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시한폭탄 가계 빚에 빛 바랜 수출분투
수도권 집값 오르자 주담대 늘어
가계 부채에 내수 회복 지지부진
"추경·지역화폐 지원 검토 필요"
수출이 호조세를 보이고 있어 연말 수출액이 일본을 넘어설 것이라는 장미빛 전망까지 나오지만 한국 경제 회복의 기대감은 살아나지 않고 있다. '시한폭탄'인 역대 최악의 가계 빚에 발목이 잡혀 내수가 지지부진한 탓이다. 가계 여윳돈이 말라붙으면서 최근 경기 흐름도 꺾이는 양상이다.
8월 수출은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11.4% 증가하면서 11개월 연속 '수출 플러스' 흐름을 탔다. 반도체가 120억 달러에 육박하며 한국 전체 수출의 20% 이상을 담당했고, 자동차도 50억달러를 넘기며 '효자' 역할을 했다.
수출 선방에 금리 인하 전망까지 더해지고 있지만 내수는 꽁꽁 얼어붙었다. 가계 부채 규모가 역대 최대로 불어나면서 가계에 여윳돈이 없다. 당연히 소비 여력이 사라졌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음식점을 포함한 소매판매액지수(불변지수)는 지난 7월 101.9(2020년=100)로 작년 같은 달보다 2.3% 감소했다. 음식점 포함 소매판매지수는 작년 4월부터 16개월째 쪼그라들고 있다. 관련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10년 이후 역대 가장 긴 기간이다.
충분히 그럴 만하다. 올 2분기 가구 흑자액(전국·1인이상·실질)은 월평균 100만9000원으로 1년 전보다 1만8000원(1.7%) 감소했다. 2022년 3분기부터 8분기 째 가구 흑자액이 줄고 있다. 2006년 1인 가구를 포함해 가계 동향이 공표된 후 역대 최장기간 감소세다. 쪼그라든 가계 여윳돈은 결국 가계 소비심리 위축으로 이어지면서 내수 부진, 경기 불황, 가계소비 위축 심화라는 악순환을 예고하고 있다.
가계 빚을 손보지 않고는 경기 회복이 요원하다는 경고 목소리가 크다. 올 2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496만1000원으로 1년 전보다 3.5% 늘었지만 물가 상승분을 걷어낸 실질소득은 435만2767원으로 0.8% 상승에 그쳤다. 고금리 여파에 이자 비용도 2022년 2분기 8만6000원에서 지난 1분기 12만1000원으로 뛰었다.
가계부채는 수도권 집값이 급등하면서 지난 6월 말 기준 잔액이 1780조원으로 사상 최고치다. 주된 요인은 천문학적인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이다. 6월 말 주담대 잔액은 1092조7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60조9000억원 불어났다. 연간 증가 폭으로는 2021년 12월 말(72조3000억원) 이후 최대치다. 은행들이 7월부터 주담대 금리를 올리면서 가계대출 조이기에 들어갔지만 그 증가세는 좀처럼 주춤할 기세를 보이지 않는다.
은행권은 '대출 옥죄기'에 나섰다.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 우리은행 등은 기존 50년이던 주담대 만기를 일괄적으로 30년으로 축소했다. '갭투자(전세 끼고 매매)'같은 투기 수요를 차단하기 위해 전세대출에도 브레이크를 걸었다. 우리은행과 카카오뱅크는 유주택자에 대한 주택 구입 목적의 대출을 전면 중단하는 초강수를 뒀다.
관건은 대출 규제 강화 움직임 속 가계대출 급등세가 꺾일 수 있을지 여부다. 이달부터 강화된 대출 규제와 은행권의 대출 총량 조이기가 본격화된 만큼 분위기를 전환시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정부는 수출 호조 등을 근거로 경기 회복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다만, 내수에서 부문별로 회복 속도에 차이가 있다며 지원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국정브리핑에서 "우리 경제가 확실하게 살아나고 있고, 앞으로 더 크게 도약할 것"이라며 "성장의 과실이 국민의 삶에 더 빨리 확산할 수 있도록 모든 힘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내수 진작을 위한 카드로는 재정 지원과 금리 인하 등을 우선적으로 거론할 수 있다. 추석 이후 추경으로 내수 살리기에 나서야 한다는 조언이 나오는 이유다. 또 하나는 선제적 금리 인하인 데 이는 일단 무산된 상황이다.
임상일 대전대 명예교수(실물경제)는 "내수 부진의 여파는 이른바 '장사 양극화' 같은 부작용으로 나타나고 있다"라며 "추석 뒤 연말 이전 적당한 시기에 추경을 하고, 지역화폐소비 등을 지원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송신용기자 ssyso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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