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 용어 썼다가 구독자 항의… 결국 사과한 100만 유튜버
구독자 106만명을 보유한 과학 유튜버가 영상에서 ‘저출생’이라는 용어를 썼다가 일부 구독자들의 항의를 받았다. 항의한 구독자들은 ‘저출생은 정치색을 보여주는 단어’라는 논리를 폈는데, 결국 이 유튜버는 “논란이 되는 단어인 줄 몰랐다”며 사과했다.
저출생에 대한 언급은 유튜버 ‘과학드림’이 지난달 30일 올린 영상에서 나왔다. 당시 과학드림은 우리나라의 “저출생 문제를 얘기할 때 굉장히 많이 언급되는 동물 실험이 있다”며 ‘유니버스25(Universe25)’라는 이름의 실험을 소개했다.
유니버스25는 미국 생태학자이자 동물행동학자인 존 칼훈이 1960년대 설치류를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으로, 천적을 제거하고 먹이를 무한정 공급하는 등 이상적인 생존 환경에서도 개체수가 일정 시점 이후에는 오히려 감소했다는 내용이 골자다. 칼훈은 이 실험 결과를 토대로 강한 수컷과 경쟁에서 도태된 수컷이 나뉘면서 집단 내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지고, 짝짓기를 하지 않거나 새끼를 돌보지 않는 이상 행동이 늘어난 게 원인이라는 해석을 내놨다.
과학드림은 이런 실험을 설명하면서 다시 한번 저출생을 언급했다. 그는 “선진국의 저출생 현상, 특히 현재 한국 사회가 이 실험과 너무 비슷한 게 아니냐는 의견이 굉장히 많다”며 “짝짓기에 참여하지 않는 쥐들, 새끼를 낳지 않는 쥐들이 비혼·딩크족과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이후 일부 네티즌은 영상에 대한 내용보단 ‘저출생’ 단어에 주목해 비판을 제기했다. “저출생은 정치색을 보여주는 단어” “일상생활에서 저출생이라는 단어를 쓰느냐. 입 밖으로 말하는 사람 처음 본다” “과학이 사상에 먹혀 이상해졌다” 등이다.
저출산과 저출생은 통계학적으로 사용되는 용어다. 저출산은 출산율(fertility rate)을 지표로 가임기 여성 한 명이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자녀 수가 낮은 상태를, 저출생은 출생률(birth rate)을 지표로 출생아의 수가 적은 상태를 말한다.
그런데도 저출생이라는 용어에 일부 네티즌이 반감을 드러낸 것은 일각에서 저출생과 저출산이라는 용어를 이념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앞서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은 2018년 발표한 ‘성평등 언어 사전’에서 저출산을 저출생으로 표기하는 게 더 적절하다고 봤다. 저출산은 인구 문제의 책임이 여성에게 있는 것으로 오인될 소지가 있어, 아기가 적게 태어난다는 의미의 저출생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는 이처럼 저출산과 저출생이라는 단어를 이념적으로 바라보는 건 인구 문제를 분석할 때 방해가 된다고 봤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3일 조선닷컴에 “저출산은 성차별적, 저출생은 성평등적 용어라는 주장은 이념적 투쟁이거나 정치적 유행에 불과하다”며 “저출산은 저출산으로서, 저출생은 저출생으로서 모두 사용해야 할 개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여성이 왜 아이를 낳지 않는지를 알고 정책의 변화를 시도하기 위해선 출산율이라는 개념이, 인구 규모의 변동에 따라 향후 어떤 일이 발생할지 준비하기 위해선 출생률이라는 개념이 각각 필요하다”고 했다.
일부 구독자의 비판이 이어지자 과학드림은 결국 사과했다. 과학드림은 영상 댓글을 통해 “저는 이 두 단어가 이렇게 논란이 되는 단어인 줄 몰랐다”며 “저출생이란 단어가 불편하셨다면 사과드린다”고 했다.
과학드림은 “저는 특정 여성 단체를 지지하지도 않고, 어떤 정치적 의도를 내포한 것도 아니다”라며 “예전에 흘려 봤던 기사 중에 대통령실에서 저출생이라고 표현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고, ‘요즘엔 저출산이 아니라 저출생이라고 하는구나’ 정도로 인식하고 사용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영상의 본질이 왜곡되지 않았으면 한다. 저는 한 과학자의 동물행동 실험을 소개하고 싶었고, 실험이 지닌 한계, 그리고 실험에 대한 오해들을 영상에 담아내고 싶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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