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응급실 ‘문제 없다’ 나흘 만에 의사 돌려막는 정부가 ‘문제’다
응급실 대란 조짐이 짙어지면서 정부가 2일 군의관·공중보건의 250명을 긴급 투입하기로 했다. 응급환자·구급대원들의 ‘뺑뺑이’ 아우성과 여야 경고에도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브리핑에서 “비상진료 체계가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다”고 자신했던 게 불과 나흘 전이다. 군의관·공보의가 떠나는 보건소와 군 의료 대책은 마련하고 ‘의사 돌려막기’에 나선 것인가. 정부가 현장 실상을 잘 몰랐던 것인지, 의·정 대치 주도권을 쥐려 애써 외면했던 건지 우려스럽다.
정부의 응급의료 대책은 지방은 물론 수도권 일부 대형병원까지 응급실 진료 차질이 확산되자 긴급 가동된 걸로 보인다. 전공의 이탈로 응급실 근무 의사 수는 정부 추산으로도 평시 대비 73.4%에 불과하다. 이런 탓에 세종충남대병원·강원대병원 등 지방에선 야간에 응급실 문을 닫는 곳이 나타났고, 서울의 국립중앙의료원·이대목동병원 등도 제한된 응급실 운영을 검토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민심의 체감이다. 응급실을 10군데 넘게 뺑뺑이 돌고도 치료를 받지 못했다거나 “응급실을 찾지 못해 심정지 처할 위기”라는 다급한 호소들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범정부적 가용 자원을 총동원’한다지만, 대책이란 게 결국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군의관·공보의 돌려막기였다. 진료지원(PA) 간호사와 촉탁 채용을 통해 인력 보강도 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 정도 임시방편으로 응급실 진료 차질이나 추석 연휴 의료대란 우려를 해소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당장 공보·군의관이 떠난 곳의 응급 의료 사정은 더 나빠질 우려가 크다. 보건소는 의료 서비스가 취약한 지방이나 저소득층에게는 마지막 보루와 같은 곳이다.
국민들은 우왕좌왕하는 정부를 보면서 불안감이 크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3일 국회 예산결산특위에서 “대통령께서 응급의료 상황 파악도 안 되고 ‘잘되고 있다’는 보고만 받은 게 절대 아니다”라고 했으나, 신뢰는 이미 크게 떨어졌다. 정부가 현실과 유리된 채 의·정 갈등 사태를 바라보고 있으니 해결 기미 없이 지지부진 시간만 흘러보낸 것은 아닌가.
정부는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도록 안일했던 실책부터 사과하고 의료계와 대화에 나서 다급한 불부터 꺼야 한다. 의사들도 병원들이 휴진하는 추석 연휴 기간만이라도 비이성적 치킨게임을 멈추고 현장에 복귀하길 바란다. 어떤 경우라도 국민 생명과 직결된 응급의료가 무너지는 상황만큼은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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