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철 교수의 셰익스피어 번역 30년 결실…국내 최초로 운문 시도

임인택 기자 2024. 9. 3. 16:15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영국 대문호인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의 전 작품이 원전 특유의 운문 형식 그대로 번역 완간됐다.

셰익스피어 권위자인 최종철(75) 교수가 3·4조 중심의 우리말 가락을 국내 최초로 번역에 적용한 지 30여년 만의 결실이다.

셰익스피어 희곡 38편 가운데 운문이 대사의 8할 이상인 작품만 22편에 이르나, 일본어 특성상 원전의 시형에 맞춘 1:1 번역이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 평가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셰익스피어 전집’을 운문 형식으로 번역 완간한 최종철 연세대 명예교수가 3일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민음사 제공

영국 대문호인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의 전 작품이 원전 특유의 운문 형식 그대로 번역 완간됐다. 셰익스피어 권위자인 최종철(75) 교수가 3·4조 중심의 우리말 가락을 국내 최초로 번역에 적용한 지 30여년 만의 결실이다.

셰익스피어 작품은 대사 절반이 운문인데도 일본어 번역에 영향받아 우린 번역본도 주로 산문이었으며, 숱한 연극에서도 지금껏 시 형식을 보기 어렵다.

최종철 연세대 명예교수(영어영문학)는 3일 기자간담회에서 “원전의 내용을 다 담고 운율을 타, 한글로 작품을 읽어도 원래 전달하려던 감정과 사상이 리드미컬하게 잘 전달된다”며 “그간 지속되어온 일본 영향으로부터의 문화독립으로, 위대한 한글 덕분에 완전히 벗어났다”고 소회를 밝혔다.

셰익스피어 작품이 국내 소개된 건 일제 강점기인 1910년대부터다. 이미 1870년대부터 ‘햄릿’ 등 일어로 번역됐던 작품이 중역되면서다. 셰익스피어는 작중 지배계급, 격정, 절창의 언어로 ‘약강 5보격 무운’(두 음절이 약강의 운율로 한 행에 다섯 차례 이어지되 압운은 없음)의 시 형식을 따랐고, 하층민, 해학, 평시의 언어로 산문을 썼다.

브리튼 왕국의 ‘리어왕’(4대 비극 중 하나)이 권위를 잃고 실성했을 때의 대사는 산문투다. 셰익스피어 희곡 38편 가운데 운문이 대사의 8할 이상인 작품만 22편에 이르나, 일본어 특성상 원전의 시형에 맞춘 1:1 번역이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 평가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햄릿’의 유명한 대사. 운문에 맞춰 번역해 각 줄의 길이가 엇비슷하다. 최종철 교수는 “존재할 것이냐, 말 것이냐, 그것이 문제다”로 운율과 진중한 고뇌의 의미를 고려해 번역했다. ‘셰익스피어 전집’ 4권에서.

일본어 번역으로 충실히 의미를 전달하려 들면 운문의 글자수를 일정하게 맞추기 어렵고, 한 문장의 길이도 원문보다 넘치기 일쑤라는 것이다. 일본을 통해 서구문학을 받아들였으나 공교롭게 셰익스피어의 원전은 “소화할 수 없는 언어”였던 셈으로, 이날 최 교수가 여기서 벗어나기까지 “100년 걸렸다”고 말한 까닭이다.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3·4조 운율을 적용한 운문 번역의 첫 도전이 바로 1993년 시작된 ‘맥베스’다. “셰익스피어의 모든 인물 가운데 가장 시적인 인물”로 “전광석화처럼 압축된 문장이 지나가기에 ‘맥베스’가 번역된다면 나머지도 가능하다 생각으로” 실제 가장 오래 고투한 작품이 됐다.

최 교수 번역본에선 운문의 한 행이 대개 12~18자 한글로 정형화한다. 셰익스피어 작품은 늘어지면 “위스키가 냉수가 된”다. 다만 희곡의 경우 연극 무대에선 여전히 낯설어한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10년 전 극단(유시어터)에서 최 교수 번역본에 따른 ‘햄릿’을 시도했다 보류했다고 한다.

셰익스피어 전집 10권. 너비만 33㎝에 이른다. 유지원 북디자이너가 디자인했다. 한 디자이너가 10년간 한 작품을 진행한 사례도 국내에선 드물어 보인다. 민음사 제공

이달 출간된 작품은 ‘셰익스피어 전집’ 10권 가운데 2, 3, 6, 8, 9권이다. ‘티투스 안드로니쿠스’ ‘두 귀족 친척’ 등 비극·로맨스(6권), ‘헨리 4세’ ‘태풍’(템페스트) 등 사극·로맨스(7권), ‘헨리 6세’ ‘리처드 3세’ 등 사극(8권), ‘헨리 5세’ ‘존 왕’ 등 사극(9권), 소네트 154편·시(10권)로 구성됐다. 1993년 번역에 돌입, 2014년 ‘한여름 밤의 꿈’ ‘베니스의 상인’ 등 희극(1권), ‘햄릿’ ‘맥베스’ 등 4대 비극(4·5권)까지 5종을 첫 결과물로 출간한 뒤로도 10년이 걸렸다.

전체 10권을 합하면 5824쪽 분량으로 책등 너비만 33㎝에 이른다. 실상 최 교수의 스승인 이상섭 연세대 명예교수가 운문 번역으로 한 권짜리 전집을 먼저 출간하긴 했다. 셰익스피어 타계 400주년인 2016년 일이다. 번역 시작은 최 교수보다 늦었다. 최 교수는 “은사의 번역 작품도 여러 차례 봤지만 두 번역본의 비교는 독자와 비평가의 몫”이라며 “다만 (이 교수가) 10년 안에 이 방대한 작업을 했는데 좀 서둘러 하셨다는 게 함의 아닐까”라고 말을 아꼈다.

왜 아직도 우리는 셰익스피어를 얘기할까. “인간 감정의, 본성의 진실을, 아주 잘 연결된 이야기로 보여주는 게 셰익스피어의 천재성이에요. 셰익스피어를 읽었는가에 따라 인생,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소리 내 읽어주시면 그 순간이 반드시 올 거라고 봅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