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 탄소배출권' 투자한 정부... 100억 원대 손실 발생
정부가 해외 탄소배출권에 투자했다가 100억원이 넘는 손실을 입은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국제사회 논의 과정을 살펴봤을 때 사업 실패 위험이 크게 증가한 상황에도 ‘국가 이미지를 제고하겠다'며 투자를 강행했던 정부는 손실 발생 사실 또한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대외경제협력기금에 157억 수입? 알고보니 펀드 청산 잔여금
뉴스타파가 국회 예결산특별위원회의 ‘2023회계연도 결산 및 예비비지출 승인의 건' 검토보고서를 확인한 결과 기획재정부는 대외경제협력기금에 지난 해 157억6천만원의 수입이 발생했다고 기재했다.
그런데 취재 결과 이 157억 원은 과거 정부가 아시아개발은행(ADB, Asian Development Bank)의 미래탄소펀드에 출자한 2,000만 달러 규모의 투자증권이 청산되면서 남은 출자 잔여금 1,200만 달러(157억6,000만 원)인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가 아시아개발은행이 운영한 미래탄소펀드에 2,000만 달러를 투자했다가 1,200만 달러만 돌려 받게 되었다는 얘기인데, 다른 말로 하면 약 8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100억원이 넘는 손실을 입었다는 것이다.
휴지 조각 된 탄소배출권, 날아간 투자금
미래탄소펀드란 아시아개발은행이 2008년 개발도상국의 온실가스 감축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투자 상품이다. 해당 펀드는 탄소 배출을 의무적으로 줄여야 하는 선진국이 탄소 배출 감축 의무가 없는 개발도상국에 녹색 사업 자금을 지원하면 그 대가로 탄소배출권(CER, Certified Emission Reduction)을 배당 받는 구조로, 이른바 청정개발체제(CDM, Clean Development Mechanism)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우리 정부는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출자금 2,000만 달러를 납입했고, 그 중 614만 달러를 실제로 개발도상국 녹색 사업에 지원하고 그 대가로 탄소배출권을 획득했다.
그러나 지난 2021년 국제 사회의 합의로 한국 정부가 미래탄소펀드를 통해 확보한 모든 탄소배출권이 무효가 되는 황당한 상황이 발생했다. 2021년 11월 외교부와 기재부 등 정부 부처가 합동으로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2021년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개최된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 총회(COP26)가 “청정개발체제 사업 감축실적(CER)에 대해서는 2013년 이후 등록된 사업에 한하여 1차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에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고 합의한 내용을 발표했다. 앞서 한국 정부가 미래탄소펀드를 통해 구매한 탄소배출권은 모두 2013년 이전에 확보된 것으로 사실상 휴지조각이 된 것이다.
기재부 자료에 따르면 투자금 2,000만 달러 가운데 실제 구매했던 614만 달러 상당의 탄소배출권은 모두 손실로 처리가 됐다. 뿐만 아니라 미래탄소펀드 사무국 운용비 149만 달러, 펀드 수수료 20만 달러 등의 비용까지 합해 총 783만 달러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해 펀드 잔여금을 돌려 받았을 당시의 환율로 계산하면 총 101억 5천만 원 상당의 국민 혈세가 공중으로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 같은 손실 내용을 국민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기후환경단체 플랜 1.5의 권경락 활동가는 “2013년까지 개도국 청정개발체제(CDM) 사업을 통해 생산된 탄소배출권의 품질이 매우 낮았기 때문에 국제사회가 사실상 ‘불량품' 판정을 내린 것"이라며 “한국 정부가 불량 배출권에 투자한 셈이 됐다"고 지적했다.
청정개발체제 사업의 탄소배출권이 국제 사회의 신뢰를 얻지 못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좁혀진다. 하나는 경제 규모가 날이 갈수록 커지는 개발도상국에 태양광발전소 등 이른바 녹색 사업 자금을 지원한다고 해서, 해당 국가의 탄소 배출이 줄어들었다고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 정부 등이 출자금을 낸 미래탄소펀드의 주요 투자 대상은 중국의 녹색 산업이었는데 중국은 경제 성장 규모에 따라 이산화탄소 배출량 또한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중국의 이산화탄소배출량은 2010년 81억톤에서 2024년 126억톤으로 크게 증가했다.
또 다른 쟁점은 해외 탄소배출권의 이중사용 논란이었다. 미래탄소펀드처럼 A국가가 개발도상국 B의 녹색 산업 투자로 탄소 배출을 줄였을 때, 그 실적이 누구의 것인지를 두고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패 예견된 상황서 투자 강행?
특히 한국이 투자를 강행했던 미래탄소펀드 사업 초기의 전후사정을 살펴보면, 이미 실패가 예견된 사업을 정부가 무리하게 진행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게 한다.
미래탄소펀드 사업이 시작된 배경은 1997년 일본에서 체결된 교토의정서와 관련이 깊다. 온실가스로 인한 기후변화는 앞서 산업화를 진행한 선진국의 책임이 큰 만큼 선진국에 대한 감축 의무를 규정한 것이 교토 의정서의 핵심이다. 교토 의정서 후속 합의에 따라 선진국들은 1차로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의무 감축량을 정하게 됐다. 한국의 투자 근거가 된 청정개발체제(CDM), 즉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의 녹색 산업을 지원해 탄소 배출을 줄일 경우 이를 선진국의 감축 실적으로 인정해주는 제도가 마련된 것도 이 무렵이다.
