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말로 옮긴 셰익스피어의 운율....“독자들 상상의 나래 마음껏 펼치길”
처음 나온 지 10년 만에 전집 완간
“일본 산문 번역체 드디어 벗어나”
“봄의 어린 새싹들이 봉오리도 열기 전에/ 자벌레가 너무 자주 그것들을 갉아 먹고/ 청춘의 아침과 그 이슬 속에는/ 전염성 마름병이 가장 빨리 생긴단다.”(<햄릿> 1막 3장 중에서)
원전의 운문 형식을 한국말의 아름다움과 리듬을 살려 옮긴 <셰익스피어 전집>(전 10권)이 국내 셰익스피어 권위자인 최종철 연세대학교 명예교수의 번역으로 완간됐다. 2014년 민음사에서 전집 시리즈가 첫 출간된 지 10년 만이며, 1993년 최 교수가 <맥베스> 운문 번역을 내놓은 지 30년 만이다. 셰익스피어 작품은 대사의 상당 부분이 운문 형식임에도 줄곧 산문으로 번역됐다.
최 교수는 3일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열린 완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운문 번역 작업을 두고 “100년간 지속해온 일본 번역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1923년 셰익스피어 작품의 일부 번역이 일본을 통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일본어의 특성상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 수만 행에 달하는 운문을 시행의 길이를 맞춰 옮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일본어 번역은 산문형식을 띠게 됐고, 일본을 통해 서구의 지식을 받아들였던 조선의 지식인들도 산문 번역을 하게 됐다. 최 교수는 “시 형식으로 쓴 연극 대사를 산문으로 바꿀 경우 시가 가지는 함축성과 상징성 및 긴장감이 현저히 줄어들고, 수많은 비유로 파생되는 상상력의 자극이 둔화되며, 이 모든 시어의 의미와 특성을 보다 정확하고 아름답게 그리고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도구인 음악성이 거의 사라진다”라고 덧붙였다.
셰익스피어가 주로 쓴 운문 형식은 ‘약강오보격 무운시’다. ‘약강오보’란 약·강 음절이 시 한 줄에 연속적으로 다섯 번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무운시는 각운이 없는 시다. 최 교수는 “운문은 한 줄에 들어가는 자수가 제한을 받기 때문에 허용한 글자 수는 12~18자 정도”라며 “오랜 시간 연구 끝에 우리말의 삼사조 운율이 원전의 약강오보격 소리의 느낌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작품 중 가장 번역하기 까다로웠던 작품은 <맥베스>다. 맥베스는 셰익스피어 작품의 인물 중에서 가장 시적인 인물이다. 분량은 짧지만, 압축된 문장들이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나온다. 그는 “맨 처음 운문 번역 작품으로 <맥베스>를 선택한 것은 이 작품을 할 수 있다면 나머지 작품들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인공지능(AI)이 번역을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 “셰익스피어가 파악한 인간 심리의 기기묘묘한 넓이와 깊이, 소리에 뜻을 실어 표현한 다양한 감정들을 인풋에 따라 아웃풋이 철저하게 나오는 인공지능(AI)에 다 집어넣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현재의 알고리즘으로는 복잡한 변수를 다 고려한다고 해도 미묘한 느낌, 수십 가지의 뉘앙스를 전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결국 알고리즘이 대응할 수 없는 부분은 인간 상상력의 영역이다”라고 말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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