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서 커지는 ‘플랫폼 책임 강화’ 목소리
불법·유해 콘텐츠 유통 통로가 된 온라인 플랫폼의 책임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세계 각지에서 거세지고 있다. 플랫폼 안에서 발생한 각종 범죄 피해가 확산한 데는 사업자의 관리 소홀 탓이 크다는 것이다.
텔레그램 최고경영자 파벨 두로프가 프랑스에서 체포 후 예비기소된 사건은 플랫폼에 칼끝을 겨눈 대표적 사례다. 그의 혐의는 ‘방조’다. 프랑스 사법당국은 두로프가 미성년자 성착취물 유포 등 텔레그램을 통해 일어난 각종 범죄를 방치하고 수사 협조 요청에도 응하지 않은 책임을 묻고 있다.
이와 별도로 유럽연합(EU)은 텔레그램이 사용자 수를 4100만명이라고 축소 신고해 EU 디지털서비스법(DSA)를 위반했을 가능성을 들여다보고 있다. 지난해 8월 시행된 법은 EU 내 월간 이용자 수가 4500만명 이상인 플랫폼을 ‘초대형 온라인 플랫폼(VLOP)’으로 지정해 더 엄격한 유해 콘텐츠 확산 방지 의무를 부여한다. 위반 시 전 세계 연간 매출의 최대 6%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브라질 대법원은 아예 통신·인터넷 사업자들에게 명령해 엑스(옛 트위터) 접속을 막아버렸다. 엑스가 가짜뉴스 배포 계정 차단 명령을 무시하고, 브라질 내 법적 대리인도 임명하지 않으면서 현지 법을 어겼다는 게 이유였다. 브라질 엑스 이용자는 약 2150만명으로 세계에서 6번째로 큰 시장이다. 엑스를 소유한 일론 머스크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반발했다. 머스크가 이끄는 우주기업 스페이스X의 위성 인터넷서비스 스타링크는 브라질에서 엑스 차단 명령을 따르지 않겠다고 했다. 브라질 당국은 스타링크도 차단할 수 있다고 맞섰다.
유튜브, 메타 등 거대 기술기업들이 몰려 있는 미국에서도 플랫폼의 책임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크다. 미국은 통신품위법 230조에서 인터넷 사용자가 올린 콘텐츠에 대해 인터넷 사업자의 면책권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거대한 온라인 플랫폼이 등장하기 이전인 1996년 제정된 만큼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달 미국 필라델피아 연방 항소법원은 틱톡에서 유행한 ‘기절 챌린지’로 10살 딸을 잃은 어머니가 틱톡을 상대로 낸 항소심에서 틱톡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원심을 뒤집었다. 틱톡이 알고리즘을 통해 질식에 이르는 방법을 담은 콘텐츠를 아동에게 추천한 만큼 통신품위법 230조의 보호를 받는 수동적 중개인의 영역을 벗어난 것으로 봤다. 지난 1월에는 연방 상원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기업 최고경영자들이 참석한 ‘빅테크와 온라인 아동 성착취 위기’ 청문회가 열리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N번방 사건’ ‘사이버렉카’ ‘딥페이크 성착취물’ 등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플랫폼이 보다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주로 문제가 된 플랫폼이 텔레그램, 유튜브, 페이스북, 엑스 등 해외 플랫폼이라 자율규제로는 한계가 있었다. 현재 국회에는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들이 딥페이크 콘텐츠에 즉각적 조치를 할 수 있도록 처벌 근거를 담은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등이 발의돼 있다. 전문가들도 해외 플랫폼의 협조를 이끌어내기 위해선 신속한 콘텐츠 삭제를 요청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고 본다. 가해자 처벌 강화, 딥페이크 탐지 기술 개발 등과 함께 플랫폼 기업과의 공조 체계를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다.
한국인공지능법학회장을 맡고 있는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는 “2000년대 초중반에는 구글이 한국 의 여러가지 규제 노력에 잘 응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나아지긴 했다. 정부가 집행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온 것”이라며 “하지만 텔레그램에는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플랫폼 규제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전 세계적으로 형성된 만큼 플랫폼도 계속 무시하긴 힘들 것”이라며 “국제적인 문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끈기를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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