한국은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돼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할 국제적 의무를 면제 받았다. 그러나 기획재정부는 한국이 2차 의무 감축국가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미리 탄소배출권 확보를 위한 미래탄소펀드 투자를 결정하게 된다. 2008년 출범한 이명박 정부가 ‘저탄소 녹색성장'을 국가 비전으로 내세우며 동아시아 국가들과 기후변화 대처를 선도하겠다고 강조한 것이 그 배경이다. 기획재정부는 미래탄소펀드 투자 목적으로 △한국의 의무감축국 전환 대비 탄소배출권 선제적 확보 △선진금융 기법 습득 및 경험 축적△녹색금융 선도를 통한 국가 이미지 제고 등 크게 세 가지를 들었다.
그런데 2009년 12월 중대 변수가 발생한다.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제15차 당사국총회(COP15) 참여 국가들이 2차 의무감축 합의에 실패하면서 사실상 교토의정서의 ‘선진국 책임 원칙’이 무너진 것이다. 감축 의무가 사라지면서 CDM 사업을 통해 확보한 탄소배출권이 쓸모가 없어질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 그러나 한국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2010년부터 2013년까지 500만 달러씩 총 네 차례에 걸쳐 2,000만 달러 출자를 완료한다. 투자를 강행한 것이다.
다수의 선진국 기업이 출자할 것이라던 정부의 예상도 어긋났다. 당초 미래탄소펀드는 우리 정부 외에 스웨덴, 핀란드, 네덜란드, 포르투갈 등 5개국 정부와 미국, 영국, 일본의 에너지 다소비 기업 다수가 출자해 총 2억 달러 모집을 목표로 했다. 그러나 2009년 12월 코펜하겐 당사국 총회 이후인 2010년 3월 마감된 펀드 모집 총액은 1억1,500만 달러로 목표치에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포르투갈 정부가 참여하지 않았을 뿐만아니라 미국이나 영국, 일본 등 주요국가 기업은 단 한 군데도 참여하지 않았다. 교토의정서 무력화로 선진국들의 탄소 배출 감축 의무가 유명무실해진 상황이었던만큼 예측가능한 결과였다. 투자자 확인 결과 우리 정부와 국내 기업 포스코가 각각 2,000만 달러를 투자해 한국이 총 4,000만 달러를 출자한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나라가 가장 많은 투자를 한 만큼, 손실 규모 또한 가장 컸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가 미래탄소펀드와 관련해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펀드 모집 마감으로부터 1년 여가 지난 2011년 3월이었다. 기획재정부는 ‘아시아개발은행 미래탄소펀드 연차총회 개최' 보도 자료를 내면서 “녹색성장 선도국으로서 우리나라의 국가 이미지 제고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기획재정부는 우리 정부가 확보한 탄소배출권을 사실상 ‘휴지조각’으로 만들 수도 있는 코펜하겐 당사국 총회 결과나, 펀드 흥행 참패 소식은 언급하지 않았다.
정리해 보면, 국제사회의 1997년 교토 의정서 채택을 통해 선진국에 탄소 배출 감축 책임을 지우는 조약이 발효 된 후 미래탄소펀드가 설립됐고 한국 정부는 2009년 11월 투자를 결정,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총 2,000만불의 출자금 전액을 납부하고 614만 달러어치의 탄소배출권을 구매한다. 그러나 정부는 그보다 앞선 시점인 2009년 12월 국제사회의 2차 의무감축 합의 실패로 미래탄소펀드에 심각한 위기가 발생한 사실은 물론, 예상과 달리 주요국 정부나 기업이 펀드에 참여하지 않은 사실조차 알리지 않은 채 투자를 강행했다. 결국 2021년 우리 정부가 구매한 탄소배출권이 모두 무효가 되면서 101억원이 넘는 재정 손실이 발생한 사실조차 국회를 통해 드러나기 전까지 국민들에게 알리지 않았던 것이다.
미래탄소펀드 투자가 시작된 2009년을 전후해 기후위기 대응을 두고 국제 사회가 장기간 혼란을 거듭했던 사정을 고려하면, 정부가 국제사회의 결정을 미리 예측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비판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펀드 투자 초기 대국민 홍보에 나섰던 정부는 손실이 확정된 후에도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사업 시작전부터 심각한 문제가 드러난 상황에서도 투자를 강행했다.
정부가 내세웠던 세 가지 미래탄소펀드 투자 목적에 비춰보면 탄소배출권 선제 확보는 막대한 손실만 남긴 채 실패로 결론났고, 그 밖에 어떤 선진 금융 기법을 축적하고 경험했는지, 국가 이미지가 어떻게 제고되었는 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기획재정부는 미래탄소펀드 투자 손실과 관련해 “아시아개발은행(ADB)의 분석과 의사결정을 믿고 투자에 들어간 측면이 있다"며 함께 투자한 다른 정부나 기업도 투자 비율만큼 손실을 입은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투자 당시 발생했던 리스크나 펀드 흥행 실패 등을 공개하지 않은 이유와 관련해서는 “확인해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석열 정부에서도 가동 중인 ‘해외 탄소 감축 사업'
해외 탄소 배출 감축 사업에 투자해 탄소배출권을 확보하겠다는 정부의 구상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윤석열 정부는 2018년 대비 2030년 산업부문 탄소 배출량을 14.5% 줄이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계획을 수정, 11.5%로 목표치를 낮추는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 계획을 지난해 발표했다. 줄어든 목표치 3.1%는 ‘국제 감축 사업’ 등을 통해 만회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서 말하는 ‘국제 감축사업’은 이미 실패한 미래탄소펀드투자와 유사한 구조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사전에 철저한 점검이 필요해 보인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노력은 당연히 인정받아야 하지만 정부는 국민들에게 미래탄소펀드 투자 손실 발생 경위를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며 “‘가짜 탄소중립 프로젝트' 등 이른 바 ‘그린워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만큼 이를 구분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뉴스타파 조원일 callme11@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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