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의 서가] `만년필`이라는 창을 통해 바라본 세상만사

만년필 탐심

박종진 지음 / 틈새책방 펴냄

만년필에 새겨진 사람과 세상 얘기를 담은 특별한 여행기로, 2018년에 출간된 책의 개정판이다. 기존의 에피소드에 16편의 새로운 이야기를 추가했다. 저자 박종진은 40여년을 만년필에 꽂혀 인생을 바친 만년필 마니아다. 세상만사를 만년필이라는 창을 통해 본다. 저자는 인간과 역사의 흔적이 스며드는 필기구는 만년필이 유일하고 그래서 인간과 세상을 닮았다며, 만년필이 매력적인 이유를 명쾌하고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통해 설명한다.

'만년필 탐심'은 만년필에 대하는 두가지 마음을 의미한다. 하나는 깊이 살펴보고 공부한다는 의미의 '탐'(探), 또다른 하나는 욕망한다는 의미의 '탐'(貪)이다. '탐'(探)은 만년필에 대한 집요한 연구와 순수한 사랑이다. 김정은과 트럼프가 사용한 만년필에 관한 이야기, 히틀러가 사용한 만년필 추적기, 영국 여왕이 사용하는 만년필,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의 한 장면에서 시작해 알아낸 미국 대통령의 만년필 세리머니까지, 만년필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눈길을 끈다. 또다른 '탐'(貪)은 만년필에 대한 애정과 사랑을 중심으로 만년필을 수집하거나 고치는 과정에서 겪은 이야기들을 모았다. 벼룩시장에서 생각지도 못한 만년필을 구한 이야기, 이베이에서 구한 폐 만년필 더미에서 전설의 만년필을 구한 사연, 한정판 만년필의 성공 비결, 세상에서 가장 독특한 만년필 수리기, 재클린 여사의 라이터가 만년필 세계에 미친 영향 같은 이야기들은 마니아라면 지나칠 수 없는 내용들이다. 학생들이 많이 썼던 초록색 파커45를 청록파 시인 박목월 선생이 즐겨 사용했다거나, 펜촉이 살짝 드러나 답답해 보이는 '파커51'이 아이젠하워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의 항복 문서를 받아낼 때 서명한 역사적 만년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만년필들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마술 같은 일이 벌어진다.

42가지 에피소드와 14가지의 만년필 수집 팁은 소소한 즐거움을 준다. 만년필의 물성(物性)에 끌려 만년필 세계에 입문하더라도, 만년필에 묻은 인문의 흔적에 빠지기에 손색이 없다.

강현철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