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단지동맹 후손 한자리에···“앞으로도 서로를 기억하자”

박채령 기자 2024. 9. 3.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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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동맹원 조응순 선생의 조카 조순호씨가 마침내 다른 독립운동가 핏줄을 만났다.

안중근 의사 탄신 145주년이었던 지난 2일 서울 중구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열린 '안중근 의사 탄신 145주년 기념식'을 통해서다.

지난 2일 서울 중구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열린 ‘안중근 의사 탄신 145주년 기념식’에 단지동맹의 일원인 조응순 선생의 조카 조순호씨(맨 오른쪽)가 참석했다. 사진은 안중근 의사 후손들을 포함한 ㈔안중근의사숭모회원들. 박채령기자

■“독립투사 후손, 가족처럼 느껴져...이렇게 만나니 고맙고 기뻐”

“새벽 5시에 일어나 기차를 타고 왔습니다.”

앞서 경기일보는 조응순 선생의 조카 조순호씨의 사연(본보 8월15일자 1면·3면)을 보도한 바 있다. 이후 안 의사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안중근의사기념관을 운영해온 ㈔안중근의사숭모회에서 경기일보에 연락을 취해왔다. 조씨를 만나보고 싶다는 말이었다.

이들의 만남이 성사된 곳은 기념식 현장이다.

당일 경기일보 취재진이 도착했을 때, 조순호씨는 이미 기념식장 앞에 앉아 대기중이었다. 단정한 정장을 입고 있던 조씨는 떨리는 듯 두 손으로 무릎을 부여잡고 있었다. 충북 단양에 사는 조씨는 오전 6시 기차를 타기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 준비를 하고 왔단다.

조씨는 안중근의사기념관에 처음 와본다고 말했다. 안중근 의사의 재종 조카인 안의생씨를 비롯한 후손들이 다가와 조씨의 손을 잡고 “와줘서 고맙다”고 했다.

안 의사 여동생 안성녀씨의 손자인 권혁우씨도 조씨의 손을 잡고 “이제라도 (조씨의 존재를) 알았으니 앞으로 계속 자리에 모시겠다”고 말했다.

단지동맹원 조응순 선생의 후손인 조순호씨가 ‘㈔안중근의사숭모회’의 초대로 단지동맹의 다른 후손들을 만났다. 박채령기자

조씨는 “같은 경험을 한 이를 처음 만나본다. 가족 아닌 가족을 만난 것 같아 매우 기쁘고 고맙다”고 말했다. 눈시울과 코끝이 빨개진 조씨는 울음을 참으려는 듯 보였다.

군포시에서 태어나 청년기까지 보낸 조씨는 스물 세 살이던 1977년, 갑작스러운 대홍수로 어머니를 잃고 집이 떠내려가는 비극을 겪었다. 모든 것을 잃었다는 황망함을 견디기 힘들어 조씨는 고향을 떠났다. 10년간 안산, 이천, 서울을 전전하다 서른 세 살 때 비로소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충북 단양에 정착했다.

그동안 독립투사 후손들과는 거리를 두고 지냈다는 게 조씨의 설명이다.

■화장대 안에서 나온 태극기 안, 빼곡한 독립투사 이름

숭모회원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조씨는 둘째큰아버지(조응순 선생)의 흔적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털어놨다.

그는 “8살 때 형수가 시집을 왔는데 장롱을 해왔다. 이를 설치하기 위해 누나가 원래 있던 화장대를 치웠는데 그 안에서 태극기가 나왔다. 거기에 독립투사들의 이름이 적혀있었다”고 밝혔다.

독립투사들이 손가락을 자르고 피로 서명했던 태극기 원본으로 추정된다. 아주 크지는 않았지만 광목 재질로 돼 있어 두툼하고 부드러웠던 기억이다. 누나는 이 태극기를 고이 감춰뒀다고 했다.

그 모든 것이 1977년 안양 대홍수로 떠내려가면서 독립투사의 후손이라는 증거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저희 아버지가 살아계시면 자료 정보가 많이 있을텐데, 돌아가신지 50년이 넘었다”며 “아버지가 말씀해 주신 것 중 내가 적어놓은 것도 홍수 때 다 떠내려갔다”고 말했다.

정하철 ‘㈔안중근의사숭모회‘ 전 상임이사(가운데)가 조순호씨에게 단지동의회 단체사진을 보여주며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박채령기자

■“국가에 대한 헌신, 후손 예우로 보답해나가야”

조씨와 이야기를 나누던 정하철 전 ㈔안중근의사숭모회 상임이사는 “이곳에 단지동맹 단체사진이 있다”며 조씨를 1층 자료실로 이끌었다.

빼곡한 책들 사이 한참 찾던 정 전 상임이사는 “여기 있다”며 두꺼운 책 한 권을 꺼내들었다. 이내 조씨를 앉히고 단지 동맹의 사진을 보여주며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했다.

조씨는 조응순 선생의 사진을 보며 “나와 닮았냐”고 취재진에게 물으며 미소짓기도 했다.

이번 기념식을 기획한 이주화 안중근의사기념관 학예연구관은 “안중근 의사도 ‘내가 잘 나서 독립 운동을 할 수 있었던 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독립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이 일에 임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라고 말했다”며 “그들이 빌드업을 했기 때문에 안중근 의사의 손끝으로 (이토 히로부미 저격이) 가능했던 거였다. 그러니 그들의 후손을 챙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단순히 내가 누구의 자식, 손자라고 밝히는 차원을 넘어 주변에서 후손들을 챙겨주고 독립투사들의 뜻을 이어주는 게 중요하다”며 “미국에서는 버스에 군인이 타면 시민들이 자리를 양보해준다. 국가와 사회에 헌신·봉사한 것에 대해 보답을 해주는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그게 독립유공자의 후손이고 하나하나가 소중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채령 기자 chae@kyeonggi.com
민경찬 PD kyungchan63@kyeonggi.com
김종연 PD whddusdodo@kyeonggi.com
허수빈 인턴PD soopin@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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