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DT인] "소상공인이 빌딩을 직접 `소유`해 쫓겨나지 않는 세상 만들고 싶어요"
창업후 첫 고객 만나기까지 3년 걸려
금융위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 받아
국내 부동산 조각투자 선구자로 불려
'공간 금융' 구조 만들어 가는게 목표
"직장생활을 하던 중 성수동에 회사들이 들어서면서 원주민들이 쫓겨나는 것을 봤어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리스크를 가지고 투자한 건물주와 열심히 장사하는 임대인, 이를 소비하는 소비자 사이 단순하고 당연한 논리지만 세 주체가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습니다."
허세영(34·사진) 루센트블록 대표는 국내에서 부동산 조각투자의 선구자로 불린다. 미국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그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 사회병인 부동산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는 생각에 조각투자에 관심을 갖게 됐다.
허 대표는 조각투자를 통해 소상공인이 빌딩을 직접 소유함으로써 임대료 상승으로 원래 장사하던 곳에서 쫓겨나는 현상을 해결하겠다는 발상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건물 전체를 구입할 수는 없지만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투자해 소유주 중 하나가 되면 임대료 결정 등에 참여할 수 있다. 기업들이 보다 싸고 안정적으로 부품을 공급 받기위해 지분투자를 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그는 이를 목표로 부동산 조각투자 플랫폼 '소유'를 만들었다.
하지만 허 대표의 단순한 생각만큼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풀어야 할 숙제는 산더미였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하잖아요. 2018년 11월 창업을 하고 엔지니어들만 모여서 밤새 개발만 열심히 했죠. 론칭을 앞두고 친한 변호사 형을 만나서 자랑했더니 어떻게 자본시장법을 풀었냐면서 신기해 하더라고요. 전 자본시장법이 뭐냐고 순진하게 되물었죠."
부동산 조각투자는 하나의 빌딩 지분을 여러개로 쪼개서 투자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투자 기법이다. 하지만 자본시장법에서는 빌딩을 증권의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사업을 시작이라도 해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조각투자는 자산을 유동화 하는 것이 핵심인데 부동산을 쪼개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 조차 알지 못하고 사업에 뛰어든거죠."
허 대표가 문제 해결을 위해 선택한 방법은 이번에도 '무작정 뛰어들기'였다. "금융위원회 조직도를 보고 연관성이 있는 사람이다 싶으면 내선으로 전화를 해서 만나달라고 무작정 부탁했어요."
처음에는 이상한 사람으로 보던 금융위에서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열번이고 스무번이고 연락하고 찾아갔죠. 그러다보니 결국 한 분씩 마음을 열어주셨어요. 처음에는 기존에 없던 구조를 가지고 좋다고 설명하고 있으니 엄청 당황하셨을 겁니다. 그래도 새로운 업에 대한 규제는 필요하다고 끈질기게 설득했죠. 규제가 없이 사업이 등장하면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으니까요."
'규제의 벽'은 허 대표의 예상보다도 더 높았다. "몰랐던 부분이다 보니 금방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던 생각이 '이게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네?'로 바뀌었고 결국 첫 고객을 만나기까지 창업 이후 3년 넘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사업을 결심하고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낙담하지 않았다. "풀 수 있다는 확신은 있었지만 결과는 제 능력 밖이죠. 그래도 노력하고 시도하는 과정이 엄청 재미있었어요. 결과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걸 다 해보자는 마음으로 뛰었습니다."
결국 2021년 금융위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받는데 성공했다. 지금까지 공모를 받은 부동산은 10개. 허 대표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건물이 뭐냐'고 물었다. 그는 "자식들 중에 누가 제일 좋냐고 묻는 것 같네요"라고 웃으면서 답했다.
"첫 번째 부동산은 처음이었으니까 큰 의미가 있었죠. 우여곡절도 많았고, 1호를 위해 시도했던 많은 것들도 스쳐 지나가니까요. 그런데 사업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던 이태원 빌딩, 서울 외 지역에서 처음 시도했던 대전 빌딩, 프랜차이즈 업체와 협업했던 공차 건물 등 모두 각 빌딩별로 사연을 가지고 있어서 기억 속에 다 박혀 있습니다."
부동산 조각투자 업체 중 가장 먼저 두 자릿수 공모를 진행한 루센트블록은 현재 공모 마무리 단계인 11호를 포함해 연내 2개 빌딩을 추가로 공모할 계획이다.
다만 여전히 부동산 조각투자 시장 전체에 대한 아쉬움은 남아있다고 했다.
"더 성장을 시키고 싶은데 업 자체가 많은 변수를 가지고 있어요. 법리적인 부분들, 자본시장 분위기 같은 것들이요. 사업을 시작한 뒤 부동산 시장 분위기가 급격하게 얼어붙으면서 성장을 더 못한 부분도 있고, 금융 소비자 보호도 꾸준히 해결해야 할 문제죠.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부동산 조각투자를 투자자들에게 알리는 것도 저희 몫입니다."
널리 알리기 위한 전략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에는 공학도의 모습이 다시 보였다. "전략은 사실 되게 단순합니다. 고객들에게 어떤 것을 줄 수 있을지 지표를 많이 보고 있어요. 데이터를 열심히 보면 저희가 어떤 것을 못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고칠 수 있는 것도, 못 고치는 것도 있을 수 있고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어떻게 보면 그게 본질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회사에 부족한 점으로는 넓어진 투자 연령층에 대응하지 못하는 것을 꼽았다. "처음에는 2030세대가 많이 들어왔는데 지금은 자본력이 높은 50대가 많이 참여하고 있어요. 그분들에게는 어떻게 다른 상품을 내놓을지 아직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쉽습니다."
허 대표는 부동산 조각투자가 첫 목표였던 젠트리피케이션 해결과 함께 다른 사회문제인 '지역 균형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한 자부심도 가지고 있었다.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 많은 시도를 하고 있어요. 수익률을 어느정도 확보할 수 있는 서울 외에도 수원, 전주, 대전 등에 위치한 건물들도 공모를 진행했어요. 지금 준비하고 있는 제주도 역시 같은 맥락이죠. 서울 외 지역에서 진행한 공모에는 해당 지역민들의 참여도가 높아집니다. 거주민들이 익숙한 지역의 빌딩의 주인이 되면 더 자주 찾게 되고 자연스레 유동인구도 높아져 거리 전체의 활기를 높여주기도 하죠.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투자자들이 해당 지역을 찾는 효과도 있습니다. 이를 활용해 투자자들에게는 해당 건물 주변 상가들에서 가격을 할인해주는 것을 설득, 지역 전체의 이득이 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같은 긍정적인 영향력으로 루센트블록은 최근 금융위가 선정한 'K-핀테크 30'에 선정되기도 했다. 허 대표는 향후 목표로 '공간 금융'을 만드는 것을 꼽았다.
"소유의 기회를 준다는 근본적인 목표를 꾸준히 지켜가고 싶습니다. 일반 사람들이 참여하기 힘들었던 자산 투자의 기회를 만들어준다는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면서 투자 패러다임을 바꿔보고 싶습니다. 건물주와 임차인, 소비자가 상생할 수 있는 '공간 금융' 구조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김남석기자 kn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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