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편법 쌈짓돈’ 안되게 배출권거래제 손질…“근본 문제도 바로잡아야”

윤연정 기자 2024. 9. 3. 16:2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환경부, 법 시행령 입법예고
‘할당 취소’ 손쉽게 만들고 시장 참여자 넓혀
인천 서구 정서진 아라타워에서 바라본 서인천복합화력발전소 굴뚝에서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핵심 수단인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와 관련, 환경부가 “실효성을 높이겠다”며 관련 법 개정에 나섰다. 공장 가동 중단 등 별다른 감축 노력 없이도 기업들이 남아도는 배출권을 팔아서 이득까지 챙기는 부조리를 바로잡겠다는 취지다. 다만 배출권 대부분을 무상으로 할당하는 등 근본적인 문제를 바로잡지 않는 한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환경부는 ‘온실가스 배출권의 할당 및 거래에 관한 법률’(배출권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을 4일부터 40일간 입법예고 한다고 밝혔다. 배출권거래제는 정부가 기업·시설에 일정량의 온실가스 배출권을 할당하고, 할당량보다 덜 배출한 기업은 남은 배출권을 판매할 수 있도록 해 온실가스 감축을 유도하는 제도다. 우리나라는 2015년부터 이 제도를 도입했는데 현재 내년 2월7일 시행 예정으로 법령을 손보고 있는 중이다.

이번 개정안에서 환경부는 ‘할당 취소 배출량’ 기준을 기존 50%에서 15%로 바꿔, 그간 “문제점으로 지적받았던 배출권 할당 취소 규정 등을 보완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온실가스 배출 기업에 대해 최근의 실제 배출 실적과 감축 권고 비율을 고려해 기업별 온실가스 배출권을 매년 무상 배정하고 있다. 그러나 경기 악화로 공장 가동을 못하는 등 기업들이 별도의 감축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남아도는 배출권을 판매해 부당한 이익을 얻는 경우가 발생해 문제로 지적되어 왔다. 대표적으로 2022년 9월 태풍 ‘힌남노’로 100일 넘게 일부 공정을 멈춘 포스코는 그해에만 311억원 규모의 배출권을 판매해 이득을 얻었다.

이에 대해 현행 시행령은 “시설의 가동중지·정지·폐쇄로 인하여 그 시설이 속한 사업장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시설에게 할당된 배출권 할당량의 50% 이상으로 감소할 경우 정부가 배출권 할당을 취소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이번 개정안은 배출량이 할당량의 15% 이상으로만 줄어도 할당을 취소할 수 있게 바꿔, 더 많은 시설들에 이 조항을 적용할 수 있도록 법령을 강화한 것이다. 기존에는 온실가스 100톤을 배정받은 경우 가동중지 등으로 실제 배출량이 50톤 이상 줄어든 기업에 대해 남은 배출량을 할당 취소(회수)해왔는데, 이제는 15톤 이상만 감소해도 배출권을 회수해 배출권 거래 이익을 차단하겠다는 뜻이다.

환경부는 “별도의 노력 없이도 잉여 배출권을 판매해 이익을 얻는 등 기업의 감축 노력을 저해할 수 있는 현행 규정을 개선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배출량 감소 정도에 따라 구간을 나눠 할당 취소량을 달리 정할 방침이다.

또 개정안은 자산운용사, 기금관리자, 은행·보험사 등을 배출권 거래 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시장 참여자’로 새로 규정했다. 현행 시행령은 할당대상업체, 시장조성자, 배출권거래 중개회사 등만 배출권 거래 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어 폐쇄적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할당대상업체는 최근 3년간 연 평균 온실가스 배출량이 12만5천톤 이상이거나 2만5천톤 이상인 사업장을 하나 이상 보유해 배출권거래제 대상이 되는 기업이다. 올해 4월 기준 배출권거래 시장 참여자는 780여개 배출권 할당대상업체와 8개 시장조성자, 21개 증권사다.

다만 배출권의 90%를 무상으로 할당하고 배출권 이월을 제한하는 등 현행 배출권거래제를 유명무실하게 만든 근본적인 문제점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제도는 부담을 완화해준다는 이유로 기업·시설별로 할당하는 배출권의 90%를 무상으로 주고 있다. 남은 배출권은 제한적으로만 이월할 수 있다. 이런 근본적인 헛점 때문에 시장에서 기업이 돈을 내고 배출권을 사오는 비율이 10%밖에 되지 않고 배출권 가격이 톤당 1만원(유럽연합의 경우 10만원 안팎)에 그치는 등 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권경락 플랜1.5 활동가는 “배출권거래제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기업이 사용하는 배출권의 유상 비율을 더 늘리고 현재 톤당 약 1만원하는 배출권 가격이 더 올라가야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양한나 환경부 기후경제과장은 “먼저 배출허용총량을 온실가스감축목표 달성이 가능한 수준으로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향후 전력수급기본계획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 합리적인 유상 할당 비율을 정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전날 김완섭 환경부 장관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유상 할당 높이는 방안을 ‘4차 기본계획’ 수립 과정에서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윤연정 기자 yj2gaze@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