 사실 즉흥적이고, 우연한 말의 결과물이었다. 누구도 2%를 도출하기 위한 계산을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뉴질랜드의 재무부 장관이던 로저 더글러스는 1989년 TV 인터뷰에서 물가 목표제의 정확한 숫자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인플레이션율 0~1.0%를 원한다"고 답했다.
후임 장관인 돈 브래시는 중앙은행장들이 모인 미국의 잭슨홀미팅에서 "더글러스 장관의 발언을 기초로 재무부 직원들이 상향 편향(통계가 측정 오류로 실제보다 더 높게 계산되는 현상)을 약 0.75%로 잡고, 이를 반올림해 2.0%라는 대단한 숫자가 정해졌다"고 밝혔다. 2%라는 숫자가 도출된 건 우연이었다는 얘기다.
뉴질랜드가 물가 폭등에 대응해 중앙은행법을 개정한 1989년 이 나라 물가상승률은 7.6%였다. 뉴질랜드 중앙은행은 지난 1999년 '인플레이션 목표 설정 10년 후'라는 보고서에서 "우리가 처음 시작한 물가 목표제는 때때로 이를 뽑는 것과 같은 고통을 통해서 진화했다"며 로저 더글러스의 제안을 구체적으로 소개했지만, 숫자 2를 어떻게 도출했는지는 함구하고 있다.
한국은행도 외환위기를 계기로 물가안정목표제를 1998년 도입했고, 2004년 이후 금융통화위원회 의결로 3년 단위 목표치를 설정한다. 한은이 물가 목표치를 연 2.0%로 낮춘 것은 2015년이다.
■ 연준의 의도된 불투명성=다른 많은 우연과 즉흥의 결과물처럼 물가 목표 2.0%라는 숫자도 공개되는 즉시 법칙처럼 굳어졌고, 결국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이동했다. 세계 각국은 1990년대 초반에 2%를 중심에 놓고 '물가목표'를 제시하기 시작했다.
캐나다는 1991년 세계에서 두번째로 물가안정목표제를 도입하면서 '중기(medium term)'라는 시간 개념을 도입했다. 물가 목표를 5년마다 재설정한다는 개념이다. 1992년에는 영국이, 1993년에는 호주가 도입했다.
다만, 미국 연준은 목표치를 공개적으로 설정하는 데는 무척 보수적이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처럼 공개적으로 많은 정보를 공유하는 연준 의장이 드물었다는 얘기다. 1979~1987년 연준 의장을 지낸 폴 볼커, 1987~2006년 의장을 지낸 앨런 그린스펀은 암암리에 물가상승률 0~1.0%를 목표로 움직였다.
그린스펀은 1996년 7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물가 목표가 2.0%라는 사실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발언이 나오자 "2.0%라는 수치가 알려지면 누구도 예상 못 할 만큼 많은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리치먼드 연방준비은행).
그래서 당시 기자들은 그린스펀 재임 기간 내내 FOMC 회의에 의장이 들고나오는 서류가방 크기를 놓고 금리 결정을 점치기까지 했다. 돈 콘 당시 연준 부의장은 훗날 "그린스펀은 자신의 재량권을 침해받고 싶어 하지 않았다"며 "물가 목표치를 2.0%라고 공개하면, 물가가 2.5% 오를 때 왜 실업을 발생시켜서 물가를 내리지 않느냐는 공격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벤 버냉키 전 의장은 막대한 돈을 시장에 풀어놓는 양적완화를 통해서 금융위기를 진정시킨 직후인 2011년 FOMC를 통해서 물가 목표치를 대중에 공개하는 작업에 착수한다. 버냉키의 당시 경험은 연준이 시장에 성명서와 인터뷰를 통해서 금리 향방을 제시하는 포워드가이던스를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
2011년에 FOMC의 위원 중 하나였던 재닛 옐런 당시 샌프란시스코 연은 총재(현 재무부 장관·연준 의장 역임)는 1.5%를 목표치로 제시했고, 제프리 래커 당시 리치몬드 연은 총재는 단기 2년간 1.0%, 장기 -1.0%를 제안했다.
"FOMC는 개인소비지출(PCE)의 연간 가격 변화를 측정한 결과 연 2.0%의 인플레이션이 가장 일관성이 있다고 판단한다." 벤 버냉키가 미국인들에게 처음으로 연준의 장기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공개한 건 2012년 1월이었다.
그렇다면 물가상승률 2%는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 숫자일까. 지난 8월 물가 상승률 2%를 정확하게 달성한 한국은 이제 인플레의 고통에서 벗어난 걸까. 아울러 한은은 기준금리를 인하해야 마땅할까. 또다른 조건은 없을까. 이 질문의 답은 물가상승률 2%의 비밀 두번째 편에서 찾아보자.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eongyeon.han@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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