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일 칼럼] 인텔의 몰락과 AI 거품론

박정일 2024. 9. 3.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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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일 산업부장

"나도 한 때는 잘 나갔지." 세계 시장을 호령하다 때를 놓쳐 몰락해버린 국가나 기업의 사례는 역사에서 흔히 찾을 수 있는 교훈이다. 로마제국과 같은 먼 얘기가 아니더라도, 불과 12년 전 파산해버린 코닥과 같은 사례는 마치 '진화'와 '멸종'의 자연 섭리가 인간사회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코닥의 경우 무려 49년 전 세계 최초로 디지털카메라를 개발했었다. 당시 경영진은 주력인 필름 사업의 몰락을 가져올까봐 이를 애써 외면했다. 1990년대 들어 디지털카메라 시장이 확산됐는데, 그보다 20여년 전 이미 기술을 가지고 있었던 코닥은 이를 따라가기에 급급했다. 기득권을 버리지 못한 그들의 '고집'이 결국 파산이라는 결과를 만들었다.

LG전자 휴대전화 사업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고, 필자 역시 부끄럽게도 '스마트폰 무용론'에 동참한 적이 있다. 아이폰이 등장하기 전 세계 CDMA(코드분할다중접속) 휴대전화 점유율 1위까지 올랐던 LG전자는 스마트폰 시대에 적시 대응하지 못해 결국 2021년 사업에서 철수했다. 아이폰과 삼성의 옴니아가 나왔을 당시 LG전자 관계자는 필자에게 "기존 폰으로도 소위 스마트폰의 기능을 다 할 수 있다"며 "애플리케이션이라는 게 결국 PC 바탕화면의 '바로 가기'와 마찬가지고, PC처럼 휴대전화 인터넷에 즐겨찾기만 하면 스마트폰과 같은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필자도 "혁신"이라는 애플의 주장에 '그렇게 대단한 기술이 아닌데 너무 과장한다'고 생각했었다. 혁신의 시작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을 쓰는 사람(UX·사용자경험) 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간과했고, 결국 오류를 인정했다. 이후 스마트폰은 인류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는 혁신의 아이콘이 됐다.

최근에는 스마트폰 논란과 유사한 AI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달 월가를 중심으로 인공지능(AI) 거품론 또는 무용론이 나오기 시작했고, 이에 AI의 상징 격이었던 엔비디아의 주가가 출렁였다. AI가 당장, 생각보다 돈이 되지 않는데 굳이 지금부터 거액을 투자할 필요가 있느냐는 논리다.

국내 기업들도 AI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있지만, 비용부담 등을 이유로 도입은 주저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산업연구원과 공동으로 조사한 결과 기업 10곳 중 8곳은 AI가 필요하다고 답했으나, 실제로 활용하고 있는 기업은 30%에 불과했다. AI를 쓰지 않는 기업 중 절반은 비용 등을 이유로 향후에도 도입할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정보기술(IT) 대표 기업으로 꼽혔던 인텔의 몰락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2분기에만 16억달러(약 2조2000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인텔은 1만5000여명에 이르는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과 함께 독일 반도체 공장 건설 계획을 중단하는 등 대대적인 허리띠 졸라매기를 하고 있다.

1970년대 후반부터 50년 가까이 중앙처리장치(CPU) 시장을 장악했던 인텔은 퀄컴에 스마트폰용 반도체 시장의 주도권을 뺏긴 데 이어 AI칩 시장에서도 엔비디아와 AMD 등에 밀리고 있다. 야심차게 추진한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사업도 미세공정 경쟁에서 삼성전자와 대만 TSMC에 밀려 접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인텔의 이 같은 모습은 과거 영광에 안주하다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코닥이나 LG전자 휴대전화 사업과 비슷한 모습이다. 지금이라도 AI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우리는 또 다른 IT 공룡기업의 멸종을 보게 될 것이다.

삼성과 SK, LG 등 국내 대기업들도 인텔의 교훈을 뼈저리게 새겨야 한다. 특히 메모리반도체 세계 1위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주도권을 뺏긴 삼성전자는 지금이라도 다시 이건희 선대회장 시절의 '초격차' 명성을 되찾아야 하는 벼랑 끝 상황에 놓여 있다.

대표적인 생성형 AI로 꼽히는 챗GPT에 'AI 거품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챗GPT의 대답은 이랬다. "AI 거품론에 대한 반박은 AI 기술이 단기적인 과대평가를 넘어, 지속적인 발전과 실질적인 응용을 통해 장기적인 가치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AI기술의 발전과 응용은 단순히 기술적 트렌드가 아니라, 경제적·사회적 변화의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박정일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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